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 마음처럼 지금도 ‘미용’이 좋아

어리고 겁 없는 게 ‘메리트’였던 19살 소녀는 마음 하나 붙일 곳 없는 서울에 가서 힘들기로 소문난 ‘연예인 코디네이터’가 된다. 동경했던 세계에 입성한 후 단맛, 쓴맛을 보고 지칠 만도 했지만 힘든 것과는 별개로 이 일이 천직이구나 싶었다. 고향인 마산으로 돌아와서도 일과 공부를 놓치지 않았던 소녀는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 전문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뛰는 미용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메이크업 시연 본 순간 ‘이거다’ 싶어

유진하(34) 교수는 어릴 때부터 꿈을 키워온 ‘미용 꿈나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걸 꿈 꿨던 것도 아니었다. 평생 손에 잡고 있을 일을 만난 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건 한마디로 소녀의 눈에 ‘있어’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들이 수능 치고 나면 한가한 때가 있잖아요. 그때 메이크업 학원에서 졸업하는 학생들 화장하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학원홍보도 하려고 고등학교에 오고했어요.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이랑 앉아서 우두커니 선생님들이 시연하고 하는 걸 봤어요. 근데 점점 눈에 들어오고 멋있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어요.”

일단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집에서 반대는 없었다. 스스로 판단한 것에 제동을 걸지는 않지만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이 책임지는 시스템(?)인 듯 했다. 유 교수는 가족의 암묵적인 동의와 대학등록금 대신 학원비를 받았다. 스스로도 무모한 것을 알았지만 끌렸던 느낌을 믿었다. 학원에서 차근차근 메이크업을 배워나가지 시작했다. 19살, 그렇게 업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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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하 조교수./서정인 기자

살벌한 그라운드로


학원에서 메이크업을 배운지 1년 6개월째. 좀이 쑤셨다. 취직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서울에 가고 싶었다. 화려한 세계가 끌렸고 그 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 연예인도 많이 볼 수 있다는 ‘연예인 코디네이터’가 하고 싶어졌다. 다행히 다니던 학원의 서울 본사를 통해 방송국 면접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학원에서 메이크업을 배우고 나니 서울에 가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학원을 통해 면접 기회를 잡아서 무작정 서울에 갔죠. 취업을 할 거라고 간 거긴 한데 어린 마음에 그보다는 연예인 보고 그런 생활을 동경한 거죠.(웃음)”

당찬 기세로 면접을 봤지만 먼저 쓴맛부터 봤다.

“처음에 방송국 면접을 봤어요. 근데 지방 출신이다 보니 취업이 잘 안되더라고요. 두세 번 정도 떨어졌어요. 사투리도 쓰고 서울 지리도 잘 모르고 하니까 일하면서 그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겠죠. 그러다 남희석, 이휘재가 있는 연예기획사 면접을 보게 됐고 면접에 합격해서 코디네이터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연예인 코디’라는 직업에 대해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만 하더라도 만만한 일은 아닌 듯이 보였었다. 더구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무 살에게는 더욱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일단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죠. 전날 일이 밤에 끝났든 새벽에 끝났든 스케쥴에 맞춰서 무조건 일어나야 했어요. 제가 맡은 연예인이 남희석 씨 였는데 그 당시에 아주 잘 나갔거든요(웃음). 옷이나 소품 같은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것도 힘들었죠. 한번은 길을 잘못 들어서 방송사고도 냈어요. 새벽에 방송이 잡혀 있었는데 연예인이 방송에서 입을 옷을 제가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길을 잘못 찾아간 거죠. 완전 반대방향으로요. 그래서 늦어서 방송이 지연되기도 했어요. 아찔했죠.”

일의 강도는 엄청났지만 월급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불규칙한 ‘생계유지비’ 정도만 받고 1년 동안 낯선 서울을 누볐다.

“그 당시에 실무를 배우고 경험을 한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하게 돈을 받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못 했어요. 고용한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요. 그 세계의 암묵적인 규칙이죠.” 

마음 붙일 또래 친구도 비빌 수 있는 친척도 서울에 없었다. 화려한 세계로 들어가 보니 보지 못했던 어두운 등잔 밑도 보였다. 하지만 유진하 교수는 그 생활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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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하 조교수./서정인 기자

“한번은 비가 오는 날에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촬영을 하는데 그전 촬영장에 남희석 씨가 우산을 놓고 온 거예요. 비싸고 좋은 우산이래요. 근데 원래는 그분이 그런 사람이 아니고 굉장히 신사적이고 좋으신 분이었는데 그날따라 저한테 2만 원을 딱 주시면서 갑자기 우산을 찾아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비가 막 오는 데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녀왔죠. 우산을 찾아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왠지 모르게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근데 한참 뒤에 남희석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요. 그때는 서럽기만 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더 정신 바짝 차리고 내가 맡은 일을 진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다시 학생으로


서울 생활을 한 기간은 1년. 생각보다 짧은 기간에 일이 정말 고됐구나 싶었는데 유 교수는 일이 힘들어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현장에서 느낀 벽 때문에 더 공부하고자 일단 마산으로 다시 왔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서울로 돌아가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유 교수는 서울에서 오자마자 마산대학교 뷰티케어학부에 입학했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헤어디자인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당시만 해도 메이크업과 옷은 담당 코디네이터가 맡더라도 머리는 미용실에 가서 했어요. 머리 하는 기술을 배우면 경쟁력이 더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죠. 돌아와서 학교에서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고는 낮에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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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대학교./서정인 기자

일과 공부 사이에서 쉴 틈이 없는 생활. 아무리 의욕이 있다 해도 만만치 않은 생활이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 교수는 그 생활을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워낙 다양하고 힘든 일을 많이 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여기 마산대학교 다니다가 진주국제대에 편입하고 거기 대학원을 졸업했죠. 그리고 마산대에서 강의할 기회가 와서 강의도 하고 중간에 제 개인 가게도 운영했었는데 학교 일이랑 병행하면 안 돼서 접었죠. 그리고 지금은 경남대학교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아직 논문은 안 쓴 상태에요. 여기서 일이 계속 이어져서 서울은 다시 못 갔고 24살에 좀 빨리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아이도 셋 있어요(웃음).”

현장에서 뛰고 싶어

유 교수는 학교에서 파마, 커트 등 미용 실전 기술과 공중위생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유 교수는 쓸데없이 가감을 하지 않았다. 솔직하고 쾌활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비췄다. 마산대학교 조교수이긴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직위는 아니라고 했다.

“미용은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재미도 있고 적성에도 잘 맞아요. 앞으로는 강의하는 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고 나중에 미용실을 운영할 수도 있어요. 저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아니니까 계속 이 길만 가야 하는 상황은 아니에요. 저는 현장이 좋거든요. 직접 고객들 만나고 자기가 일한 만큼 벌고요. 또 우리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면 미용실, 웨딩숍, 피부숍 같은 현장으로 많이 가는데 현장에서 필요한 생생한 기술 교육을 하려면 저부터 현장감을 잃지 않아야죠.”

미용업계는 업무 조건이 열악하고 일의 강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그런 현장을 발로 뛰며 겪어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줄 뼈있는 말이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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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하 교수./서정인 기자

“이 일이 힘든 거 알죠. 보통은 12시간씩 일하고 쉬는 날도 적고요. 그래도 힘들어도 참고 해야 해요. 자기가 선택한 길인데도 대학 나왔다고 현장에서 허드렛일 하라면 인상 쓰고 싫은 티 내고. 바닥에 빗자루질하는 일이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워야죠. 그런 것만 봐도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가 보여요. 힘든 건 당연한 거로 생각하고 목표 지점만 보고 달릴 수 있는 뚝심이 학생들한테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용업계는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니까 계속 공부해야 해요. 우리 같은 경우는 책을 들여다보는 것 보다 세미나 같은 데 참여해서 새로운 제품 사용법도 배우고 실습해보는 거죠.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특히나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더 필요하죠.”

유진하 교수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좋은 타이밍에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게 아주 다행이라고 했다. 맑은 민낯에 밝게 웃는 얼굴이 미용전문가보다는 풋풋한 학생 같았다. 여전히 19살 그때의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좇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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