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함께하는 ‘지역 속의 학교’를 꿈꾸다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 있는 창원대산중학교 현관에 들어서면 벽에 붙어 있는 패널이 눈에 띈다. 패널의 제목은 ‘대산면 이야기’. 제목 밑으로 지명의 의미와 유래, 대산면의 역사, 자연환경, 현재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대산면 이야기’를 직접 고안했다는 김재정(54) 창원대산중학교 교장은 유독 ‘지역 발전’을 강조한다. 김 교장을 만나 그 까닭을 알아봤다.

음악보다 학생들이 더 좋아

김재정 교장은 중학생 때 친구가 들려준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에 감명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음악과의 인연은 창원대학교 음악과 입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특전사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군인이라는 직업도 매력적이었다.

“음악을 계속 할 것인지, 군인이 될 것인지.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고민했습니다. 결국, 음악에 대한 열정이 먼저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악기 판매점을 운영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돈 없는 학생들이 악기를 구입하러 오면 원가로 판매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의 조언에 따라 거제 하청중학교 음악교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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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정 창원대산중학교 교장./박민국 기자

“처음 교사가 되면서 다짐했습니다. 월급쟁이는 되지 말자, 학생을 위한 교사가 되자. 지금도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 교장은 이후 창원대산중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 재단 소속인 창원대산고등학교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대산고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악대부를 창단했다.

“당시 창원 대산고 보다 함안 대산고(현 경남로봇고등학교)가 더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알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악대부를 만들게 됐습니다. 사실 그보다 학생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대학은 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특기를 습득하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학교 일과 후 아이들을 모아 악기 연주를 가르쳤습니다. 처음에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면서 점점 즐거워했습니다. 대학 진학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보상도 없었고, 힘들기도 했지만 희망을 찾는 학생들을 보면서 보람을 얻었습니다. 그때 대학에 진학했던 아이들이 종종 연락을 해옵니다.”

그는 대산고에서 7년 동안 학생부장을 맡았다. 불편했을 법도 한데,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선생님이 고생할까 그만둘 수 없었단다.

“다른 선생님들은 학생부장이라는 자리를 불편해합니다. 신경 쓸 부분도 많고, 열심히 해도 학생들에게 좋은 말 듣기 어려우니까요. 제 생활지도 방식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저는 잘못한 학생이 있으면 운동장에서 잡초를 뽑게 했습니다. 같이 잡초를 뽑으면서 왜 네가 벌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죠. 모른다고 대답한 학생은 혼자서 이유를 생각해보라며 교실로 돌려보냈습니다. 알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끝까지 잡초를 뽑게 했습니다. 끝나고 나면 다독거려 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체벌을 받는 이유를 이해해야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습니다. 생활 지도는 체벌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잘못을 반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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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정 창원대산중학교 교장./박민국 기자

김 교장은 교직에 몸담은 27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오전 7시 10분에 출근한다. 교장이 되서도 출근 시간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장 취임식에서 학생들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조금 불편하면 학생들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와서 창문도 열어두고, 불도 켜놓고, 이상은 없나 둘러보는 거죠. 교감선생님이 눈치 보실까 봐 얼른 교장실로 들어옵니다. 아까 말했죠? 학생을 위한 교사가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지역 발전이 곧 교육을 위한 일입니다”

김재정 교장은 인터뷰 내내 ‘지역 발전’을 강조했다. 학교와 지역 발전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가 생각하는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김 교장은 아직은 학교가 전반적인 학생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역 발전으로 교육 환경이 개선되면 지역 전체가 학생을 위한 교육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역 발전이 학생의 교육 환경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지역민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항상 ‘대산면 발전에 힘써주세요’라고 합니다. 주민들이 대산면에서 번 돈을 시내에 나가서 쓰는데, 지역에서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만큼 발전이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이 사는 지역에 관심을 두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른이 돼서도 지역을 위한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대산면 이야기’를 눈에 띄는 곳에 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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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정 창원대산중학교 교장./박민국 기자

창원대산중학교는 지역민과 학부모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책이 많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책을 사들이고 있죠. 학생을 위한 책도 있지만, 학부모와 지역민을 위한 책도 있습니다. 저는 항상 학부모님을 만나면 학교에 오셔서 책을 읽으시라고 권유합니다. 학부모가 책을 읽으면 학생도 따라 읽습니다. 지역민을 위한 일이 곧 학생을 위한 일이 되는 거죠.”

아직은 김 교장의 바람만큼 학부모의 학교 도서관 이용이 활발하지 않다고 한다.

“학부모님이 거부감을 많이 느낍니다. 갑자기 학교에 책 읽으러 오시라고 말하면 부모님으로서 망설여질 수밖에 없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학부모와 함께 학교에서 책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변 초등학교장을 만나면 가정과 학교가 울타리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대산중학교는 ‘방과 후 수업’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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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정 창원대산중학교 교장./박민국 기자

“시내에는 종합학원과 단과학원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산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방과 후 수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방과 후 수업에 학생의 참여율이 낮고, 가정에서도 수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써 받은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방과 후 수업을 받게 하고 과목선택은 학생의 자율에 맡겼습니다. 학부모의 부담을 줄여주고 학생의 편의를 향상시키는 것이 학교의 역할입니다. 가정과 학교, 지역이 학생을 위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지역 속의 학교입니다. 지역과 학교 그리고 가정이 하나가 돼야 학생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바깥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틀에 얽매어 제자리걸음을 걷는다면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04년부터 경상남도교육청이 특성화 과제로 추진하는 정책이 ‘1교 1특색’이다. 학교마다 특기를 개발해 학생들의 유대감을 향상시키려는 방안이다. 창원대산중학교의 ‘1교 1특색’중에 눈에 띄는 것이 ‘점심시간 후 전교생 팝송 부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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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정 창원대산중학교 교장./박민국 기자

“시내에 있는 학생들은 영어를 배울 기회가 많지만, 농어촌 학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점심때를 이용한 영어교육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음악으로 영어를 배우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을 모아 ‘팝송 가사집’을 제작했습니다. 점심때가 끝나면 학교 전체 방송으로 음악을 틀어주고 다 같이 따라 부르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시키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학생 스스로 참여하도록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매일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반을 선정해 칭찬하고, 매달 우수학급을 선정해 상품권을 주고 있습니다. 연말에는 학예발표회를 열어 경연 대회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김재정 교장은 아직 학생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앞으로 학생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물론 예전보다 지원이 많이 늘었습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겁니다. 아직 시내에 있는 학생들의 교육 환경과 비교하면 부족합니다. 지역민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학부모의 교육활동 참여도 지속적으로 홍보할 예정입니다. 지역과 학교의 상생방안은 앞으로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학생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예방이 중요”

김재정 교장은 올해 발생한 ‘진주외고 학생 폭행‧사망 사건’과 ‘세월호 참사’관련 질문을 받자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학교폭력 문제는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개별 학생의 성향 파악과 그에 맞는 개인별 예방 대책을 세우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물론 교사로서 귀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연히 교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저는 학교와 가정의 연계를 강조합니다. 학교와 가정이 학생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는 겁니다. 감시의 의미가 아니라 학생을 이해하자는 거죠. ‘하지 마라’하기 전에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학생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성장하는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잘못된 호기심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건이 터지면 그때마다 새로운 방안 모색이니 대책 마련이니 하는 게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진심으로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원래 있던 대책이나 새로 만드는 대책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 김 교장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두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슬프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하고 슬픕니다. 되도록 세월호 얘기는 안하고 싶었습니다. 만약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그런 일을 겪는다면,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살려야겠죠. 하지만, 그전에 작은 일부터 예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공문이 내려오길 기다리지 말고 평소 학교에서 재해 대비훈련을 시행하고 예방책도 강구해야 합니다.”

창원대산중학교는 올해 스승의 날 행사를 취소했다. 전교생이 카네이션 구입할 돈을 아껴 ‘노란 리본’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 그렇게 직접 제작한 ‘노란 리본’을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가슴에 달고 하교했다. 김재정 교장은 지금은 모두가 아픔을 나눠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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