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 번, 오래된 골목이 들썩인다

오래된 목욕탕, 대를 이어 장사하는 식당, 농기구가 걸린 대장간. 옛 정취 가득한 통영 강구안 뒤편 골목길은 예전에 통영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려한 신시가지로 발길을 돌렸고 한동안 골목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다행히 골목의 역사와 이야기를 아깝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골목은 ‘통영강구안푸른골목만들기’ 사업의 힘을 얻어 올해 2월 새 단장을 마쳤다. 그 자체로 작품인 수제 간판, 단단하고 깔끔하게 정비한 바닥, 골목 분위기를 밝히는 설치품까지. 지난 5월 10일 이곳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통영 첫 정기 프리마켓 ‘강구안 골목 프리마켓’에 온 사람들이었다.

충무김밥, 꿀빵 가게가 즐비한 강구안 대로변을 걷다 이중섭 화가 그림 속 물고기를 모티브로 프랑스 조각가들이 만들었다는 은빛 조각상을 만났다.

조각상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정겨운 풍경과 함께 ‘강구안 골목 프리마켓’이 적힌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정오가 되자 사람들은 일찍 온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야외용 테이블 위에 가져온 상품을 펼쳐놓았다. 초록색 파라솔이 골목 위 푸른 하늘에 그득히 들어차고 골목에 사는 주민, 통영시민, 외지인이 한데 섞여 골목은 곧 북적북적해졌다.

모두가 반긴 프리마켓

“뺀찌 빌리주까.” 오래된 식당 앞 테이블에 자리한 판매자가 직접 만든 팔찌를 고치려고 이리저리 도구를 찾자 식당 안에서 빠끔히 내다보던 주인아주머니가 펜치를 가지고 나온다. 

“큰 거밖에 없네.” 하며 웃는 얼굴이 골목이 안고 있는 세월만큼 푸근하다. 가게 앞이 살아나자 수십 년 골목을 지킨 사람들의 표정도 살아났다. 상권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주민들은 일단 골목 분위기가 밝아진 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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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물장수'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서정인 기자

‘강구안 골목 프리마켓’은 행정 기관과 주민 모두의 힘을 합쳐 일구어낸 행사라고 했다.

“여기가 옛날에는 중심지였는데 죽림과 무전동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상권이 다 넘어갔어요. 상권이 약해지니까 사람도 많이 안 다녀서 분위기가 음침하고 밤에는 더 어두웠죠. 이 골목이 너무 아까워서 작년에 ‘푸른통영21’,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라는 예술팀 그리고 ‘통영시종합사회복지관’이 보도블록을 바꾸고 골목 안 간판을 70% 정도 수제 간판으로 교체했고 화단, 조각품, 벤치 같은 것도 놓으면서 골목이 이런 분위기로 바뀐 거죠. 그래도 사람을 그러모으기에는 뭔가 부족해서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주민회의를 했는데 주민들이 벼룩시장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하기로 한 거예요. 판매하는 자리는 골목 안에 30곳 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테이블이랑 파라솔이 20개 정도라서 일단 그 정도가 최대치에요. 2주에 한번 씩 계속 할 거니까 더 많은 판매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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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쓰는 물건을 펼쳐 놓은 모습./서정인 기자

처음이니까 통영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분이 많아서 판매자도 적극적으로 찾았어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홍보하고 학교에도 공문 보내서 학생 중에 관심 있으면 참여하도록 했고요. 회원이 5천 명 정도 되는 온라인 육아커뮤니티가 있는데 통영에 사는 분들이 회원으로 많이 활동하세요. 또 그쪽이랑 연결이 되어서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셨고요. 오늘 오신 분들 반응이 좋아요. 당장 2주 뒤에 또 하니까 다음 주부터 바로 홍보해야죠. 갈수록 사람들 발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색다른 아이템을 늘릴 거고. 오늘 좀 있으면 공연도 시작하는 데 그런 것도 방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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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28) 통영시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강구안 골목 프리마켓’ 총괄 팀장./서정인 기자

사고파는 재미 말고 다른 것도 있다

입지 않는 옷, 여행을 하며 모든 소품, 직접 만든 액세서리, LP 판, 책 등 정성과 추억이 묻은 상품들이 골목 곳곳에 펼쳐졌다. 판매 상품을 특별히 제한하지는 않지만 재활용품, 수제품 위주여야 하고 전문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기업에서 홍보용으로 시장을 이용하는 건 안된다고 했다. 물건값이 비싸지 않으니 거래가 활발했다. 골목에 사는 주민, 소식을 듣고 온 통영시민, 주말에 놀러와 통영 정취를 즐기던 관광객까지 시장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시장이 열린 후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1시 40분. 한꺼번에 몰렸던 사람들이 조금 빠지고 조금 한산해지자 청아한 목소리와 음악이 골목을 채우기 시작했다. 

‘편한 사이’, ‘YGP band’가 산뜻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돋우고 ‘방물장수’가 이어 분위기를 끌어간다. ‘장사’하느라 지쳤던 판매자들은 잠시 공연을 보며 쉬고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음악 소리를 듣고 골목으로 방향을 바꾼다.

고등학생 팀답지 않은 이름이 왠지 재밌는 ‘방물장수’와 잠시 마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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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구안 골목 모습./서정인 기자

“저희는 통영고등학교 학생이에요. 팀에 연락이 와서 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작년에 축제 때문에 모여서 만들어진 팀이에요. 두 명은 같은 반이고 나머지는 다 반이 달라요. 축제 때 처음 같이 하고 계속 연습도 하고 했는데 이런 행사가 있어서 참가하게 되었어요. 해보니까 저희가 프리마켓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공연해서 사람이 좀 빠져서 아쉽긴 했는데 재밌었어요. 다음에도 몇 번 더 참여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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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고등학교 ‘방물장수’ 김진현, 지두찬, 정유창, 한누빈, 황지욱, 강상훈(매니저)./서정인 기자

통영 아닌 다른 지역민도 함께 핫핑크 현수막을 펼쳐드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만든 액세서리에 독특한 택까지 붙여 돋보였던 팀이다. 은근 전문적인 느낌이 든다 싶었더니 패션의류학과 학생들이라고 했다.

“경남대 패션의류학과 동아리예요. 손으로 모든 것을 한다고 ‘핸드올(Hand All)’이에요. 신입생이 들어오거나 하면 이런 동아리가 있다고 공지를 하고 관심 있는 사람을 모집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요. 서로 가르쳐주고 액세서리 배우면서 의견 제시도 하고 이런 식으로 활동해요. 저희가 창원에서 왔는데 창원 프리마켓에도 참가했었어요. 근데 여기 관계자 분이 저희 과에 연락이 와서 이런 것도 지역에 보탬이 되는 일이니까 참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셔서 참가했어요. 오늘 사진 찍은 친구들이 다는 아니고. 몇 명 더 있는데 오늘 볼일이 있어서 다 같이 못 왔어요. 처음 열리는 프리마켓이라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사람 왕래가 좀 있어서 괜찮았어요. 뭐 안 팔려도 우리끼리는 경험이 목적이었으니까 괜찮았을 테지만요. 다음에도 또 참가할 거예요. 근데 창원에서 통영까지 버스 타고 와야 하고 액세서리 만드는 기간도 있어야 하니까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일단 협의를 했어요.”

▲경남대 패션디자인 학과 수제 액세서리 동아리 '핸드올(Hand All)' 좌로부터 김효정, 최수진, 박성은, 오소정, 이슬기, 최행지, 강동후. /서정인 기자

오후 4시. 테이블을 정리하는 판매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막바지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못 왔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날씨가 돕는 한, 2주에 한번 ‘강구안 골목프리마켓’이 열린다. 

이날 직접 느낀 이곳의 매력은 다양했다. 점심으로 먹은 골목 식당의 맛있는 음식,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밝은 얼굴, 작가들이 만든 수제 간판을 구경하는 재미. 강구안 골목이 매일같이 북적일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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