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다

나이 마흔, 매너리즘에 빠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로 한다. 약 20년을 바쳐온 직장을 벗어나는 게 시작이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뭘까. 무얼 하면 잘할 수 있고 내 삶도 나아질까.’ 그러다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길게 가야 합니다. 대길시스템을 기억해주시고, 저 박선호도 기억해 주십시오.” 아이디어 생활용품을 만드는 대길시스템 박선호(50) 대표를 만나 그의 창업과 꿈을 들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라

“마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계속 다녔습니다. 마산 토박이지요. 지금도 창동부터 마산 곳곳이 눈에 훤합니다.”

박 대표는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한다. 기숙사부터 생활하는 데 필요한 옷이나 밥까지 국가가 전폭 지원해주는 국립대학인데다 취직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만 나오면 100% 취직이 확실했다.

박선호 대길시스템 대표./박일호 기자

졸업 이후 조선기자재 업체에서 근무를 했다. 그 세월이 20년이다. 작은 회사였지만, 영업 업무만을 계속 맡았다. 많은 사람을 대했고, 영업 중역까지 오를 만큼 역량도 키워 왔었다.

순탄했던 직장생활은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마흔 넘으면서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시장도 정체돼 있었고, 아무리 무언가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였거든요. 매일 만나는 사람도 그 사람이고, 듣는 얘기도 똑같은 얘기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고, 변화에 대한 바람이 강렬해졌습니다.”

스스로 안주할 수도 있던 삶에 물음표를 던진 셈이었다. 이렇듯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결책이 뒤따라야 했다. 이는 ‘창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대길시스템 제품들./박일호 기자

생활제품에 눈을 돌리다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위에서 자주 들은 얘기가 사업의 리스크 부분입니다. 청년창업이 아닌데다 시니어 창업에 가까웠습니다. 준비를 많이 한다고 했지만, 내 나름대로 안전하면서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찾았지요. 그래서 아이디어 산업, 아이디어 제품을 택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제품을 만들게 된다면, 그것은 제조업이다. 물건을 생산하려면 기술력과 장비, 그리고 이를 짜내고 작동시킬 사람이 필요했다. 이 같은 문제에 박 대표는 오히려 거침이 없었다.

“우선 제조업은 높은 기술력을 요구합니다. 설비와 인력도 필요하지만, 이런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나 업체와 함께하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지요.”

그래서 생활제품은 그의 타깃이 됐다. 무엇보다 그는 사물 관찰을 좋아한다.
“기존에 있는 물건이라도 개선한 것에 항상 관심을 둡니다. 창업하는 사람으로서 크게 투자하기는 어려웠고, 너무 터무니없이 앞서가면 아이디어 상품이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찾아보자고 마음먹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아이디어 상품에 관한 특허 출원을 꾸준히 했다. 지금은 특허 등록증만 5개이고, 10가지는 특허 출원 이후 진행 중이다.

특허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지식재산권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특허 출원은 계속할 생각이지만, 많이 가지고만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허가 도깨비 방망이는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제품화가 더 중요하거든요.”

박선호 대길시스템 대표./박일호 기자

반짝반짝 아이디어 제품

특허를 낸 대길시스템의 몇몇 제품을 살펴보자.

먼저 일명 ‘집 나간 베개’. 집 밖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베개다. 사무실 책상에서 머리를 괼 때 쓸 수 있고, 오랜 시간 타는 버스 안에서 허리 뒤에 받칠 수도 있다. 차량이나 사무실 의자에서 목 베개로, 가정에서 쓰는 베개로도 된다.

반을 접거나 펴서 쓸 수 있는데, 사람마다 베개 높낮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한 조치다. 또 베개를 펴서 얇은 쪽은 눈 위를 덮을 수도 있는데, 안대 기능을 대신한다. 밝은 곳에서 사람들이 잘 때 습관적으로 눈을 먼저 가리고, 눈을 지그시 눌러주면 숙면 효과도 있었다는 박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에서 이 같은 아이디어 제품이 나왔다.

박선호 대길시스템 대표./박일호 기자

베개는 중소기업진흥공단 ‘HIT 500’에 선정된 제품이다. ‘HIT 500’은 창업 초기이거나 신제품을 출시하는 중소기업 제품의 홍보 마케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경남에서는 총 10개 제품이 뽑혔는데, 대길시스템 베개도 포함됐다. 이후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운영하는 서울 목동 ‘행복한 백화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컵 손잡이 모양에 특허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 역시 지식재산센터에서 디자인 관련 지원을 받았다. 보통 컵 손잡이와 달리 한 번 꺾인 모양인데, 평소 사람들이 손잡이를 쥘 때 손가락 모양대로 변형한 것이다.

일명 ‘거꾸리 위생컵’. 둥근 손잡이 때문에 걸어둬도 안에 남은 물기 등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하던 기존 컵의 단점을 보완했다. 꺾인 손잡이 때문에 컵을 거꾸로 걸어둘 수 있고, 컵 안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올해 안에 세상에 나올 수저통도 있다. 아이디어부터 제품 개발까지 그 과정을 들어보자. “식당을 가서 보면 어디서나 수저통은 네모반듯한 모양입니다. 이걸 업그레이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세워서 꽂을 수 있는 마치 선인장을 닮은 듯한 세련된 디자인에 살균 처리 기능을 더하고, 양념 통과 일체화하면 차별된 수저통이 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수저통은 중소기업청 창업맞춤형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 지원 사업이 그렇듯 심사를 거쳐 선정됐는데, 5000만 원 정도 지원이 예상된다. 제품 홍보 효과도 있겠고, 더불어 아이디어 하나가 제품이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정부 지원 신청, 내 아이디어 검증 기회”

연달아 아이디어 제품을 생산하는 데 그만의 비결이 숨어 있었다.

“정부 지원을 일부러라도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제품화에는 생각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창업 초기에는 몰랐지만,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물론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심사받는 것 자체가 기회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을 지원해주는데, 선정됐다는 사실 자체가 내 아이디어가 검증됐다는 뜻이고 우리 제품이 값어치가 있다는 얘기지요. 그만큼 책임감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됩니다.”

내년에는 흡연 조절 담뱃대, 소리 나는 배드민턴공 등을 제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배드민턴공은 레저용으로 개발한 건데, 칠 때 호각소리처럼 ‘핑’ 소리가 나오게 돼 청각을 자극해준다는 구상이다. 담배를 서서히 줄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담뱃대는 밸브를 써서 빨아들이는 공기량과 니코틴량을 조절하는 원리를 적용했다.

이렇게 개발한 제품 가운데 수저통과 담뱃대는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은상과 동상을 받기도 했다.

“기존 제품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것들입니다. 공장이 따로 없어도 되고, 간단한 가내수공업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이템 하나만 가지고 사업화할 수도 있지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계속 변화하고 다양한 것을 시도할 생각입니다.”

박선호 대길시스템 대표./박일호 기자

대길시스템, 대길쇼핑

“내 선택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가 말했다. 아직 시작 단계이기에 매출은 서서히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변 사람들과 다른 업체 사장들의 컨설팅이야말로 자산이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공감을 얻으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5년간 준비 끝에 박 대표는 지난해 2월 대길시스템을 설립했다. 대길(大吉)은 한자 그대로 ‘크게 길하다’라는 뜻이다.

차근차근 배우고 싶어 창원시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에 들어갔었다. 이후 창원문성대학 벤처창업관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이다. 심사를 거쳐 이곳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는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센터 안에 있으면 다른 업체와 자연스레 교류하면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고, 각종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박 대표는 이런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특히 5년 후 보육센터 졸업, 회사의 성장이라는 큰 그림이 있다.

“올해까지 준비 기간이라고 봅니다. 내년부터는 도약기입니다. 올 6월부터는 함께 일할 직원도 있고, 회사의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6년 수출이라는 목표를 이뤄야지요. 아직 역량이 못 미치지만,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2017~2018년에는 작은 규모라도 공장을 두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회사 평균 수명이 30년이라고 하는데 50년, 100년 장수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제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영업 경험 때문인지 마케팅은 자신이 있다. ‘대길쇼핑’(taegil.kr)이라는 작은 쇼핑몰 누리집도 구축했다. 이곳에서 대길시스템의 컵, 베개뿐만 아니라 협력해온 기업의 아이디어 제품인 방향제, 천연비누, 소주잔, 낚싯대 거치대 등까지 팔고 있다. 창업 초기 마케팅에 애를 먹는 1인 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돕는 취지다.

함께 운영 중인 블로그(blog.naver.com/taegil2012)에는 하루 방문 수가 350 안팎이다. 지난해부터 지난 4월까지 누적 방문 수는 5만. 각종 제품 소개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다.

11번가, G마켓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으며, 검색엔진 마케팅 등으로도 인지도를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트레이드코리아(www.tradekorea.com)에도 대길시스템 상품들이 올라와 있다.

박선호 대길시스템 대표./박일호 기자

헤매더라도 흔들리지는 않겠다

2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고 꾸준히 운동도 한다. 박 대표는 풀코스나 100㎞ 울트라 코스를 뛰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마라톤에 빠져든 상태다.

“체력이나 집중력이 좋아지면서 관점도 달라졌고, 결과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뭔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 듯합니다. 어두운 길을 걷고 있어 앞으로 헤맬 수는 있겠지만, 꿈이 확고하기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역량을 넘어서면서까지 무리하지 않고,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그룹 형태를 지향하면서 기업 성장을 추진할 것입니다.”

그는 현 정부가 꺼내 든 ‘창조경제’라는 말이 반갑다고 했다. 신생 벤처기업에게 투자해 성장을 돕는 엔젤펀드 등에도 관심을 둬 달라고 덧붙였다.

“두 가지 이상 기능이나 역할을 엮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본 방향입니다. 더는 획기적인 게 나오기는 어렵기에 기존의 것을 업그레이드해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개발할 제품은 많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도 그런 쪽으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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