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월정을 지나 심진동에서 내려오는 지우천과 만나다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황석산청소년수련원 입구 서하교에서 안의면을 지나 지곡면 남효리와 수동면 내백리를 잇는 남효교까지 이르는 구간은 앞서 얘기했던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구간과 함께 남강 상류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이라 해도 좋다.

농월정은 없지만 월연암 달은 언제 뜨나

서하교를 지난 물길은 안의면 월림리 농월정에 닿는다. 화림동 계곡의 정점이라 일컫는 곳이다. 계곡 양 옆으로는 휘돌아 내려온 물살에 씻기고 씻긴, 닳고 닳아 모난 곳이라곤 없는 흰 너럭바위가 드러누워 있다. 냅다 달릴 수 있을 만큼 반반하다. 솔직히 화림동 계곡은 오래전부터 매우 많은 글쟁이들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 곳이다. 여기에다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달리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달을 희롱한다는 ‘농월정(弄月亭)’이라니! 너럭바위에 고인 물웅덩이, 거기 비친 달과 실없이 서로 노닥거리다니 선계에 이른 마음이 따로 없지 않다 싶다. 

농월정은 지족당 박명부(1571~1639)가 지었다. 지족당은 노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월림리 방정마을에 종담서당을 지어 제자를 길렀고, 스스로 욕심을 다스리며 자연과 벗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농월정은 없다. 2003년 화재로 잃고 말았다. 정자 터로 쓰였던 너럭바위 월연암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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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월정 터 너럭바위 ‘월연암’. 지적당 박명부가 지었다는 농월정은 2003년 까닭모를 화재로 불타고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있다. /권영란 기자

“우중산책이라 불편한 것도 있지만 사람이 적어 좋구나. 농월정이 불타기 전에 대여섯 차례 온 적이 있는데 늘 사람들이 와글와글했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바로 요게서도 물을 건널 수 있었지. 농월정이 없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네.”

아버지는 정자가 없어 아쉽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뛰어난 풍광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자는 없지만 계곡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있다. 지금의 농월교는 2002년에 지어졌다. 계곡 건너로 가는 등산객이나 농월정에 오를 관광객을 위한 새 다리가 놓이고 나서 공교롭게도 그 이듬해인 2003년에 농월정이 불탔다. 아깝고 또 아깝다. 종담서원은 농월교로 들어서는 월림리 마을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 출입을 통제한 서원은 다만 기와지붕 위 풀대만 무성하다.

농월정 일대는 워낙 알려진 곳이라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는 김천, 대구 등에서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도로 사정이 좋아져서 그런지 전라도는 물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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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서동진 기자

“아무리 좋은 게 많이 생겨도 옛 사람들이 말하는 산 좋고 물 좋은 데가 최고지요.”

계곡 옆 동호식당에 앉은 관광객 예닐곱 명이 입을 모아 말한다. 

‘국민관광지 농월정’에 걸맞게 장맛비에도 관광버스 수십 대가 주차장을 메우고 있다. 이러니 함양군이 지난 3월 국민관광지 조성사업과 함께 농월정 복원사업을 하겠다며 본격적으로 나선 모양이다. 

농월교 위에 서서 계곡을 내려다보니 이미 작정한 장맛비는 계곡을 집어삼킬 듯 퍼붓는다. 물살은 금방이라도 월연암을 타고 오를 기세다. 금세 시야를 구분할 수 없는 비안개가 몰아친다.

남강 지류 지우천에 최초 물레방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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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동 계곡에 있는 안의면 상원리 물레방아공원은 함양군이 물레방아 최초 발상지임을 알리는 표석이기도 하다.  /권영란 기자
서상면에서 시작해 화림동 계곡까지 내려오는 물길은 남계천이라는 이름으로 안의면 월림교, 황대교, 후암교를 지난다. 거기에다 심진동 계곡(용추계곡)에서 내려온 지우천이 안의면 교북리 점풍교를 지나면서 합류한다. 

안의면 교북리에는 교북리와 월림리를 잇는 후암교와 교북리 남북을 잇는 점풍교다. 두 개의 다리가 ‘ㄱ’자로 맞닿아 있다. 물길은 이 두 개의 다리 앞에서 한 물길을 이뤄 안의면 소재지로 흘러든다. 

여기서 잠깐, ‘안의삼동’ 중 하나인 데다가 남강 지류인 지우천을 이루는 심진동 계곡을 빠뜨리고 지날 수는 없을 듯하다. 이곳에는 용추폭포와 옛 장수사 일주문, 연암 박지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세운 곳으로 알려진 안심마을이 있다.

심진동은 골짝에 들어 진리삼매경에 빠진다는 곳으로, 군립공원 기백산(1331m)과 황석산(1190m)을 낀 긴 계곡이다. 화림동 보다는 계곡이 깊고 험하다. 

“화림동은 암반이 단단하니 물이 넘쳐도 쓸어내리질 않아 반석이 많고, 심진동은 암반이 물러 쓸려 내려오는 게 많으니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가 많은 거제.”

아버지는 황석산을 가운데 두고 이웃해 있는 화림동과 심진동 계곡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짐작된다고 말했다.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심원정을 지나 꺽지소쯤을 지나면 계곡은 온통 비안개로 싸여 있다가 금방 개기를 반복한다.

기백산군립공원 입구 심원정에서 만난 서 씨 노인은 “화림동이 누정골이라면 심진동은 절골”이라며 “지형지세, 풍수에 맞게 다 쓰임새가 있다”고 말했다. 심진동 계곡에는 1500여 년 전 장수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이 절에 딸린 암자만 해도 10채가 넘고 해인사에 버금가는 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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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란 기자

지금 장수사는 절터만 있고, 일주문(경남유형문화재 제54호)만 남아있는데 단번에 눈길을 잡는다. 희한하다. 기둥은 허리통이 불룩하고 매우 우람하여 마치 포대화상 몸매다. 기둥에 이은 쇠서는 천상녀의 너울대는 치맛자락처럼 화려하다. 여러 번 단청 복원 작업을 했을 법도 하지만 여전히 고색을 띤 빛깔이 더욱 눈길을 끈다.

일주문에서 살짝 왼쪽으로 비껴가면 용추폭포가 있다. 높이가 15미터, 수심이 또 10미터가 넘는다는 용추폭포는 한 차례 소나기 퍼부은 뒤라 내리꽂히는 물기둥 그 위용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괴산 문경 보성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용추폭포 중에 으뜸이라 할 만하다. 이곳 또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다른 때 같으면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곳이 없겠지만 장마철이라 그런지 폭포 아래 몇 사람만 들락거린다.

용추폭포에서 안의면 소재지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는 계곡과 길을 앞으로 두고 산 쪽으로 ‘연암물레방아공원’이 있다. 함양군이 2004년 조성한 것으로 조선 실학 대가로 알려진 연암 박지원 동상과 대형 물레방아가 있다. 연암이 1792년 안의현감으로 와서 5년 동안 있을 때 물레방아를 만들어 세웠다는 안의면 신안리 안심마을은 이곳에서 1~2km 아래인 심진동 초입에 있다.

“저 할배가 물레방아를 만들었다네. 유명한가보이.”

“연자방아나 디딜방아로 쌔빠지게 하다가 올매나 좋았을까이.”

칠순이 넘은 듯한 아지매 서너 명이 툭툭 던지는 한 마디마디가 귀에 박힌다. 마을에 흐르는 개울을 이용해 쌀 방아를 찧었다니 당시로서는 얼마나 혁명적인 일이었을까 짐작조차 어렵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물레방아 역사는 2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마을 처녀총각이 물레방앗간에서 살짝살짝 만나더라는 옛 얘기도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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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란 기자

이곳에서 자동차로 5분 쯤 되돌아 나오니 안심마을이다. 마을 입구 도로변에 큰 마을 표지석이 눈에 띈다. ‘안심마을’이라 세로로 크게 새긴 데다 그 옆에 ‘연암물레방아 최초 발생지’라 새겨 있다. 인근에 떡마을도 있다고 한다.

남강은 안의면에 닿아 금호강이라 불린다

물길이 안의면소재지를 지날 쯤이면 유역은 더욱 넓고 평평하다. 물길은 제법 순해져 강다워 보인다.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강변 숲을 조성하고 보를 설치한 것이 눈에 띈다. 

안의면 교북리 관북마을 주민은 “이 물이 산청으로 진주 남강으로 흐르는 물”이라며 “여기서는 금호강이라 불린다”고 말했다. 금호강변에 조성된 숲은 5리에 걸쳐 있다 하여 안의 사람들은 ‘오리숲’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함양연암문화제가 열린다.

화림동에서 내려온 남계천과 심진동에서 내려온 지우천은 교동마을 언저리에서 합류해 안의면 교북리와 월림리를 잇는 안의대교 아래를 지난다. 안의면소재지에서 남강 물길은 어름한 ‘S’자 모양으로 흐른다. 

지금 안의 사람들은 이 강을 두고 ‘금호강’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동천’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우리 어렸을 때는 교가에 ‘금호강 푸른 물~’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제.”

안의면 토박이 정 씨 아재는 안의초등학교 출신임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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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동 계곡 용추폭포포. 높이 15미터, 수심 10미터가 넘는다./권영란 기자

안의초등학교는 102년이 된 초등학교이다. 교정에는 ‘연암 박지원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1986년 안의현감을 지낸 연암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한다. 

“여기가 옛날 동헌 자리라네. 연암이 5년 동안 현감으로 있던 시절 여기를 드나들었던 거제. 읍성철거령이 내려지자 학교가 들어섰던 것인데 어쨌든 연암의 기운이 제일 많이 남은 곳이제.”

아버지는 시골 학교가 이만한 규모를 갖기는 힘들다며 좋은 기운이 있어선지 출세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말하고는 웃고 말았다.

금호강 건너 금천리에 있는 광풍루(경남유형문화재 제92호)는 1412년 선화루로 건립됐지만 1494년 일두 정여창이 중건하면서 광풍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금호강 풍경과 안의읍내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2층 누각이지만 현재는 수리 중이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안의면은 동서남북으로 다 통하는 교통요충지다. 안의면 초입에 있는 금호강 건너 교북리 관북마을에는 역참이 있었고 역말이라 불렸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길목인 데다, 진주 사천 등 남쪽 사람들이 서울을 가려면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다. 

역사·문화는 물론이고 함양군 안에서 경제적 안정에도 안의면이 손꼽힌다. 사람이 끓으니 돈이 돌고 골고루 제법 살 만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면소재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어디 허술한 데가 없는 듯하다. 어느 집이나 살림이 다 반듯하고 톡톡해 보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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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수사 터에 남아있는 일주문은 기둥과 쇠서를 다듬은 방식이 화려하고 남다르다. 경남유형문화재 제54호. /권영란 기자

안의면 소재지에서 금호강이란 이름을 얻은 물길은 금천리를 동서로 잇는 안의교를 지나 석천교, 남강교를 차례로 지난다. 표지판의 남강교라는 말이 새삼 반갑다. 1999년 준공한 남강교는 안의면 석천리와 이전리를 이어 함양읍으로 들어가는 국도 24호선 길목이다. 

물길은 이내 강 오른쪽 망덕산에서 내려오는 안의천과 합류해 수동면 상백리를 잇는 금호교를 지난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을 경계로 행정구역을 지어놓으니 구불구불 S자로 흐르는 물길 때문에 지곡면이다 싶은 곳은 수동면이고 수동면이다 싶은 곳은 지곡면이다. 이곳 안의면 상백리 금호마을과 지곡면 남효리가 그렇다.

남강 물길은 남효리 들판 앞을 흘러 지곡면 소재지 창평교로 향한다. 지곡면 남효리에서 만난 정규인(82) 아재는 “남효리가 옛적에는 과거시험 보러 가는 선비들로 들끓었제. 그래서 요기를 ‘남서울’이라고 불렀다더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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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대교./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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