거창에서 번지는 언론소비자 운동

어느 모임이라도 인터뷰를 하러 가면 기자를 중심에 놓고 자기들이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 바쁘다. 그런데 이 모임은 음식점에 들어가자 메뉴도 시키지 않고 여러 신문을 펼쳐서 꼼꼼하게 읽어보느라 기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행동하는 언론소비자 연대 거창지부(이하 행언련 거창지부)'는 그런 곳이었다.
 
서로 얼굴조차 몰랐지만

신문을 대강 훑어본 후 그제서야 기자도 말을 할 기회가 생겼다. 일단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농부, 주부, 회사원, 변호사, 교사, 학원장, 음식점 운영 등 직업도 다양했다. 그 중 한 명은 신문사 지국을 운영해 본 사람도 있었고, 교통방송TV 기자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언론사의 사정도 대강 알고 있었다.
 
-행언련 거창지부는 무슨 모임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여기 이렇게 모이시게 된 것입니까?

이날 '운영위원회 번개'에 모인 8명이 저마다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8명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10~20년 전부터 거창 사람 가운데 일부는 '언론이 잘못됐기 때문에 사회가 엉망이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모른 채 개인 단위로 흩어져 있었다. 어떤 이는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 가입 돼 있었고, 어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을 하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있는 사람도 있었도, 그저 혼자서 생각만 하고 있던 순수 시민도 있었다.

20140914010122.jpeg
2014년 8월에 열린 거창언론소비자학교 단체사진./행언련 거창지부 제공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일어났다. 그해 촛불집회의 성과 중 하나가 바로 '언론에 대한 문제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결집'시킨 것이었다. 촛불을 들던 사람들은 '문제는 언론이다'고 결론을 내리고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이라는 인터넷카페를 결성했다. 거창 안에서 무수히 스쳐지나가면서도 서로를 못 알아봤던 사람들은 그제야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고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거창 언소주 회원들은 조선일보 비판 홍보전도 하고, 조선·중앙·동아일보에 광고하는 업체에 연락을 해 광고철회를 요구하곤 했다. 그러던 중 언소주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광동제약 사태'로 알려진 이 내분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던 광동제약을 언소주가 불매운동 타켓으로 삼았다. 그러자 몇 시간 만에 광동제약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도 조선일보에 광고하는 만큼 똑같이 광고를 집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언소주 집행부는 이만하면 됐다고 여겼지만, 회원들 가운데서는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아예 조선일보에 광고를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언소주 집행부는 비판하는 회원을 무더기로 제명하기 시작했다. 제명된 이들은 2009년 가을에 부산에서 모였다. 언소주 내분에 당황하던 거창 사람들은 '이 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자'며 이성열 사무국장과 권문상 대표를 부산 모임에 파견했다. 부산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언소주 보다 더 강력한 단체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그렇게해서 '행동하는 언론소비자 연대'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2010년 3월 27일, '행동하는 언론소비자 연대 거창지부'가 결성됐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조직일 뿐만 아니라, 아직 서울에 중앙조직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깃발을 제일 먼저 든 것이다. 얼마나 거창 사람들이 잘 뭉쳐져 있는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10년 이후 행언련 거창지부는 언론사를 비평하고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을 주로 했고, 이외에도 투표독려 운동이나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활동을 하고 있었다. 행언련 거창지부의 가장 큰 사업으로는 2011년부터 매년 언론소비자학교를 열고 있다. 언론개혁에 대한 저명한 인사를 불러 강의를 듣고 소비자들의 '언론 주권'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행사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장이다."

20140914010123.jpeg
행언련 거창지부의 2010년 지방선거 투표독려 캠페인./행언련 거창지부 제공

-회원은 얼마고, 회비는 얼마나 걷힙니까? 

아무리 뜻이 좋은 단체라도 돈 앞에서는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이성열 사무국장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변했다. "회원 110여 명이 됩니다. 약 90~100명이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월 평균 60만 원 정도 수입이 들어옵니다."
 
언론, 그리고 우리 사회

-우리나라 언론이 뭐가 가장 큰 문제입니까? 정말 언론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됐습니까?

"언론에 건강식품 광고가 나오면 다음날 매장에서 바닥이 납니다. 언론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이나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서 난동 피우는 어르신들을 보면 자기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러시느냐? 잘못된 언론을 철저하게 믿고 있습니다.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조선일보를 열심히 보면 '지식인' 대접을 받습니다. 그 지적 허영에 빠져서 행동에 나서시는 겁니다. 착한 사람이 언론 때문에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았다. "이게 과연 언론 때문인가 고민을 합니다. 사람의 성향에 맞춰서 언론이 장단을 맞추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대구 쪽 언론사 만평을 보면 죄다 보수적으로 싣습니다. 대구 사람들이 보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실관계 자체를 조선일보 같은 곳에서는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보상을 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장사를 해보면 알겠지만 세월호 때문에 경기침체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 자체를 거짓으로 말하는 겁니다."

언론의 중립성도 도마에 올랐다. "언론은 은연중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진정한 중립이 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약한 것과 무거운 것을 저울에 놓고 중립을 잡으려면 한쪽으로 많이 기울여야 합니다. 약자와 강자 사이의 중립의 위치는 약자 편을 들어야 중립인 것입니다. 억지로 똑같은 분량을 보도했으니 중립을 지켰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20140914010127.jpeg
권문상 거창지부 대표(변호사)./임종금 기자

-그럼, 언론이 이렇게 삐뚤어진 원인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언론의 핵심은 기자인데, 기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이나 정치권력에 언론이 예속 돼 있고, 기자도 사주에 예속 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진실을 캐기보다는 무채색으로 중립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발을 빼 버립니다. 언론이 망가진 이면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이렇게 된 데에는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기회주의 친일언론(조선일보, 동아일보)들을 청산하지 못했고, 그들이 거대언론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대놓고 요즘 언론을 검열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또 인터넷 언론도 있어서 진실을 알 길도 있지 않습니까?

"70년대 김대중 대통령은 실제 박정희에게 표를 더 많이 받았지만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럼 왜 사람들이 김대중에게 그렇게 많이 표를 줬을까? 그때는 한겨레나 인터넷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 때는 언론환경이 나빴지만 다 서로 못사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것이 정확하게 귀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사람들이 다 영악해졌기 때문에 정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왜곡이 먹히는 것입니다."

다른 견해도 있었다 "70년대까지는 아직 언론이 기득권의 논리를 완전히 사람들에게 세뇌시키지 못했습니다. 80년대부터 사람들은 기득권 논리에 세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기득권 논리가 심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느 것이 선후인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방법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치인들은 다 나쁜 놈들인데, 박근혜가 그나마 어쩔 수 없이 대안이 된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겁니다."

서로의 생각이 같은 듯 보였으나 따져 보니 다 달랐다.

20140914010119.jpeg
2010년지방선거투표독려

-그럼 언론이 바로 가기 위한 대안은 뭡니까? 

잠자코 있던 권문상 대표가 입을 열었다. "기자들의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하고, ~카더라, 허위사실 기사에 대해서는 엄청난 불이익을 받도록 제재를 가야 하는데, 최종적으로 사법부가 변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외국처럼 정말 신문사 망할 정도로 판결을 때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처럼 소비자가 견제를 하는 겁니다. 그게 언소주와 행언련의 창립정신입니다."

-앞으로 거창에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거창에 8~9개의 언론이 있습니다. 거창 사람들도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만, 일단 신문을 봐 버리면 기사에 빠져 버리고 그게 소문을 타 버립니다. 그게 활자의 힘입니다. 지역 언론을 평가한 다음에 알려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고 싶습니다. 협동조합체제로 소비자 입장에서 언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론을 만들면 구독자가 있어야 하고 기자도 있어야 한다.

"거창교도소 문제로 거창이 시끄럽습니다. 거창교도소 반대 카톡방에 1000명의 사람들이 채팅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마다 관련된 인쇄물을 만들 것입니다. 이게 일종의 연습인 것입니다. 기자들은 많이 있습니다. 글 쓸 사람은 널렸습니다."
 
남들이 하는 뻔한 식으로 하지 않고도 신문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인구 6만 3000명의 거창에서 회원 100명을 살짝 넘긴 행언련 거창지부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궁금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