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파업을 했는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죠”

한동안 KBS가 시끄러웠다.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퇴하면서 길환영 사장과 청와대의 보도개입을 폭로했고, KBS 내 기자협회, 피디협회, 양대 노조가 모두 사장 퇴진 투쟁에 올인했다. 우리 경남에서도 KBS창원총국 노조원들이 정우상가에서 집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길환영 사장은 (여당에게 유리하게 구성됐음에도) 이사회에서 해임제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KBS창원총국 새노조 지부장 겸 KBS창원총국 기자회장을 맡고 있는 진정은 기자(36)를 인터뷰하게 됐다.

“길환영 사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냐”

인터뷰는 6월 10일 오후 3시, KBS창원총국 사옥에서 이뤄졌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오래된 감기로 기침을 하고 있었다. 제작거부, 파업 등 그간의 일들이 얼마나 큰 짐이 됐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매정한 기자는 가장 힘들고 부담스러운 질문부터 던졌다.

-사실 KBS사장은 늘 정권과 가까운 낙하산 아닙니까? 그러다보면 간섭이 있을 수도 있고. 길환영 사장은 뭐가 도대체 문제기에 이렇게까지 양대 노조가 총 결집을 해서 나선 겁니까?

“이건 사장 문제로 촉발된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물론 타 언론보다 보도를 못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라는 국민들의 기대치가 있었는데 부응하지 못했죠. 예를 들면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다 빼버리고 방송한 점, 현장에 직접 잠수사들이 몇 명이나 작업하는 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정부 발표를 그대로 베껴 쓴 점 등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보도개입, 편성개입을 하면서 문제가 누적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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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금 기자


그러던 중 김시곤 보도국장이 술자리에서 세월호 사망자 숫자가 하루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와 비슷하다는 실언을 했고, 유가족들이 KBS에 항의방문했습니다. 그때 유가족들이 사과를 요구하면서 KBS를 욕했습니다. 입사한 이래 KBS가 그렇게 욕을 듣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KBS구성원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자부심에 큰 상처가 갔습니다. 이어 유가족들이 KBS본사 앞에서 사과를 요구했는데, 사장이 응하지 않다가, 유가족들이 청와대 인근까지 가니까 그제야 사장이 사과를 했습니다. 자성의 목소리가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사장부터 사퇴하고 인적쇄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국민이 KBS를 인정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퇴진을 요구하고 제작거부에 들어가고, 10일 정도 하고 나서 양대노조 총파업이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 부장단 70%가 보직사퇴를 했습니다. 이건 노사갈등이 아니라 사장 혼자와 전 직원의 싸움이 됐습니다. KBS기자가 안산합동분향소에서 분노한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다 바꾸지 않는 이상 국민의 인정을 다시 받기란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엔 처음인 것 같은데, KBS노조가 단독으로 집회를 정우상가에서 열었습니다. 그때 시민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아무래도 KBS마크가 플래카드에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돌아보셨습니다. 힘내라는 분들도 많고, 어떤 분은 ‘방송은 하면서 싸워야지, 왜 방송을 안 하냐’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따뜻하게 격려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파업에 알레르기가 있는 국민들의 정서상, 파업을 했다는 것은 논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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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금 기자

“저희 기자들은 10일 제작거부까지 했으니 파업기간을 합하면 총 18일을 일을 안 한 셈입니다. 다른 제조업체면 그냥 공장과 관련업체만 피해를 보면 마는데 이건 숫제 방송이 안 만들어지는 셈이니 국민들 전체가 피해를 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파업은 최후 최악의 선택인 셈입니다. 하지만 양대노조가 단결해서 파업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이렇게 빨리 정리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파업이 장기화 됐다면 국민들께서 더 심하게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어쨌든 방송이 파행된 것은 죄송한 일이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뉴스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다른 건 다 떠나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뭡니까?

“옛날엔 기자들이 ‘주사’로 불렸답니다. 태생 자체가 문화관광부 아래에서 국영방송으로 시작했고, 공무원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배구조도 이사회 11명이 사장을 선임하는 방식인데, 이사회는 여당 추천 7인, 야당 추천 4인으로 구성됩니다. 결국 청와대가 하향식 낙점하는 인사가 사장으로 오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 이래 김인규, 이병순, 길환영 사장 모두 내부승진으로 올라온 사장이지만 기존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밤 9시 20분까지는 청와대 뉴스로 소화하라는 지침을 내린다거나…. 이런 지배구조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럼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꾸길 원하십니까? 정치권에서는 사장 선임 시 이사회 특별다수제(사장 선임 시 11명 이사 가운데 과반 이상 동의가 아니라 2/3나 3/4동의로 바꿔 야당 이사들도 찬성해야 선임 가능) 도입을 얘기하고 있던데요.

“일단 내부 승진자가 사장이 돼야 하고, 임명동의제라는 민주적인 방법이 좋다고 봅니다. 경남도민일보나 경남신문도 사원들이 동의를 해야 사장이나 국장이 취임하듯이 말이죠.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사원들이 직접 사장을 선출하고, 이사회도 폐지하는 것이죠. 또한 상향평가제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지금 제가 1년에 2번 보도국장님을 평가하거든요. 이걸 활용해서 간부들을 뽑고 사장을 뽑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길 사장 해임이 정식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고, 또 길 사장이 해임되더라도 방송을 장악할 목적으로 누군가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려 합니까?

“또 다른 투쟁이 시작되겠죠. 이번만큼은 저희가 권력에서 독립하고 싶은 의사가 확고합니다. 그게 안 되더라도 상향평가제나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싸우겠습니다. 출근저지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의지가 분명해 보였다. 이번만큼은 독립하겠다.

신문기자에서 방송기자로

창원 토박이로 대학교까지 창원대(96학번)를 졸업한 진정은 기자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역에서 신문기자를 하다가 방송기자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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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금 기자


“대학원 시절에 유학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유학을 가려고 온갖 영어시험을 다 쳤는데, 언론사 영어시험이 궁금한 것입니다. 또 어릴 꿈에 사회부 기자였는데 대학 오면서 그 꿈을 잊어버렸는데, 그냥 영어시험이 궁금해서 친 지역신문 공채시험에서 합격을 한 것입니다.”

얼떨결에 기자가 됐다. 하지만, 기자생활은 굉장히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굉장히 재밌고, 좋았고, 잘 맞았습니다. 수습 이후 어느 선배가 체육부로 오라고 해서 체육부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축구 룰도 모르는 ‘체육문맹’이었습니다. 열심히 배워가면서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체육부에서 2년 6개월 정도 하다가 경제부에서 2개월 있었습니다. 그러다 KBS창원총국 모집공고가 떠서 지원을 했는데 합격했습니다.”

갑자기 신문사에서 방송사로 옮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문사에는 전혀 불만이 없었습니다. 임금도 좋고, 구성원들도 좋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습니다. 또 늘 길게 기사를 써야 하는 것도 저랑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직장을 옮길 때 굉장히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했습니다. 오히려 선배들이 걱정해 주시던데, 선배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는 겁니다. 그만 둘 때 많이 울었습니다. 선배들 책상서랍에 선배들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씩 선물로 놔두고 나왔습니다. 기분 전환을 하려고 KBS입사 전까지 해외여행을 했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한 겁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직장을 KBS(2005년. 31기)로 옮겼다. 가장 궁금한 점. 신문기자와 방송기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일단 방송은 그날 모든 일이 마감됩니다. 신문은 꼭 그날 기사를 못 내면 다음 날로 넘어가잖아요. 방송은 밤을 새더라도 그날 할 일은 그날에 마무리를 짓습니다. 또 신문과 달리 방송의 멘트는 요약해서 일목요연하게 짧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문은 지면에 따라 분량을 늘렸다 줄였다 해야 하는데 방송은 짧고 간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신문은 기자가 혼자서 취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도자료 받아서 쓰는 기사도 있습니다. 방송은 그게 안 됩니다. 카메라 기자 취재차량까지 4명의 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팀원 간 조율이나 의사소통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현장에 무조건 가야 합니다. 인터뷰를 늘 따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 섭외가 힘든 일입니다. 섭외를 안 하면 뉴스제작이 안 되니까 말입니다.”

-참, 세월호 참사 지원도 하셨다는데. 진도 현장에 직접 가셨나요?

“현장에는 직접 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서울 인력으로 안 되니까 지역인력이 지원을 갔었습니다. 창원총국에서는 매주 진도에 1명, 서울에 2명을 보냈습니다. 저는 5월 5일 어린이날 연휴 때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때는 이미 특별한 뉴스가 나올 게 없었습니다. 연휴 분위기 취재하고, 사회부 사건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현재 창원총국에는 기자가 몇 분 정도 계시나요? 말 나온 김에 창원총국에 구성원이 몇 분이고, 노조엔 얼마나 가입돼 있으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창원총국 (정규직)인원이 115명 있습니다. 간부 17명이고 이 분들은 노조활동을 못하십니다. 그 외에는 거의 다 노조에 가입 돼 있습니다. 제가 속한 ‘새노조’는 28명이고, 나머지는 ‘1노조’입니다. 기자들은 15명 있습니다.”

-방송기자로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나 사건이 뭐가 있을까요?

“작년에 마산 내서 어린이집에서 아기가 뇌사상태로 빠진 뉴스가 있습니다. 제가 제보를 받아서 뉴스를 만들었고, KBS 메인 9시 뉴스까지 올라가서 전국적인 이슈가 된 것입니다. 이 뉴스로 사람들은 ‘쉐이큰 베이비(흔들림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고, 아기를 함부로 흔들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았다고 합니다. 어린이집 CCTV의무화 법안이 발의됐고. 굉장히 큰 파장을 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좀 걸립니다. 분명 교사는 고의로 그럴 리가 없었는데 마치 교사가 일부러 그랬을 것 같은 뉘앙스로 나갔으니 말입니다. 부검결과도 애매하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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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금 기자


-방송기자로 있으면서 가장 보람이 큰 것은 언제입니까?

“아무래도 영향력이 크니까 가족들이 좋아해주죠. 텔레비전에 제가 나오니 힘들어도 그런 걸로 버팁니다. 그리고 전국이 아니라 세계까지 이 뉴스가 나갑니다. 내가 만든 뉴스로 인해 세상이 바뀐다고 느껴질 때 쾌감도 큽니다.”

종편, 모바일 시대…. 두렵지 않다

-지역에서 근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셨는데, 경남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십니까?

“경남도 그렇고 창원도 그렇고 사람들은 수준 있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잘 굴러갑니다. 그런데 꼭 문제가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이 망쳐 놓습니다. 진주의료원을 예로 들어보죠. 적자가 약간 나지만 가만히 놔두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의료기관인데 그렇게 폐업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무슨 쓸 데 없는 행사도 그렇고. 잘 되고 있는 동네를 정치인들이 망쳐놓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잘 감시해야 합니다.”

-지금 창원시청 출입하시는데, 기회가 된다면 정말 취재해 보고 싶으신 것이 뭡니까?

“저는 북한에 대해서 취재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북한 뉴스가 참 재미있습니다. 2010년 통영의 딸 취재하면서 북한 안에서 인권문제나 수용소 문제에 대해서 들으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기회가 되면 단둥이나 북한 인접한 곳에서 머무르면서 취재해 보고 싶습니다.”

너무 인터뷰가 느슨해지는 것 같아서 아픈 곳을 또 찔러봤다.

-종편이 생기고 공중파 3사 시대에서 다 매체 시대로 전환됐는데, 긴장을 느끼시지 않는지요?

“글쎄요. 종편이 생기면서 역으로 저희의 영향력을 키운 점도 있다고 봅니다. 아마 종편이 안 생겼다면 저희가 자만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안에서 고급화와 집중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단발성 기사의 비중을 줄이고, 어떤 사건의 본질을 깊게 파는 5~6분 짜리 뉴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공이 참 많이 드는 일입니다만, 이 과정을 통해서 ‘역시 KBS가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겁니다. 시청률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JTBC가 손석희 맨 파워가 나오면서 위협이 됐던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매체들이 생겨났던 것이 KBS가 자만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말 만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더 약한 곳을 찔러봤다.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근본적으로 TV뉴스가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시는 분들은 여전히 보십니다.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벌어지거나, 태풍이 오면 제일 먼저 텔레비전을 보고 다음으로 모바일을 봅니다. 물론 큰 위기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만 더 좋은 뉴스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된다고 봅니다.”

이렇게 자신있는 모습이었지만, 스스로를 얘기할 때는 다소 지쳐 있었다.

“올 상반기 참 힘들었습니다. 제작거부는 기자협회의 일이고, 파업은 노조의 일이니 제가 두 일을 겸하고 있으니 거의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5월 한 달 동안 서울을 6번은 간 것 같습니다. 정말 상반기는 잃어버린 시간 같습니다. 출입처가 창원시청인데 10번도 못 가본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당직을 서는데 새해 첫날을 준비하는 느낌, 설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참 안 좋은 직업 같습니다. 늘 누군가를 감시해야 하고, 나쁜 말을 하고. 그게 제 몸에 독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지만 출퇴근 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고. 가족들은 제 얼굴이 나올 때는 좋지만, 가정을 잘 못 돌보니…. 언젠가 꽃 파는 장사를 해 보고 싶습니다. 매일 꽃을 보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예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꼭 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다 가장 겁이 나는 게 이겁니다. ‘쟤들 파업을 저러려고 한 거야? 사장 마음에 안 든다고 쫓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사장퇴진은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자구책을 통해서 달라지는 뉴스, 신뢰받는 뉴스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KBS뉴스를 어떻게 달라지게 만들 것인가가 고민이고, KBS가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아, 쟤들 이렇게 변하기 위해서 파업했구나’ 아실 수 있도록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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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금 기자


꼭 기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로 들렸다. 연신 들리는 기침소리를 뒤로 하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휴대전화기에 속보가 떴다. ‘박 대통령, KBS길환영 사장 해임 재가’. 이젠 진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우회로도 퇴로도 없는 길에서 KBS 구성원들이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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