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낭을 펴서 햇볕에 말린다. 빨래도 양지 바른 곳에 여기저기 걸쳐 놓는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다. 고개를 들자 구름 한 점 없는 바다색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설산들이 여전히 우뚝하다. 이곳은 해발 3800m 묵티나트 계곡. 어제 해발 5400m 토롱라를 넘는 것으로 네팔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지난 셈이다. 막상 묵티나트 땅에 두 발을 딛고 서니 무언가 성취했다는 느낌은 없다. 어차피 모든 목적지는 또 다른 길의 시작일 뿐. 여기서부터 길은 다시 낯선 곳으로 이어진다. 햇볕에 잘 마른 침낭을 걷어 안는다. 침낭에서 묵티나트 냄새가 난다.

14시간 30분. 하이캠프를 출발해 토롱라를 넘어 묵티나트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생애처럼 긴 하루였다. 

토롱라와 묵티나트의 고도차는 1600m. 하산하는 방향이어서 걷기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눈 쌓인 내리막길은 경사도 큰데다 미끄러워서 걷기보다도 굴러서 내려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그나마 앞서간 이들이 눈 더미 사이로 만든 길이 통로처럼 남아있어 다행이다. 

20140914010211.jpg
▲ 해발 5400m 토랑라를 넘어 해발 3800m 묵티나트로 내려가는 트래커들./이서후 기자

떠나기 전 가이드들의 이야기로는 맑은 날이라도 이곳의 체감 기온은 영하 40도 정도라고 한다. 지리산이 오히려 여기보다 더 춥다며 자신만만해하던 한국 아저씨는 출발한 지 30분 만에 들고간 핫팩 전부를 온몸에 붙이느라 호들갑이었다. 다행히 난 춥지는 않다. 한국에서 사온 거위털 등산 바지와 네팔에서 5만 원 주고 산 오리털 재킷이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있어서다.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대나무 지팡이를 버린다. 계속 쥐고 있다가는 손에 동상이 걸릴 것 같아서다. 지팡이를 버리고 나니 걷는 시간보다 넘어지는 시간이 더 많다. 손을 짚으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이제 그마저도 귀찮아진다. 넘어지면서 눈밭을 짚는 바람에 장갑도 모두 젖었다. 손이 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장갑도 버린다. 그리고 맨손을 모두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눈길에 넘어져도 이젠 손을 뺄 힘도 없어 그냥 잠시 드러누웠다 일어난다.

20140914010213.jpg
▲ 숙소가 즐비하게 늘어선 묵티나트 거리./이서후 기자

아, 내리막길이 지겹도록 길다. 몇 시간 째 눈길에 미끄러지느라 지친 빈과 나는 배낭을 멘 채로 바위 위에 기대앉는다. 가만히 빈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여전히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도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배낭에 남겨 둔 초콜릿 바를 먹는다. 둘 다 멍하니 설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빈이 말한다. 형, 토롱라를 넘을 때 있잖아요. 그렇게 넋이 나간 상태로 걷고 있는데도 고개를 들면 토롱라 주변 설산들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거에요. 다시 둘 다 말이 없다. 가만히 빈이 본 그 풍경을 상상해본다.

산 속에서 해가 진다. 해진 자리에 보랏빛 어스름만 남았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다. 마을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지칠 대로 지친데다 마음이 불안해진 빈은 어디 빈 헛간이라도 들어가 자야겠다고 난리다. 글쎄 최악의 상황이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아직 길이 보이잖아. 갑자기 빈이 미친 듯이 달려간다. 저 멀리 조그만 건물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와 산 아래로 가는 게 보인다. 빈은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저 녀석이 드디어 미쳤구나 싶다. 빈은 거의 날다시피 눈길을 뛰어 내려가 사람들을 부른다. 하지만 그들은 아까 토롱라 정상에서 빈에서 초콜릿 바를 주고 먼저 내려간 트래커들이다. 자기네들도 건물 문이 잠겨서 묵티나트까지 가는 길이라고 한다.

20140914010217.jpg
▲ 묵티나트를 출발해 좀솜으로 가는 지프./이서후 기자

모든 걸 체념한 빈은 묵묵히 걷고만 있다. 어둔 길을 두어 시간 걸었을까? 불빛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묵티나트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아치를 지나자 맥이 풀린다. 제일 처음 나오는 숙소에 무조건 짐을 풀까 하다가 그냥 지나친다. 분명히 우리 일행이 근처 어디에 묵고 있을 것 같아서다. 세 번째 숙소 식당 창가에 앉은 이들의 뒷모습이 익숙하다. 그리고 그 숙소 현간 앞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포터(짐꾼) 림부가 보인다. 림부씨는 우리를 보자 얼굴 한가득 웃음이 번진다. 우리를 찾아 다시 설산을 올라야 하나 망설이던 참이란다.

식당 난로 가에 웅크리고 앉은 일행은 마치 전쟁터에서 후송된 부상병들 같다. 대부분 손발에 동상이 걸렸다. 한 명은 눈이 멀었다. 바보같이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단다. 설맹이다. 동상이 심한 이들과 눈이 먼 사람은 다음 날 바로 지프를 타고 좀솜(해발 2720m) 마을로 가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은 묵티나트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몸을 추스를 생각이다. 해발 3800m 묵티나트의 밤은 여전히 추웠다. 하지만 낙오하지 않고 토롱라를 넘어왔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잠자리는 푸근했다.

20140914010214.jpg
▲ 묵티나트 사원 입구./이서후 기자

눈부시게 맑은 아침, 양동이에 더운물을 받아 샤워를 한다. 몸을 씻는 게 4일 만이다. 몸도 말릴 겸 숙소 옥상에서 해바라기를 한다. 저 멀리 어젯밤 빈과 내가 걸어나온 설산이 보인다. 토롱라를 넘어온 일이 마치 몇십 년 전의 일인 것처럼 아득하다. 묵티나트는 생각보다 훨씬 큰 마을이다. 마을 뒤편 언덕에 묵티나트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과 함께 힌두교 2대 성지이면서 티베트 불교 성지이기도 하다. 이 황량한 마을에 숙소와 상가가 많은 이유다. 숙소 주인은 성지 순례 기간이면 순례객들이 입구에서 우리 숙소까지 1㎞ 넘게 줄을 선다고 말했다.

터벅터벅 혼자 눈길을 걸어 사원으로 가는 길을 오른다. 긴 담벼락이 사원이 있는 땅을 에워싸고 있다. 중심 건물인 묵티나트 템플은 티베트 불교 사찰이다. 그 조금 아래 힌두교 시바 신을 모신 사원이 있다. 사원 주변은 너무나 적막하다. 적막해서 춥다. 애써 풍경을 보지 않으면 울컥 외로워질 것 같다. 외로움은 차라리 익숙하다. 하지만 적막은 여전히 견디기 어렵다. 서둘러 사원을 나온다.

20140914010208.jpg
▲ 칼리간다키 강바닥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는 영실 호섭 부부./이서후 기자

다음 날 몸이 힘든 빈은 묵티나트에서 지프를 타고 비행장이 있는 좀솜 마을로 떠났다. 이제 남은 일행은 나와 영실·호섭 부부뿐이다. 서른 살 전후인 이 부부는 결혼을 하자마자 직장을 관두고 장기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 8개월째로 접어든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네팔을 찾았단다. 이 부부와 나는 다행히 몸도 성하고 시간 여유가 많다. 우리는 걸어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끝내기로 한다.

토롱라 이후부터는 쭉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묵티나트를 뒤로하고 우리는 풍경 속으로 아득하게 뻗어나간 길을 따라 걷고 있다. 풍경은 더없이 황량하다. 마음속까지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다들 쓸쓸함을 가만히 견디는 것일까,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다. 

산길이 강을 만난다. 만난다기에는 강은 협곡 저 아래 먼 곳에서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칼리간다키, 라고 불린다.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산맥 사이를 흐르는 지구 상에서 가장 깊은 계곡이다. 강바닥과 가장 높은 설산 봉우리 고도차는 4400m. 예로부터 수많은 상인과 순례자가 우리가 걷는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옛 시절 그들도 지금 우리처럼 풍경 앞에서 쓸쓸해했을까.

강을 끼고 내려가다 저 멀리 강변에 까그베니(해발 2800m) 마을이 보인다. 얼마 되지 않는 마을 밭에 연초록색 작물이 자라고 있다. 이 삭막한 풍경 속에서 저 마을만이 포근하게 살아 있다. 저 마을만이 유일하게 봄인 듯하다. 

20140914010206.jpg
▲ 칼리간다키 계곡 사이 신비스럽게 숨은 까그베니 마을./이서후 기자

까끄베니에서 길은 무스탕으로 이어진다. 강 건너편 벌거숭이 산에는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가느다란 길이 나있다. 무스탕은 네팔과 중국 티베트의 국경 근처에 숨어 있는 은둔의 땅이다. 지난 1991년 외국인 출입 금지 정책이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한해 출입 외국인을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곳이다. 저 멀리 무스탕을 향하는 길을 보며 그곳에 산다는 아주 순박한 주민들을 생각해 본다.

길이 드디어 강바닥으로 이어진다. 길과 강이 만나는 곳에 호텔 몇 개가 전부인 작은 마을 에클로바티(해발 2740m)가 있다. 서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메마른 마을 길, 그 길가 아담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좀솜으로 가는 길목이어선지 이 작은 곳에도 손님이 제법 있다. 옆 자리 트래커들이 왁자하게 네팔 막걸리인 '창'을 들이키고 있다. 아직 술을 마시기엔 고도가 높은 편이다.

이제부터는 강과 같은 높이에서 나란히 걷는다. 강은 메말라 넓은 강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중간으로 가느다란 강줄기가 흐른다. 드문드문 강줄기 위로 나무다리가 걸려있다. 강변에도 길이 있지만 우리는 굳이 강바닥으로만 걷는다. 넓은 물길을 만나면 스스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넌다. 그러다가 강줄기 저 멀리 좀솜(해발 2720m) 마을이 보인다.

좀솜에는 경비행기용 비행장이 있다. 큰 도시로 나가는 버스도 이곳에서 탈 수 있다. 특히 묵티나트나 무스탕으로 향하는 트레커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또 토롱라를 넘어온 트래커들이 주로 이곳까지 걸어온 다음 버스를 타고 안나푸르나를 떠난다. 그래서 좀솜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올라가는 길이냐 아니면 내려가는 길이냐다.

20140914010209.jpg
▲ 좀솜 마을 거리./이서후 기자

마을 큰길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어느 호텔 옥상에서 빈이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고 있다. 빈은 하루를 더 머물며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도 빈이 있는 호텔에 짐을 푼다. 제법 객실이 많은 곳이다. 안내문에 온천이 있다고 나와 있어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온천은 개뿔, 온수도 겨우 나온다. 결국 추위 속에서 샤워를 하다 담에 걸렸다.

저녁을 먹으려고 거리로 나선다. 호텔에도 식당이 있지만 마을 구경도 할 겸 해서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은 골목 한쪽, 조그만 식당에 들어선다. 적당히 낡고 아담한 것이 마음에 드는 곳이다. 메뉴를 보니 프라이드 치킨이 있다. 빈과 우리는 이별주를 겸해서 치킨과 애플 브랜디를 주문한다. 오랜만에 마시는 독한 술이다. 술이 식도를 지나 위로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얼큰한 기분으로 식당 문을 나서니 어둔 골목에 약한 가로등이 그림처럼 꼼짝도 않고 빛나고 있다. 그 모습이 문득 낯설어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내일이면 저 가로등 뒤편 어둠을 지나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문득 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일행을 뒤쫓는다. 이제는 제법 멀어져 버린 설산이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