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내놓은 것

'맛있는 경남'은 지난해 5월 24일 자 '통영 멍게'를 시작으로 1년에 걸쳐 23회 진행됐습니다.

고성 갯장어·하동 재첩 등 물에서 나는 것 11가지, 남해 마늘·함양 산양삼 등 땅에서 나는 것 11가지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5월 9일 자에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리산 물'을 다뤘습니다.

지역별로는 도내 20개 지역(18개 시군, 창원시는 창·마·진) 가운데 어느 곳은 여러 특산물이 소개되기도 했고, 또 어느 지역은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남해(마늘·시금치·멸치)와 통영(멍게·굴·물메기)은 가장 많은 세 번 소개됐습니다. 마산(홍합·미더덕), 하동(재첩·녹차), 의령(망개떡·수박), 함양(산양삼·흑돼지)은 두 차례, 그 외 창원(단감), 진해(피조개), 김해(단감), 고성(갯장어), 진주(딸기), 함안(수박), 거창(사과), 창녕(양파)은 한 번씩 다뤄졌습니다.

사천·밀양·합천·산청·양산·거제는 한 번도 담지 못했습니다. '맛있는 경남'은 나름의 기준을 둔 것이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맛·사람·이야깃거리 △그 지역에 끼친 유·무형적 영향 △전국 생산량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최초 재배지 △지리적 표시제 등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앞서 언급된 지역의 농·수산물이 이러한 기준에서 모두 뒤처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철에 다룰 예정이었으나 지면 사정에 따라 그 시기를 놓친 경우도 있습니다. '거제·진해 대구' 같은 게 그러합니다. 저마다 내 지역 특산물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 곳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지면에 다 녹여내지 못해 농민·어민,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느 지역이 특산물을 안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연이 내준 선물을 잘 가꾼 경우도 있었고, 어느 한 사람 노력이 마을 전체로 퍼져나간 것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어느 하나가 중심에 있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자연환경·사람 손길·행정·유통·입소문 같은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맛있는 경남' 취재 중 만난 농·어민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한 해 잘 되었다고 기뻐할 것도, 한 해 안 좋았다고 실망할 것도 없어요.'

욕심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려는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그런 사람들 손에서 나온 특산물을 다시 떠올리며 1년에 걸친 연재를 마감하려 합니다.

◇통영 멍게 = 5월 통영 바다는 멍게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탐스러운 붉은빛에 반해 30년 넘게 업을 하는 이도 있었다. 1970년대 초, 굴양식장 닻줄에 붙은 멍게를 보고 양식업으로 눈 돌린 어느 어민의 노력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통영 멍게'는 90% 이상 양식이지만, 자연산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그냥 자연에 맡겨 놓기 때문이다. 때로는 물렁증 같은 병으로 집단 폐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민들은 바다 아래 용왕님 마음이 편하기를 바랄 뿐이다.

◇고성 갯장어 = 갯장어는 '하모'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갯장어는 따듯한 물과 모래진흙 바닥에서 서식하는데, 고성 자란만이 그러한 환경에 적합하다. 우리나라 어자원 가운데는 수십 년 전까지 일본에 전량 수출한 것이 더러 있다. 갯장어가 대표적이다. 갯장어는 미끼줄 작업부터 손질까지 만만찮은 수작업 연속이다. 그리고 모두 자연산이다. 한여름을 이기기 위해 갯장어를 찾는 이들이 비싼 가격에도 토 달지 않는 이유다.

◇남해안 전어 = 남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 가운데 전어를 내세우지 않는 곳은 드물다. 전어를 특정 지역 특산물로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역마다 제 나름의 특색은 있었다. 광양 망덕포구에서 잡힌 전어는 민물 영향으로 살이 많고 뼈가 부드럽다고 한다. 하동 술상마을은 양식은 내놓지 않는다고 한다. 남해 선소마을은 전어로 생계를 이은 지 어림잡아 100년은 된 '원조 전어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매해 전어는 삼천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곳 수온이 높아 가장 먼저 잡히기 때문이다. 마산 어시장은 축제를 통해 전어 대중화에 힘을 보탰다. 진해만은 떡처럼 통통하고 고소하다 하며 '떡전어'라는 별다른 이름까지 붙어 있다.

◇하동 재첩 = 하동 사람들은 섬진강이 내놓는 것으로 먹고산다 해도 무리는 아니겠다. 참게·은어·벚굴 같은 것보다 재첩은 늘 앞에 이름 올린다. 재첩과 아낙을 따로 떼놓을 수 없겠다. 하루 7~8시간씩 물에 몸을 담가 채취하는 이들은 대부분 아낙이다. 옛 시절 양동이에 이고 팔러 다니며 아이들 배곯지 않게 한 것도 역시 아낙들이었다. 그래서 재첩국에는 섬진강이 담겨 있고, 또 여기 아낙들 숨결이 스며 있다.

◇마산 홍합 = 오늘날 시중에 나오는 홍합의 95% 이상은 양식이라고 한다. 이는 1960년대 마산 구산면 주민들 손에서 시작되었다. 가는 새끼줄을 엮어 바닷물에 담가 놓으니 홍합 유생이 달라붙었던 것이다. 오늘날 홍합은 술집 밑반찬으로 깔리는 정도로 인식되지만, 옛 시절에는 출산한 부잣집 며느리라야 그 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홍합을 까서 내놓으면 더 많은 값을 받는다. 물론 그것은 '마산 아지매'들 몫이다.

◇통영 굴 = 통영의 수하식 굴 양식은 1920년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통영·거제 사람들이 배우기 위해 책을 봐가며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1960년대 들어서 본격화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는 통영바다를 비롯한 4곳이 수출용패류생산해역으로 지정되면서 청정바다에서 굴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통영에는 굴까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1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

◇진해 피조개 = 진해만은 조류 흐름이 적당하며 펄이 무르고 깨끗해 피조개 서식 환경과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1960년대 말 나라에서는 양식 수산물 수출에 관심이 많았는데 '진해만 피조개'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자란 것들은 '진까이'라 불리며 초밥 수요가 많은 일본으로 대부분 넘어갔다고 한다. 이제는 내수용이 더 많아지기는 했지만 '피조개는 비싸다'는 인식은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남해 멸치 = 지족해협의 빠른 물살, 그리고 시야각이 넓은 쪽으로 향하는 멸치떼 습성을 이용한 죽방렴…. 수백 년 동안 '멸치' 앞에 '남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밑바탕이다. '남해 멸치' 하면 550년 된 죽방렴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죽방렴으로 내놓는 양은 전체 생산량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