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꼴값’이라니, 당신들 정체가 뭡니까?

지역마다 이런저런 모임이 많이 만들어졌다. 끼리끼리 노닥거리는 것일 수도 있고 ‘뭐 재미있는 일 없나’ 싶어 재작거리를 찾는 일일 수도 있다. 단체도 많이 만들어졌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친교를 위한 계모임일 수도 있다. 이들의 다양한 표현,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번 호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입소문을 타고 들려오는 ‘끼리끼리 모임’을 찾아 이들의 수다를 엿듣고 재작을 엿본다. 첫 번째로 진주지역에 있는 ‘월간 꼴값’을 만났다.

‘월간 꼴값’이라니? 

모임 이름부터 유별나다. 진주지역에 최근 만들어진 모임이라 했다. 꼴값? 사전적 정의는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격에 맞지 않는 아니꼬운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대놓고 여럿이 모여 ‘꼴값을 떨겠다’고 한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인 거지? 대체 뭐하는 모임이지? ‘월간’이라니 잡지를 내는 모임인가 싶다. 

아이쿠나, 그러면 당신은 속은 것이다. 

지난 6월 30일 진주경찰서 앞 ‘웨이닝커피숍’. 자정을 넘어가는 시각에 실내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벽에 걸린 작품들을 떼어내고, 정리정돈을 하고…. 

월간 꼴값 전시팀원들. 좌로부터 김기종, 정민주, 강현호, 신지영, 박다정, 이수연.

편집장은 매달 ‘사다리 타기’로 뽑는다

먼저 정체부터 밝히고 얘기하자.

‘월간 꼴값’(이하 꼴값)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어디서든 전시가 이뤄질 수 있고, 즐거운 상상으로부터 출발한 공동체 전시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모든 빈 벽과 모든 공간은 갤러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전시를 둘러보면 사진, 그림, 딱히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거창한 목표를 두고 출발한 게 아니었다. 그저 지역에 생긴 문화공간들을 활용해 좀 재미있는 일을 벌여보자는 장난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반응이 좋았고 전시에 참여하고픈 이들이 늘어났다. 5월에 4명으로 시작한 것이 6월에는 10명으로 늘어났다. 

“매달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에 모임명 앞에 ‘월간’이라 붙였습니다. 붙여놓고 보니 더 그럴듯하고 재미있어 또 우리끼리 깔깔거렸지요. 잡지사처럼 우리도 편집장이 있습니다. 전시기획자를 큐레이터라 하는 것보다 편집장이라 칭하는 게 더 ‘월간지 스타일’이잖아요. 우리는 매달 새로운 특집기획의 월간지를 내듯이 새로운 전시를 기획합니다. 편집장도 매달 바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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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포스터, '고마움 미처 깨닫지 못한'을 주제로 4명의 작가가 첫 전시회를 열었다./월간 꼴값 제공

7월호 편집장인 정민주 씨의 말이다. 

꼴값은 현재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 1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연령대만큼 이들은 다양한 직종에서 일한다. 금융업에서부터 대학생, 공예강사, 자영업 등. 모임내 특별한 규제는 없다. 자유로운 상상만큼 자유로운 틀이다. 구성원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만 있다면 충돌 없이 일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박현호 씨는 “근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 달의 편집장을 뽑을 때 제비뽑듯이 ‘사다리 타기’를 해요. 능력이나 나이 등 우선순위가 없어요. 22살 제가 막내지만 당장 다음 달 편집장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귀띔한다. 

창단 멤버인 배길효 씨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누구든지 그 달에 전시를 하고 싶은 사람은 참여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딱히 강제성이 없어요. 앞서 말했듯이 편집장은 전시 참여자들 중 ‘사다리 타기’를 해서 뽑지요. 선출 편집장이 그 달의 공간과 주제를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고 작업은 온전히 그 달에 참여하는 작가 개개인에게 맡깁니다. 편집장의 취향과 개성이 반영된 월간 기획이 진행되는 거지요.”

전시 경비는 개인 작업 경비는 개인이 충당하고 모임회식이나 공공비용은 똑같이 분담한다. 한 달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4~5번 모이고, 평소에는 페이스북 비밀그룹 등 온라인으로 의논한다. 편집장은 전시 마감을 독려하고 아이디어를 조정하고 전시 디스플레이도 한다.

커피숍·식당 등 모든 일상 공간을 갤러리로

6월 전시 장소였던 ‘웨이닝커피숍’은 구성원중 한 사람인 김기종 씨가 운영한다. 전시 참여자로서 공간주로서는 전시 기간 동안 그가 가졌던 생각들이 궁금했다.

▲ 김기종 작 알탕꽃(송강식당 주메뉴인 알탕을 재해석한 사진 작품)./월간 꼴값 제공

“처음엔 조금 걱정은 되었지요. 어수선해질 수 있는 일이라. 더욱이 이곳은 주인의 취향을 담아내는 개인 커피숍이 아니라 체인점이라서 더 그랬지요. 프랜차이즈커피숍의 고정화된 이미지를 깨는 작업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흔적’이었습니다. 마치 커피숍에서 어큐스틱밴드가 공연할 때의 느낌이었지요. 솔직히 처음에 하자고 했을 때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고 나중에는 아이구 어떻게 되겠지라는 반은 포기 심정이 되더라구요. 근데 그때부터 마구 재미가 생겼어요.”

전시는 기대와는 달리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는 이도 드물었다. 그런데 10일쯤 지나니까 작품도 둘러보고 방명록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실내유리창으로 된 방명록은 공식적인 낙서판이 되었다. 손님이, 관람객이 참여함으로써 전시 기간 동안 ‘방명록’이라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시간이었다.

7월 전시 공간은 진주중앙시장 내 40년 가까이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송강식당’이다. 이곳은 시장 안 오래된 식당으로 좁은 1층 실내와 손님이 허리를 굽혀 드나들어야 하는 낮은 다락이 있다. 꼴값은 송강다락을 7월 전시 공간으로 정했다.

박채린 작 '비 a good 밀'. 즐거운 식사를 뜻하는 be a good meal에서 찾아낸 7월의 주제 '비밀'을 풀어낸 사진 작품./월간 꼴값 제공

“지역민들에게 오래 전부터 친근한 곳이고, 진주를 대표하는 중앙시장에 있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좁고 낮고 숨어있는 듯한 공간. 하지만 오래된 인연을 찾아가듯 설렘이 있는 전시 기획을 꿈꾸었을까. 하지만 송강식당 내부는 벽에 못을 칠 수가 없어 액자를 걸 수도 없고…. 전시공간으로서 상당히 어려운 여건이라 사실은 기획자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을 활용하는 등 여러 생각을 모아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송강식당에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는 점심과 저녁시간. 전시물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적다. 한참동안 줄을 섰다가 겨우 잡은 자리에서 밥을 먹기가 바쁘게 또 나가기 때문이다. 

“송강식당의 경우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락이 좁고 식당을 찾는 연령대도 대부분 중장년인데 오히려 공간 속에 녹아들어 작품인지 분간하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재미가 있었습니다. 반응들을 엿보는 것도… 하하.”

7월 꼴값 배너. '비밀'을 주제로 송강식당 다락방에서 열렸다. 총 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월간 꼴값 제공

살아있다면 심심하지 않을 자유를…

지역에 살고 있는 청춘들은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는 문화예술 작업 때문에 소외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꼴값은 문화든 생활이든 자신이 서있는 곳이 중심이고 기회는 옆에 있는 이들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하는 것도 큰 목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젊은 친구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합니다.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

꼴값은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도 있지만 계속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함께 소통하고 함께 삶의 재미를 만들어가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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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더 공감'에서 열렸던 월간 꼴값 5월호 전시 모습. 가정의 달을 맞아 '고마움 미처 깨닫지 못한'을 주제로 열렸던 창간전시회였다. 이 때만 해도 참여작가는 4명으로 소소한 출발이었다./월간 꼴값 제공

“오히려 실패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골목에서 거점공간과 예술가들을 매칭하는데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표현 방식도 자유롭고. 점점 놀이에 가까워진 거지요…. 선뜻 같이 하자고는 말 못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기웃기웃 탐색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제법 많아요. 점점 같이 하는 친구들이 늘어날 겁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형태의 동호회가 있고 단체가 있다. 하지만 이 많은 ‘끼리끼리 모임’들은 금방 해체되기도 한다. 더러 모임이 오래도록 지속하기 힘든 이유는 구성원에게 일관성, 획일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월간 꼴값’에는 규칙이나 규제보다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 재미와 자유, 즐거움이 있다. 재기발랄함과 발칙함을 무기로 매달 스스로 신선한 자극을 갖겠다는 게 이들의 의지이다. 살아있다면 심심하지 않을 자유, 미칠 자유를 이들은 찾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자유를 함께 누려보자는 것이다. 전문작가, 아마추어의 구분 없이 누구나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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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값의 회의는 언제나 자유롭고, 진지하며 즐겁다. 모든 회의는 놀이에 가깝게 진행된다.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1. 정민주(29)=금융업계의 신참. ‘7월호 송강식당 편’ 편집장을 맡았는데 편집증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집요했다. 아마 어려운 전시 여건에 당황해서 실패가 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으로 다들 말한다.

2. 신지영(29)=장갑공장 후계 수업중. 

3. 박채린(23)=조기졸업하고 임용고시 준비중. 글과 그림을 이용한 모든 종류의 낙서의 귀재. 스스로 낙서는 전시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벌써 2번의 참여로 스스로의 영역이 엄청 확장되는 걸 경험했다.

4. 배길효(42)=한 때 건축가였으나, 현재는 진주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다원 까페’의 9대 원장이다. 다원까페는 1982년 문을 열어 현재 32년 역사를 지닌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라 할 수 있다. 스스로를 “예술적 배설은 주로 사진작업을 통해 쏟아내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예술 기획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소개한다. 진주지역 자생적인 축제인 ‘골목길아트페스티벌’, 문화공간 펄짓재작소 등에서 큐레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5. 김기종(32)=‘웨이닝커피숍 중앙점’ 운영. 일상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상황이나 현상만을 사진으로 찍어왔는데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 찍는 경험은 처음이라 신났다고. 마감이나 약간의 지켜야 할 것이 즐거운 스트레스였지만 전시라는 것이 처음이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재미가 컸다.

6. 홍진실(26)=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Animator). 소박하면서도 한계 없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20대의 청춘. 그림과 이야기로 감성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으며, 심심할 때는 아트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쓸데없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친구들과 작업실 ‘토닥’을 운영하고 있다.

7. 이상민(36)=‘공간 M ’대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면서 평범한 삶을 꿈꾸다가 우연한 계기에 벽화를 만나서 작업을 하였고, 지금은 아주 작고작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펜화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공공미술영역을 회사의 메인으로 내세우며 문화 예술 도시 진주의 발전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8. 박다정(26)=공예강사이자 창업대학원생. 그리고 베이비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5월 첫 전시부터 참여했다. 6월 작품은 ‘내 삶 선택의 자유’였다. 다정 씨의 현재 열망이 들어있는 듯했다. 손글씨를 쓰고 난 뒤 누구든 그 위에 태그를 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진지하게, 자기대로의 생각을 넣어 태그를 달았더군요. 작품을 통해 익명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의미가 컸습니다.”

9. 강현호(22)=경상대 농학과 3학년. 그림을 그린다. 미술 쪽을 하고 싶었는데 한 번도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채 중학생 때부터 숯을 가지고 놀면서 혼자서 그림을 그려왔다. 요즘은 목탄화, 파스텔화를 주로 그린다. 그림 그리는 농부, 그림동화를 쓰는 농부로 살기를 꿈꾼다. 요즘은 어설프게나마 그림도 그리고 농사일도 하고 있어 참 행복한 청춘이다. 돈 없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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