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어린 전통예술에서 유쾌한 삶의 소통으로

"예이, 이놈 말뚝이 여기 납시오."

진주오광대 셋째마당 말뚝이놀음에서 하인 말뚝이가 무식한 주인 양반을 골려줄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지고 웃음이 터졌다. 신이 난 아이들이 무대를 오르락내리락하고, 갑자기 말뚝이가 관객을 잡아끌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하고 그야말로 '축제한마당'이었다. 

제17회 진주탈춤한마당은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진주 남강야외공연장에서 열려 사흘 동안의 축제 일정을 마쳤다. 시민들의 참여와 즐거움은 컸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신명어린 소통이었다. 너나없이 탈춤을 비롯한 다양한 마당놀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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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란 기자

진주탈춤한마당은 1996년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 지역 탈춤축제로, 진주오광대보존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축제는 9월 12일 첫째 날 오전 10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학협력관 대강당에서 '천년의 진주 소리를 꺼내다' 주제의 '학예굿'으로 시작됐다.

김수업 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올해는 '이선유 판소리 복원 연주단'과 '솟대쟁이놀이보존회'를 선보이게 돼 기쁘다"며 "판소리 동편제의 큰 봉우리인 명창 이선유의 소리를 70년 만에 들려주고, 80년 만에 솟대쟁이 놀이를 되살려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학예굿에서는 진주삼천포12차농악보존회가 '진주농악 지신밟기'를 재현했고, 춘당 김수악의 구음소리를 영상으로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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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춤 공연./권영란 기자

둘째 날에는 '일본 카구라 설명'이 경상대 인문대학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남강야외공연장에서는 다양한 탈춤 공연이 펼쳐졌다. 올해 축제는 侍(모심)이란 주제로 한국탈춤공연 5개 팀, 마당극 3개 팀, 축하공연 4개 팀, 기획·특별공연 2개 팀, 대동굿 등으로 나뉘어 다채롭게 진행됐다. 

고성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통영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진주오광대(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7호) 공연에 이어, 청소년봉산탈춤과 어린이 진주오광대(진주 주약초등학교)가 선보여 웃음과 감동을 끌어내기도 했다.

창작탈춤·마당극으로는 동학 120주년 역사 맞이 굿 '칼노래 칼춤'(민족미학연구소)과 '오마이 갓뎅'(극단 자갈치), '덕만이 결혼원정기'(마당극패 우금치)가 차례로 공연됐다. 솟대쟁이놀이보존회는 '놀판살판'을 공연하고, 이선유 판소리 복원 예술단은 동편제 판소리를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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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 페인팅 부스도 인기를 끌었다./권영란 기자

특히 '솟대쟁이놀이'는 1936년 황해도 공연이후 78년 만에 시연된 것이라 눈길을 끌었다. 현재 12차농악의 젊은 풍물꾼들이 솟대쟁이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여기에다 하동 출신이지만 진주에서 활동했던 동편제 이선유(1873~1949) 명창의 소리를 잇는 공연이 있었다.

이밖에 진도북춤(풍류춤연구소), 부토 퍼포먼스(서승아), 다이스케 스트리스 서커스(오우치 하야토), 진주삼천포12차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전통줄타기(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등이 펼쳐졌다. 축제 마지막 날 전통예술원 마루가 대동놀이인 '누렁이등동타기'를 시민들과 함께 펼쳤을 때는 환호와 아쉬움이 함께했다.

축제 기간 동안 행사장에서는 탈 만들기, 탈 탁본짜기, 탈 색칠하기, 탈 페이스페인팅, 꼬마솟대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려 공연 시간보다 이른 시간부터 시민들이 찾아와 다양한 체험을 즐기기도 했다. 또 아이쿱진주생협에서는 건강한 먹거리, 우리밀 살리기를 주제로 시민들에게 우리밀국수 나눔 행사 등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솟대쟁이놀이 78년 만에 처음 선보여

농악이 울리고, 놀이꾼들은 솟대 꼭대기에서 쌍줄을 타고, 죽방울을 하늘높이 던져받는다. 얼른(요술)을 펼쳐 보이고, 버나를 쉴 새 없이 돌리고….

78년 만에 솟대쟁이패 놀이 깃발이 진주 남강가에 올려졌다. 올해 진주탈춤한마당에서 내심 기대가 되는 공연이었다. 놀이판에서 새로운 놀이가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400여 관중의 박수와 환호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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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란 기자

이번 축제에서는 '솟대쟁이놀이보존회'가 그동안 맥이 끊어졌던 솟대쟁이놀이를 78년 만에 복원, 처음으로 공개해 더욱 뜻 깊은 축제였다. 

솟대쟁이패는 진주삼천포12차농악의 뿌리이며 우리나라 교예단(서커스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랑예인 집단으로, 1900년대 전후 진주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전국을 돌며 활동했다. 남사당패와 쌍벽을 이룰 만큼 명성이 높았지만 1936년 황해도 원산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돼 맥이 끊어졌던 것. 

이번 축제에서 솟대쟁이놀이 시연을 관람한 김경진(38·진주 하대동) 씨는 "솟대쟁이 말이 생소한데 진주에 뿌리를 둔 지역문화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며 "서커스 문화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 놀이에 버나놀이, 얼른 등 다양한 기예가 있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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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공연 '부토'./권영란 기자

남성진 솟대쟁이놀이보존회 부회장은 "새미놀이(줄타기), 얼른(요술) 등 전하지 않는 기예를 재현하고 복원하는 어려움이 컸다"며 "하지만 이미 진주삼천포농악, 진주오광대가 복원 전승되고 있는데다가 그동안의 연구 활동과 전통예술인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또 남 부회장은 "11월 1일 솟대쟁이놀이 복원재현공연 및 학술행사를 정식으로 열 예정"이라며 "소중한 지역 문화자원를 찾는 작업이니 앞으로 보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현장 인터뷰>
 
"지역 전통문화축제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절실"
강동옥 진주탈춤한마당 집행위원장

제17회 진주탈춤한마당 성황리에 끝났지만 예산 삭감으로 프로그램에 빠진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탈춤 공연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작년에 이어 올해 축제에서도 동아시아 탈춤 공연이 빠져있자 관람객들은 진주탈춤제전위원회를 찾아와 이유를 묻거나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권성표(42·산청군) 씨는 "재작년까지는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탈춤과 우리나라 탈춤을 비교체험 할 수 있어 좋았다"며 "수년 동안 공연해오던 것을 갑자기 안 하는 사정이 궁금하다"고 물었다.

진주탈춤한마당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회 정도, '진주탈춤한마당 동아시아탈춤축전'으로 열어왔던 것.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탈춤 공연팀을 초청해 동아시아 나라의 탈춤 비교 연구는 물론 국제적인 교류를 쌓아왔던 것이다. 

"일본의 카구라 공연 등은 일본 관광을 간다 해도 보기 힘들잖아요. 근데 진주에서 바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아쉽네요. 특히 중국 변검 공연은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하고 관객 호응도가 좋은 공연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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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옥 진주탈춤한마당 집행위원장./권영란 기자

권 씨 외 다수의 관람객들은 축제를 통해 다른 나라 탈춤과 기예를 볼 수 있는 더없는 기회라 여겨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진주탈춤한마당제전위원회 강동옥 집행위원장을 만나보았다. 강 집행위원장은 제17회 진주탈춤한마당이 열리는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0여 명의 스태프와 2박 3일 밤낮으로 남강 야외공연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대 설치작업 감독하랴 공연 출연하랴 분주한 그를 잠시 잡아 세웠다.

-진주탈춤한마당은 어떤 축제입니까.

"진주탈춤한마당은 1996년 삼광문화재단과 지역전통예술인들이 주체가 되어 시작한 민간 주도의 자발적인 전통문화축제입니다. 전국 최초의 탈춤축제입니다. 처음에는 전국 대학생 탈춤경연대회를 중심으로 열렸는데, 1998년부터는 전국민족예술인들이 참여해 탈춤을 중심으로 종합연행축제로 구성돼 있습니다."

-탈춤한마당의 의미와 가치는 어떤 점인지요. 

"탈춤은 풍자 해학이 핵심입니다. 봉건사회 억압구조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고 스스로 놀이로써 푸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정서가 희미해진다면 탈춤이 아닌 거죠. 한 마디로 탈춤한마당은 역사 속 민중들의 정서와 정신을 이어나가는 거지요." 

-매년 5월 마지막 주 하던 축제가 올해는 좀 늦었지요.

"예기치 않은 비극적인 일이 나라 안에 일어났는데…, 미룰 수밖에 없었지요. 아마 올해 5월에는 예정됐던 대부분의 마당놀이나 전통놀이는 취소 또는 연기됐을 겁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올해가 17회더군요.

"2002년과 2003년, 두 해는 진주논개제와 통합해서 했는데 2004년부터는 다시 독립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통합해서 한두 해를 빼니 17회가 됩니다."

-그동안의 성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2003년 진주오광대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는데, 60년 동안 중단됐던 진주오광대가 이 축제를 통해 복원됐다고 할 수 있지요. 또 의암별제와 더불어 2002년 진주논개제를 창립하는 토대를 마련한 점입니다. 2007년 이후는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탈춤축전으로 거듭나면서 주변 여러 나라와 탈춤을 통한 교류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탈춤이 일정 속에 없던데요.

"그동안 동아시아 탈춤팀을 초청해 비교 연구는 물론 국제적인 교류를 쌓아왔습니다. 시민들도 축제를 통해 다른 나라 탈춤과 기예를 볼 수 있는 더없는 기회라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지원 예산이 줄어들어 초청할 형편이 안 됩니다. 그동안 쌓아온 교류나 성과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실 말씀이 많겠지만 한마디만 하신다면.

"전통문화나 놀이가 당장 돈이 되지도 않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않는다고 국가 행정에서 너무 소홀히 합니다. 전통문화예술의 조예가 없는 거지요. 이벤트성 지역관광축제하고 비교하는 건 말이 안되는 겁니다. 지향점, 예술관, 가치가 다릅니다. 공연 현장에 와서 시민들이 어떻게 즐기는지 연행자들이 얼마나 애를 쓰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축제의 의미, 가치를 좀 따져봤음 합니다. 민족문화,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문화 정책이나 담당자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시간을 내어 찾고 즐기는 시민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더욱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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