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안 숙여도 되는 빨래 건조대 개발한 사연

'세탁물을 널고 걷으면서 힘들고 짜증 내신 적 없으세요? 가정에서 이 일만큼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들이는 게 또 있을까요?'

생활용품 판매 기업인 수빈홈아트( www.sbhomeart.co.kr ) 회사소개를 보면 이 같은 문구가 있다. 빨래 건조대에 세탁물을 널어봤다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바닥 청소나 설거지 등 대부분 집안일은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가 대신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빨래를 널고 걷는 일만큼은 사람이 직접 하고 있다.

가정에 하나쯤 있는 빨래 건조대는 보통 사용할 때 허리를 숙여 바닥에 있는 세탁물을 건져 올리는 모습이다. 수빈홈아트는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빨래 건조대를 개발해 팔고 있다. 빨래 건조대 가운데에 세탁물 바구니를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 핵심 특징이다.

집안일 하다가 문득 스친 생각

진주가 고향인 수빈홈아트 오수빈(26) 대표는 일상 속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을 쉬면서 집에서 어머니 일을 도왔죠. 청소나 빨래를 다 기계가 해주는데, 빨래 너는 건 사람이 해야 하더라고요. 시간이 오래 걸렸고, 하기 싫었죠.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건조대 옆에 의자를 두고 그 위에 빨래 바구니를 놓았더니 일이 수월해졌고 시간도 단축됐죠. 그때 허리 안 숙여도 되는 건조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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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빈 수빈홈아트 대표./박일호 기자

오 대표는 대학시절 이런 건조대에 관한 특허를 냈다. '발명과 특허'라는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당시에는 현재 판매하는 상품과는 조금 달랐다. 건조대 가운데에 바구니를 올릴 수 있는 기능 말고도 온갖 기능을 넣은 형태였다.

특허가 있으니 자연스레 창업까지 생각하게 됐다. 상품화하면 소위 대박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쉽게 현실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대학 2학년이던 오 대표는 아이디어 상품화를 지원해주는 정부 사업을 알게 됐고, 건조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심사에 이어 재심사까지 두 번이나 떨어졌다. 실패를 거듭한 까닭을 곰곰이 따져봤다.

상품이 되기에는 건조대 기능이 과하다 싶었다. 핵심 기능만 살려 다시 도전에 나서게 됐다. 그는 3학년이던 2011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고, 차츰 결실을 보게 된다. 이곳 교육과 함께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렸다. 수빈홈아트.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고, 앞으로 빨래 건조대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전 품목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같은 해 올해의 여성발명인상을 받았고,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과 서울국제발명전,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등에서 잇따라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주부를 생각해주는 빨래 건조대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든 상품의 이름은 '남편보다 편한 건조대'였다. "지금은 이게 12만 원대에 팔리는데, 처음 만든 제품이다 보니 무조건 좋고, 튼튼하고, 기능이 많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죠. 그래서 가격이 올라갔고, 실제로 구매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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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빈 수빈홈아트 대표./박일호 기자

복잡한 기능을 줄이고 자재도 바꿔 석 달 정도 전에 내놓은 상품에는 '캥거루 건조대'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는 기본형(7만 원대)과 아래쪽에 살대가 더 많은 세트형(9만 원대)으로 나뉜다. 3만~4만 원 정도인 기존 건조대보다는 높은 가격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핵심 기능은 빨래 바구니를 바닥에 두지 않고 건조대 중간에 놓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빨래 너는 시간이 오래 걸리던 단점을 개선했다. 빨래를 널고 걷을 때 허리가 아팠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주부들이 반길 만한 기능이다.

아울러 건조대 살대가 탈부착 되는 것도 특징이다. "기존 건조대를 사용해보면 다른 데는 멀쩡한데, 살대가 훼손되는 예가 많더라고요. 살대가 2~3개 빠져서 망가지면 결국엔 건조대 전체를 다시 사야 하죠. 반면 우리 건조대는 살대를 따로 건조대 액세서리로 판매하고 있어요. 살대만 따로 사서 교체하면 되죠. 훨씬 경제적이라고 봐요."

또 기존 건조대에는 살대가 세로로 달렸다. 살대 하나는 수건 한 장과 함께 양말 또는 속옷을 널 수 있는 너비다. 이와 달리 수빈홈아트 건조대는 살대가 가로로 달렸다. 수건 두 장까지 널 수 있도록 공간을 늘린 것이다. "수건을 기준으로 실험해보니 우리 건조대에는 53장을 널 수 있더라고요. 일반 마트에서 파는 건조대에는 26장, 접이형 건조대에는 48장 널리던데, 비교하면 우리 제품이 대용량이죠."

기존 건조대보다 커서 이불 두 장을 함께 널 수도 있다. 비교적 튼튼한 구조로 어린이나 여성이 올라가 앉아도 건조대가 견뎌냈다(?)고 한다. "바구니를 놓는 칸 아래에 있는 회동부가 전체 무게를 분산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스테인리스도 좀 더 두꺼운 재질을 썼고요."

창업 4년차 만족스럽다

어렸을 때는 '여장부'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오 대표가 대학 진학 때 선택한 곳도 남자들이 비교적 많은 공대였다. 순천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그는 학창시절 주도적으로 나서서 같은 학과 친구들과 함께 '두드림'이라는 창업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전국 규모로 열리는 창업 캠프 등에 참가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대학에 취업 동아리들은 활발했지만, 창업 동아리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전국 창업 캠프에 나가보니까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뛰어난 아이템으로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죠. 또 지방에는 왜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이 없을까, 왜 창업에 대해 홍보가 많이 안 돼 있을까 고민하게 됐죠."

이후 대학 생활에 창업사관학교 교육까지 바쁘게 살았다. "2011년에는 대학에 다니면서 교육을 받으러 경기도 안산까지 왔다갔다하면서 굉장히 바빴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2012년 초에 지나간 해를 되돌아보니까 진짜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고요. 여태까지 대입이나 시험 같은 데 결과가 나와도 만족을 느낀 적이 없는데, 이 일을 하면서는 완전히 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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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빈 수빈홈아트 대표./박일호 기자

창업한 지 4년차인 지금도 자신의 일과 삶에 만족한다. "초창기에는 자금 문제 등으로 힘들어서 너무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지금은 주변에 직장생활을 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 보통 주어진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 일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어서 만족감이 커요."

"월급 못 주는 사장은 되고 싶지 않다"

원래 수빈홈아트는 오 대표 1인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직원과 근로장학생 2~3명이 함께 일한다. "우리 기업을 홍보할 때면 적어도 수십 명이 같이 일하는 줄 알아요. 제조와 판매, 마케팅까지 모두 하면서 수출도 추진 중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제가 돌아다니면서 발품 팔고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직원을 고용했는데, 월급 제대로 못 주는 사장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조금 더 여유가 생겼을 때 좋은 환경에서 직원을 뽑고 싶어요."

수빈홈아트는 경남과학기술대 산학협력관에 입주해 있다. 또 경기 구리시와 남양주시에 각각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앞으로 5년 안에는 작은 조립 공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전 생활용품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건조대 개발 직후 작게나마 블로그로 제품 홍보를 시작했다. 회사 누리집도 지난해 초 쇼핑몰 형태로 개편했다. 중개형 인터넷 쇼핑몰이나 유명 대형 쇼핑몰은 수수료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 제품을 좋아할 주부를 대상으로 무료 체험단 운영을 고민하던 때였다. 홍보와 소비자 체험단을 지원해주는 중소기업진흥공단 HIT500 사업을 만날 수 있었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품을 홍보할 기회였다. 지난해 이 사업에 선정된 수빈홈아트 빨래 건조대에는 주부, 육아 카페에 가입한 이들의 호응이 컸다. 이런 반응에 오 대표도 자신감이 생겼다.

수빈홈아트 누리집 대문에는 밴드 장미여관의 육중완이 빨래를 너는 사진이 나온다.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그가 수빈홈아트 빨래 건조대를 쓰는 모습이다. 육중완이 이 건조대를 쓸 수 있었던 데는 오 대표의 끈기(?)가 한몫했다.

"MBC 〈무한도전〉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 육중완 씨 옥탑방이 나오더라고요. 보자마자 저기에 우리 빨래 건조대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옥탑방 주소를 알아내 건조대를 선물로 보내주고 싶었는데, 주소는 결국 못 알아냈어요. 소속사로 전화해서 꼭 전달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건조대가 육중완 씨에게 잘 전달됐는지 계속 확인 전화를 넣었어요."

서울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육중완 옥탑방이 방송에 나오는데, 건조대도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진짜 우리 건조대를 쓰고 있더라고요. (웃음) 사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품을 홍보하려면 PPL(간접광고)로 몇천만 원씩 홍보 비용을 줘야 한다고 들었어요. 이번 일로 비용을 절약해서 홍보할 수 있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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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빈 수빈홈아트 대표./박일호 기자

차별된 아이템으로 살아남기

올해 수빈홈아트는 사업 확장의 전환점을 맞았다. 한 대형마트 전국 매장으로 물량을 공급할 예정이고, 올해 말에는 미국 종합홈쇼핑 업체인 QVC를 통해 독일과 일본에도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중 일본으로 수출하는 건조대는 생활환경에 맞춰 크기를 조금 줄여 제품을 공급하게 된다. 지난해까지 매출은 4억 원 정도였지만, 대형마트 공급과 수출 등에 힘입어 올해 6억여 원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창업에서 성장까지 확신이 생겼기에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다. "아이템은 차별성이 있어야 해요. 사실 건조대는 레드오션(red ocean·이미 잘 알려져 경쟁이 치열해 붉은(red) 피를 흘려야 하는 시장)이었죠. 건조대 안 쓰는 가정을 찾기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꾸준히 판매하고 다음 제품까지 개발할 수 있었던 건 기존 상품과 차별점이 있었고, 써본 사람들도 인정해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 대표는 창업 제조기업 운영자로서 정부에 대한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제조업을 두고 종합예술이라고도 해요. 설계부터 디자인, 원자재, 조립, 판매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힘들죠. 요즘 기업들한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제작 등도 많이 지원해주는데요. 이처럼 정부에서 제조업 지원 방안을 다양하게 늘려줬으면 해요."

일확천금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솔직히 제품이 잘 팔려서 일확천금 꿈도 꿔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계속 해보니까 잘되는 회사는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꾸준히 죽지 않고 살아오다가 기회를 만나면 잘되는 것 같아요. 살아남는 게 우선이고, 고비가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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