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그저 죄인 된 심정…”

대형 선박을 모는 선장을 만나보고자 했던 건,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참사 때문이었다. ‘선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이번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40여 년 동안 ‘배를 탔다’는 박봉진 선장(61)은 자신의 과거 경력과 참사 소식을 접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박 선장의 첫 마디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말을 안 해 왔다. 이 입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더라. TV를 보는 가족들도 선원들을 욕하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죄인 된 심정이었다”였다.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을 묻는 말에 많은 친구들이 과학자 다음으로 ‘선장’이 되고 싶다며 재잘거렸던 기억이 난다. <보물섬>에 등장하는 ‘애꾸눈 선장’에 매료된 탓도 있을 것이고 바닷가 동네여서 그랬을 테지만, 동네 형들이나 친척 어른들이 원양선을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는 아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영향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철이 들수록 ‘선장’에 대한 판타지를 하나씩 지워 나갔다. 바다 일이 무척이나 고되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고 ‘동네 형들과 친척 어른’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흉흉한 소식을 간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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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학교를 졸업하고 저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멋진 제복을 입고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됐다며 좋아하던 친구들은 ‘가족이 그립고 뭍이 그리워 배타는 걸 그만뒀다’고도 했다.

그러나 ‘캡틴’은 언제나 가슴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꿈이었다.

지난 3월 초 마산 앞바다에 취항한 국동크루즈의 선장 박봉진(61) 씨를 만나기 위해 5월 13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연안 크루즈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한산했다. 한창 ‘취항 특수’를 누리고 있어야 할 때였지만 ‘세월호 참사’ 후 예약 취소가 쇄도하면서 지금은 거의 손님이 없다고 했다.

이는 전국 유람선 업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박 선장은 대형 상선을 시작으로 40년 넘게 배를 모는 일을 해왔다. 연근해에서 여객선과 유람선 등을 운항한 지는 11년이 흘렀다. 부산에서 ‘누리마루호’를 몰던 박 선장이 최대 80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는 747t급 유람선인 국동크루즈 선장으로 취임한 건 지난 3월이었다.

국동크루즈 조타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박 선장이 앉으라고 권하질 않기에 내가 직접 나서 적당히 앉을 곳을 찾으며 박 선장에게 앉아서 편하게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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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아니요, 저는 조타실에서 앉으면 안 됩니다.”

- 여기, 선장석이라고 적힌 의자가 있는데요?

“아, 그것은 운항을 하지 않을 때 앉으라고…. 여기 조타기 앞좌석 역시 승객 없이 장거리 항해할 때 잠시 앉을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것입니다. 우리 유람선처럼 단거리 항해하는 선박은 선장이 조타실에서 앉을 수 없습니다. 출항하고 나서 다시 입항할 때까지 여기에서 서서 꼼짝하면 안 되는 게 원칙입니다.”

박 선장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정복을 착용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외국 배들도 보면 선장이 정복을 입지 않습니다. 스즈끼(작업복 및 근무복)에 명찰 다는 정도죠. 외국에서는 선장과 선원들이 정복을 안 입은 지는 오래됐습니다. 다들 어린 시절 접했던 마도로스를 연상들 하시는데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선원들은 위급시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 스즈끼를 입죠. 또한 기름에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 안전화를 신고 근무하는 게 원칙입니다.”

- 선장직을 맡은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보통 국내 여객선사에서는 쉰 살이 정도 돼야 선장으로 임명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잘 채용을 안 합니다. 일반 상선은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연안에서는 배를 접안하는게 어렵죠. 저도 원양 상선 출신이긴 하지만 연안에서 배를 몰려면 다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합니다. 상선에서 받은 훈련은 전부 지워야 하죠. 연한 운항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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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 일반적으로 보면 대형 상선이 배도 크고 운항 기술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대형 상선을 모는 분들의 실력이 월등하죠. 큰 배는 조타수가 따로 있어야 하고 선장은 선장대로 복잡한 업무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연안 여객선은 선장이 조타도 하고 엔진도 움직여야 하고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죠. 시스템이 다르다는 거죠.”

- 대형 상선에서 근무했다고 하셨는데, 주로 어디에서 근무했습니까?

"1976년부터 범양상선에서 미주라인을 계속 다녔습니다. 미대륙 서부 쪽으로 출항하면 동명목재 합판과 포항제철 코일을 싣고 롱비치 항이나 밴쿠버, 시애틀 등으로 갑니다. 돌아올 때는 비료 원료를 싣고 와서 진해화학이나 여수에 있는 남해화학에 풀어냈죠. 동부 쪽으로 가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야 되기에 두 달 반 정도 걸리는데, 역시 동명목재 합판이나 포항제철 제품을 싣고 가서 올 때는 미시시피 강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옥수수나 밀을 싣고 돌아옵니다."

박 선장은 가족들과 장시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에, 국내 연안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부산, 거제, 통영 등 남해안 일대에서 여객선과 유람선의 키를 잡았다.

“대형 상선하고 다른 게, 여객선과 유람선을 몰면 더더욱 승객 안전에 신경이 많이 쓰이죠. 참 이런 상황(세월호 참사)에서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여객선과 유람선에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승객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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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을 법한데요.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인 심정입니다. 다른 동료 선장들도 다들 얼굴을 못 들겠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창피하고 미안하고 그렇다는 거죠.”

- 승선 시 승객들이 유념해야 할 게 무엇일까요?

“승무원들 지시만 따르면 됩니다. 그러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 하지만 세월호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선원들은 살고 승객들이 거의 모두 안타까운 일을 당했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저도 가슴 아픕니다. 말을 못하겠습니다. 가족들한테도 답을 못하겠어요. 어쨌든 일반 상식 이하의 행동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 동종업계에 있지만 어떤 답변도 못하겠습니다. 선원 한 명이라도 남아서 퇴선을 시켰어야 하는데…이해가 안 됩니다. 기울어지기 시작한 배는 분명히 침몰합니다. 바다에 뛰어내리게 했다면 요즘 같은 수온에서는 몇 시간씩 생존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해경이나 해군 기지도 많았고, 라이프 재킷 입고 바다에 둥둥 떠있기라도 했더라면 구조될 수 있었겠죠.”

- 업계에서는 청해진 해운이라는 곳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곳에서 일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특수한 조직이라는 이야기는 많죠. 일반적인 회사 조직과는 많이 다르다는 말들은 듣고 있었습니다.”

박 선장은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 “난처합니다. 같은 선원 입장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죄인 된 심정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한 말로 곤혹스럽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 실제 진도 해역 상황이 어떻습니까?

“진도 벽파라는 곳에서 제주도까지 운항하는 카페리 항해사로 잠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물살이 겁납니다. 조금만 신경 안 쓰면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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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 우리 지역에도 물살이 센 해역이 있습니까? 삼천포 앞바다나 노량 해역 등이 그런 곳에 해당할까요?

“물론 조금 세기는 한데, 진도 해역에 비하면 양호한 편입니다. 부산, 마산, 진해, 통영 이쪽으로는 더더욱 안전한 곳이죠.”

- 선원들에게도 정년 개념이 있나요?

“선박직에는 정년 제도라는 게 거의 없습니다. 3D 업종이고 보수가 약하니까. 일할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대형 상선에 근무하다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집에서 출퇴근하는 게 좋아 연안에서 근무하는 이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생활이 안되니까 잘 오지 않으려 합니다. 또한 처음부터 젊은 친구들한테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도 없는 일입니다. 특히 기관실 쪽에는 70세가 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보면 그만 둘 때가 됐죠. 선장이라면 순간순간 판단이 중요한 위치이기에,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65세 정도 하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동료 선장들한테 전화를 해보면 고령의 선장들을 퇴직시킨다고 해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을 못 구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고령의 선장들은 은퇴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아요.”

- 요즘 관계 당국에서 점검도 많이 나오죠?

“제가 배를 탄 이후에 검찰청에서 점검한다고 나온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도청, 시청, 구청, 해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선박과 관련한 기관은 무조건 나와요.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안전관리를 해야 하고 또 이런 모습들이 정착되고 지속돼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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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 국동크루즈가 운항하는 유람 코스를 소개해 주십시오.

“1 시간 30분 코스에 다양한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거제 앞바다, 진해만, 진동만, 마산항 등을 한 바퀴 돕니다. 소소하게 아름다운 풍광과 설치물들이 많아요. 장복산을 볼 수 있고, 또 바다에서 보는 무학산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만 관광 상품화가 아직 안 돼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부산에서는 별 볼 게 없는데도 오륙도 한 곳으로 온갖 배들이 다 모이지 않습니까. 이곳은 바다 내음 느끼고 싶을 때 오면 참 좋은 곳입니다.”

박봉진 선장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와 배를 바라보며 성장했고, ‘저렇게 큰 배를 타고 외국에 나가봤으면 좋겠다’는 막연했지만 부푼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박 선장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유람선을 이용하는 손님이 줄었다고 하지만 바다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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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극동크루즈 선장./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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