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삶, 자원봉사로 보람 찾다

박종권(62)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1999년 기업은행 마산지점장으로 부임하면서 마산지역 환경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지금은 은행에서 명예퇴직하고 마창진환경련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김해에 환경운동연합을 만들고자 준비모임에도 관여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에는 탈핵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장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그를 <피플파워>에 초대한 까닭은 그의 그런 활동 때문이 아니다. 창원공단을 중심으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벌였던 민주노총 1세대들의 은퇴가 현실화되고 있다. 공무원, 교사, 군인 등 고연봉 은퇴자들의 은퇴 후 삶에 관한 관심도 높다. 성공적인 은퇴 후 삶을 살아가는 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은퇴’를 고민해보고자 해서이다. 7월 10일 오후 김해 장유의 한 횟집에서 소주잔을 앞에 두고 그를 만났다.

은행원을 꿈꾸던 소년, 환경운동을 시작하다

그는 마산 회원초등학교와 마산중, 용마고(옛 마산상고)를 졸업했다. 그는 회원초등학교 시절 마산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면 최고라고 생각했다. 설훈 국회의원은 그와 회원초 마산중 동기동창이고 이번에 창원시장이 된 안상수 시장도 회원초등학교 출신이다.

“당시 회원초등학교 학구는 엄청난 빈민촌이었어요. 은행원이 되면 최고로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죠.”

마산상고를 가면 전교 수석은 떼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는데 몸이 워낙 왜소하다 보니 신체적 점수가 발목을 잡았고 수석은 해보지 못하고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입사하고 첫 월급이 본봉 1만 3100원이었어요. 그런데 본봉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핑계만 있으면 자꾸 돈을 주는 거예요. 어린이날이라고 주고 뭐라고 주고. 그러니 연봉을 따지니 이제 갓 직장생활 시작한 내 연봉이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보다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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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권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정성인 기자

부족할 게 없는 은행원으로 잘살아가던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3·15 의거 주역이었던 마산상고 출신답게 마산 정신이 깊이 박혀 있었고, 어린 시절 멱 감고 놀던 가포해수욕장이 폐쇄된 데 따른 충격도 남아있었기에 선뜻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대문운동장 근처 기업은행 종로6가 지점에 근무하는데 환경운동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연합(공추련) 사무실이 가까이 있었어요. 영업하러 다니다 보니 우연히 거기에 간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그랬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엄청난 거예요. 아 이거 심각하구나 싶어 바로 회원가입을 했어요.”

가입 후에는 시민환경교육을 받았다. 대기니 수질이니 장르별로 공부했는데 주 1회씩 3개월이 걸렸다.

그러던 중 은행 본점 감사실로 발령이 났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인데 다니다 보니 그동안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아무 곳에서나 이뤄지는 불법 소각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80년대였어요. 사람들이 그런 현상에 관해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신고를 하기 시작했죠. 엽서에 적어 매연 단속하라고. 그러면 서울시에서 공문이 와요. 신고해줘서 고맙고 이러저러하게 조처했다는 내용으로.”

그렇게 신고한 것이 1년에 200건이 넘었고, 서울시가 환경부문 모범 시민상을 줬다. 이때부터 그의 환경운동이 밖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먼저 한겨레에서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라 해서 크게 보도했고, KBS <전국은 지금> 생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이후 은행 내에서 환경 전문가로 소문이 나게 됐고 사내 교육 강사, 사보 기고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게 됐다.

“갑자기 스타가 된 거지. 수시로 KBS에서 나와 촬영하고 하니까 은행장도 ‘저 친구 본점에 계속 둬라. 그래야 저 일도 잘할 거 아니냐’라며 지지해주더라고요. 그러다가 영업부로 옮겼어요. 부행장은 환경을 가지고 금융상품을 개발해보자고 나서서 대한민국 최초로 공익 펀드를 개발했는데 또 이게 대박이 났어요. 녹색환경신탁인데 수신액이 5000억 원에 이르렀어요. 당시 내 동기동창 설훈 의원 통해 국회의원도 엄청 많이 가입했고, 심지어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대통령도 가입했으니까요. 은행장이 대통령 볼 일이 임기 중에 한 번이라도 있겠어요? 은행장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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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권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정성인 기자

그렇게 공추련에서 환경운동연합까지 대한민국 환경운동의 역사 한가운데서 그도 점점 성장해가고 있었다. 산림청장하고 매치가 돼서 숲 가꾸기 국민운동을 벌였는데 역시 기업은행 상품으로 연결하는 영업 능력도 보였다.

“어느 날 최열 대표가 나보고 총무국장이 돼서 기강을 좀 잡아달라는 거예요. 당시 활동가가 30여 명으로 늘었는데 이 친구들이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었어요. 직장 경험이 없는데다 운동권 기질인지 그런 게 남아있어서 걸핏하면 지각하고 걸핏하면 결근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걸 바로잡아 달라고 해서 무보수 총무국장을 맡아 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출근해서는 지각하거나 하면 경위서도 받고 그렇게 기강을 잡기도 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 주도해야

그렇게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감사, 총무국장 등을 거치면서 환경운동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런데 시민운동인데도 임원은 대부분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만 맡고 있는 게 영 마뜩잖았다.

“시민운동은 일반 시민이 같이해야지 전문가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같이 평범한 직장인도 임원도 하고 그래야 한다 해서 내가 임원을 했어요. 집행위원도 하고 감사도 하고 총무국장도 하고. ‘평범한 샐러리맨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게 내 모토예요.”

이런 그의 생각은 기업은행 마산지점장으로 와서 마창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을 하면서도 이어져서 아예 정관에 임원은 중임까지만 가능하도록 명문화하기도 했다. 

“와서 보니 임원을 하면 몇 년이고 계속하는 거야. 왜 임원을 한 사람 만 하느냐고. 돌아가면서 해야지. 환경운동연합 대표면 권력은 아니지만 엄청난 파워가 있었어요. 교수들도 자기 입지 강화에 이용하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마산 와서 보니 마창환경련도 마찬가진 거야. 그래 이인식 씨와 의논해서 두 번까지만 의장을 하게 정관을 바꿨어요. 그래도 6년인데, 6년이면 봉사 많이 한 거잖아요. 임기 마치고 다시 평회원으로 돌아가서 돕고 하면 되는 거잖아요.”

정치든 시민단체든 장기집권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올 연말 마창진환경련 공동의장 임기가 끝나면 깨끗이 회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후임 의장을 물색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그리할 생각이라고.

동그라미회를 만들어서

그는 환경운동만 한 것도 아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야학 교사로도 10여 년을 활동했고, 마산에 와서는 ‘동그라미회’를 만들어서 선천성 안면 기형아 수술을 돕기도 했다.

“마산지점장으로 와서 성형외과 의사를 알게 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성형수술이라는 게 예뻐지려는 여자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한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입이 돌아간 사람, 귀가 작아 안경도 걸칠 수 없는 사람 등등 얼굴이 기형인 사람도 성형수술로 고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예뻐지려는 사람은 돈 없으면 안 해도 그만이지만, 이런 사람은 수술하고 나면 삶 자체가 달라지는 거야. 그런 사람이 많으냐니까 그렇대요. 돈 없어 수술 못하는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그래서 당시 마창진환경련 고문을 맡고 있던 이재욱 노키아TMC 회장을 만나서 의논했다. 논의 과정에서 경남도민일보와 마산MBC도 취지를 공감하고 적극 지원해줬다. 그렇게 시작된 게 50여 명을 수술시켜줬고 지금도 기금이 3억 원이 넘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여자상고를 졸업하고 안면 기형으로 힘들어하던 이를 수술 해줬더니 이후 취직하고 보람되게 사는 모습을 봤을 때는 감동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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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권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정성인 기자

이재욱 회장은 그에게 큰 도움을 줬다. 마산지점장으로 있을 때 마창환경련 운영위원을 맡았는데 그때 창신대학이 팔룡산을 두 동강 내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가 머물던 지점장 관사는 작전회의 장소로 활용됐다. 회의 결과 임희자 사무국장이 밧줄로 소나무에 몸을 묶고 텐트 농성을 벌이게까지 됐다. 그게 그의 직장 일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

창신대에서 학생을 동원해 은행 지점에 사보타주를 벌였다. 100원 입금하고 100원 출금하고 줄을 지어 업무 방해를 한 것. 또 기업은행 인터넷에 글을 올려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몰랐는데 창신대학이 우리 고객이었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우리가 고객인데, 합법적으로 사업하는 데 지점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어쩌고 했는데 본점에서는 난리가 난 거예요.”

이 일은 그가 직장생활을 그만둬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지만, 그런 일이 있고도 종로지점장으로 발령 날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는 이재욱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신대 싸움이 있기 전에 그를 좋게 본 이 회장이 외화적금 1억 달러를 그의 지점에 해 주면서 전국 지점 중에서 영업실적 1위를 한 일이 있었다. 이 회장은 고문 자격으로 팔룡산 농성장에 위로 방문도 해줬다.

결국 협상을 통해 창신대와 싸움은 친환경적으로 한다는 선에서 어정쩡하게 마무리됐지만, 그에게 큰 교훈을 남기기도 했다. 

“다 연결된 거예요. 마산 토호들의 정말 두꺼운 벽을 느꼈어요. 한 인사는 정말 우리하고 일도 많이 했고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결정적일 때 우리 편이 안 돼 주더라고요. 알고 보니 창신대 출신이래요. 누구누구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마산지역 유명인사들이 죄다 연줄로 엮어져 서로 울이 되고 방패가 돼주고 있더군요. 이 벽을 깨지 못하면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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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권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정성인 기자

은행 명퇴자 명단이 500만 원에 거래돼

서울 휘경동 지점장을 하던 2007년 그는 명예퇴직했다. 52세 때였다. 그러자 서울서 야학할 때 대학생 교사로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 건설 쪽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고철 사업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고철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참패.

“주식 용어로 말하면 상투를 잡은 거였어요. 한 1억 원을 까먹었죠.”

“은행에 있어도 속은 잘 몰라요. 은행원 출신이 사업 벌이면 백전백패예요. 오죽하면 은행원하고 군인하고 교사 명예퇴직자 명단을 넘기면 500만 원을 준다는 말이 있을까요. 사기꾼이 접근하면 100% 빼낼 수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는 은퇴 후에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자산을 지키면서 존엄성도 실천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부부가 같이도 좋고 따로도 좋고 각자 좋아하는 분야에서 봉사하는 것은 더 좋다고 했다. 그의 아내도 환경운동연합 여성위원회 활동을 15년 넘게 해오고 있어 그의 활동에 든든한 지지자라고 했다. 국민연금 100여만 원, 그리고 약간의 임대료 수입. 생계에는 지장 없을 정도의 수입이 있다. 부창부수로 환경운동에 나설 수 있는 ‘물적 토대’는 확보돼 있다. 대부분 은퇴자는 이 정도 생활은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기자가 봤을 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다 싶지만, 평균치는 되지 않겠느냐 싶다.

시민단체도 은퇴 자원봉사자 달리 대우해야

“은퇴 후 경로당에 가고 그러면 그 순간부터 퇴화는 시작되는 거예요. 자원봉사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고 자아실현도 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환경 사랑하면 환경운동에, 교육 쪽에 관심 있으면 교육단체에, 장애자를 위해 봉사하고 인권을 중시한다면 인권단체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모교 도서관에 가서 봉사할 수도 있다.

“2년 전 피스 보트를 타고 일본에 간 일이 있어요. 승선 인원 중 절반 이상이 일본 사람이었는데 대부분 60~80세였어요. 대부분 교사 출신으로 연금 수혜자들이었죠. 그들은 핵 발전소에 관한 얘기가 나오고 하면 막 메모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들은 그런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자기 돈 써가며 봉사하는 겁니다. 이제 우리도 은퇴 후에 품위 있게 살려면 시민운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은퇴자의 봉사활동 의지를 시민단체가 꺾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털어놨다. 막상 시민운동 단체에 가서 봉사하러 왔다고 하면 허드렛일이나 시키고 하면서 보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15년 전 덴마크에서 사회개발 정상회의를 하는데 내 돈 내고 시민운동 대표로 참가한 적이 있어요. 그때 그린피스 독일 지부를 방문했는데 직원이 8명 있더라고요. 회원은 마창환경련의 10배인데 8명이 다 관리하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자원봉사자가 8명 있는데 이들도 직원 못지않게 많은 일을 하더군요. 자원봉사자에게도 직원과 똑같이 일을 분담해서 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원봉사자도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며 성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시민단체도 바뀌어야 합니다. 봉사하겠다고 갔는데 신문 스크랩이나 시키고 그러면 무슨 보람으로 계속 봉사하겠어요.”

과업을 주면 줄수록 봉사자도 자부심이나 보람을 더 크게 느끼고 더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마창진환경련에서 최근 그런 실천을 시작했다. 군무원 출신 자원봉사자에게 회원관리를 아예 떠맡긴 것. 1주일에 3일을 상근하게 하고 기존에 회원관리를 담당하던 상근자에게는 손을 떼게 했다. 인터뷰 시점에 그렇게 한 지 열흘쯤 됐다는 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퇴자는 넉넉한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합니까? 지식이 부족할까요? 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미흡하더라도 참고 받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전해집니다.”

자원봉사자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와 시민단체의 인식 전환. 그 속에서 은퇴자는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사회도 건전해질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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