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정말 살만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동근(45) 전 대안기술센터 소장은 도시 빈민 문제 해결에 인생을 걸고 있다. 대학교 때 처음 접한 기독교 계열의 민들레 공동체를 통해 빈민 문제를 접한 뒤, 영국에 가서 환경건축과 재생에너지에 대해 공부하고 왔다. 2004년 산청에 있는 민들레 공동체로 들어간 그는 2006년부터 대안기술센터를 개소하고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 교육에 힘썼다. 이론적 교육이 아니라 실제 전기생산 기계 제작 방법을 가르쳐주는 등 교육을 받고 자기 지역에 돌아가 같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썼다. 자전거 발전기나 풍력발전기, 태양열 조리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민들레 공동체 안에서 농촌 공동체 복원을 위한 다양한 실험도 했는데 마을기업, 대안학교 등이다. 이제 대안에너지센터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보고 있으며 앞으로 대안 대학 설립을 꿈꾸고 있지만, 그에 앞서 3년 정도 계획으로 캐나다로 가서 500년 된 공동체인 후터라이트를 보고 배울 생각이다.

‘첨단기술’ 잘못됐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중간기술’ ‘적정기술’ ‘대안기술’ 등으로 용어가 막 쓰이는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셨던 일도 ‘대안기술센터’였는데, 용어부터 정리해주시죠.

“원래는 ‘중간기술’이었습니다. 식민지 인도에서 개념이 생겨났지요. 이게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적정기술’로 바뀌었습니다. 원래 정치인들은 ‘중간’이라는 개념을 싫어하잖아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세계로 퍼졌는데, 2004년에 내가 한국에 와서 이 개념을 가지고 활동을 하려고 보니 개념을 아는 사람이 너무 없더라고요. 마침 그때는 ‘대안학교’라 해서 제도권 교육과는 다른 새로운 실험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대안’이라는 이름을 따와서 ‘대안기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결국 그 셋이 같은 개념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자세히 설명 좀 해주세요.

“인도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창안하고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Ernst Friedrich Fritz Schumacher)가 정리했습니다. 슈마허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저자이죠. 시작은 이렇습니다. 1800년대 인도가 영국 식민통치를 받거든요. 영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필요로 했던 상업용 원료가 목화였는데, 인도가 면화농사 짓기 좋은 인력과 땅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당시 전세계 어디나 그랬듯이 오로지 인력에 기반을 둔 농업이다 보니 생산성도 낮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영국은 인도 지주들에게 트랙터를 보급합니다.

지주 반발 없이 면화 재배 면적과 생산력을 높이려는 정책이었죠. 자연히 농촌에서 일거리를 잃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렇게 농촌을 떠난 소작농은 도시빈민의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또한, 농촌은 농촌대로 사람이 떠나고 보니 전통문화가 다 파괴되고 없어져 버린 거죠. 간디가 볼 때 정치적 독립은 할 수 있겠는데 도시 빈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경제적 독립은 불가능하겠더라는 겁니다. 만약 트랙터가 없었더라면 인도의 농촌사회가 식민통치를 받더라도 그렇게 붕괴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첨단기술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트랙터와 쟁기 중간쯤 기술이 있다면 농촌 공동체도 유지할 수 있고 도시 빈민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첨단 기술을 버리고 첨단과 전통의 중간쯤에 있는 기술을 채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채택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사실 믿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적정기술의 근원적인 이유는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중간기술에서 적정기술로 용어가 바뀌면서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지역주민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서 값싸게 제공되어서 지역주민의 삶을 향상할 수 있는 기술로 재정의됩니다. 그리고 적정기술이나 중간기술은 굉장히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기술인 거죠.”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생산력 증대에 맞춰,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인구 증가를 가져왔죠. 적정기술이 60억에 이르는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요.

“인간중심과 반대되는 기술이 돈 중심의 기술입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이런 첨단 기술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술들이죠. 적정기술은 자본의 논리가 들어갈 수 없어요. 돈이 안 되니까. 그러니 지역이나 인간이나 환경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이라 생각해서 가치를 얘기하는 거죠. 나는 첨단기술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기술의 발전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거죠. 문제는 이런 기술이 만들어내는 경제구조인 것 같아요. 적정기술에도 몇 가지 문제는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전 지구상의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인가에 대한 의문이 하나이고요, 또 하나는 ‘공동체’를 떠난 ‘기술’ 그 자체로서의 ‘적정기술’이라는 겁니다.원래 적정기술이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기술인데 지역 공동체와는 상관없이 기술로만의 의미가 있는 거예요. 지역이 배제된 채 자본 논리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나라의 적정기술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품으니 공부도 잘 되더라

   

-진주 동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경상대 금속재료공학과 학사, 해외지역학 석사, Universty of East London(동런던대학) 환경건축과 재생에너지 석사 등 각 전공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요, 과연 무엇이 이런 길로 들어서는 길라잡이 구실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하다못해 공사판 막노동을 해도 넉넉하게 살 수 있는 때였죠. ‘내가 왜 이렇게 생고생 공부를 해야 하나’ 그런 회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대학 가서도 그런 질문을 늘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민들레 공동체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9개월 정도 농촌에서 농부들을 섬기고 3개월은 케냐에 가게 됐어요. 92년에 내가 간 곳이 투카나라는 반 사막지역인데 굉장히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었어요. 거기 가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식량이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갔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내 인생이 굉장히 허무하고 씁쓸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도와주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그분들을 가슴에 품고 내가 저 사람들을 위해서 의미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 전환점을 케냐에서 맞은 셈이군요.

“그렇죠.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나니 공부도 잘되더군요. 그리곤 ‘중간기술’ 개념을 접하게 됐는데, ‘아, 이게 내가 공부해야 할 분야고 어려운 삶을 도와줄 길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러 가게 된 거죠.”

   

-하지만 대안기술센터에서 한 일은 빈민문제 해결로 직접 연결 짓기는 어려워 보이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영국서 공부하고 2004년에 와서 보니 한국의 상황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도시에 계신 분들도 어떻게 방향을 잡고 살아야 할지. 한국의 농촌도 이미 고령화됐고 미래가 없어 보이고. 농촌이 자립할 수 있는 분야들, 교육도 그렇고 에너지도 그렇고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그런 부분에 모델을 만들면 사람들이 뒤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산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대안기술센터에서 한 일이 주로 에너지 문제에 집중돼 있었던 듯싶습니다만,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못됩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구조가 도시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83%가 도시에서 살고 있죠. 도시 사는 사람들의 생활구조를 보면 아파트나 고층빌딩이다 보니 태양광을 쓰기도 어렵고 풍력을 쓰기도 어렵습니다. 콘크리트로 덮인 지역에서 바이오 에너지를 쓰기도 어렵죠. 석유와 원자력이 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이런 모습이 재생에너지가 대안이 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재생에너지 잠재력은 있어도 대안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에너지에 집중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제가 했던 운동은 사실은 도시에 너무 많은 인구가 있으니 농촌으로 인구가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농촌은 토지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에너지 효율적인 집을 짓고 대규모 소비보다는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가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없다, 사람을 길러야 한다

-지금은 대안기술센터에서 나와 있는데요, 그동안 활동을 되짚어 보면 어떻습니까?

“도시를 버리고 떠나는 운동을 한참 했는데 그러다 보니 부딪히는 문제가 젊은 친구들이 농촌으로 와도 먹고살 길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공동체 있을 때 했던 일이 마을기업인데, 약초로 빵을 만드는 민들레 베이커리를 했고요, 다양한 농업기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아이들 교육이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했어요. 민들레 학교. 좀 지나면 문화가 필요한데, 단순히 잘 먹고 잘살고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전통문화를 한국의 우리 현실에 맞게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그런 고민을 죽 해왔었죠.”

-없는 길을 만들어 온 삶인데요, 어려운 일이야 많았겠지요. 그래도 특히 더 어려웠던 일이 있다면.

“가장 큰 문제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벌어서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은 많은데 자기를 희생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정말 찾기 어렵고요. 그런 사람이 한 번씩 와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철학만 잘해서는 안 되거든요. 기술만 잘해서도 안 되고요. 인문학과 기술적인 부분이 접목돼서 같이 가야 하는 부분이 있죠. 보면 인문학적으로 아주 뛰어난데 현실문제에서 손발을 맞추려 기술이 안 되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친구는 별로 없기도 하지만 주로 먹고사는데 관심이 많다 보니까 그런 큰 그림에 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더라고요. 사람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건데 사람이 없는 한계를 보면서 많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그랬죠.”

   

-그런 이유로 대안기술센터에서 나온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안기술센터 만들면서 우리가 역할을 다하면 없어지는 게 옳다고 봤습니다. 왜냐면 기술센터 있어서 모든 사람이 여기 와서 배운 사람들이 자기 지역에서 만들 수 있으니까 여기에 많은 비중을 두면 안 되겠다고 본 거죠. 자기 할 역할을 다하고 없어지는 게 옳다고 봤고 장기적으로는 대안 대학으로 발전할 생각을 했습니다. 기술센터는 단기적인 측면에서 기술을 교육하기는 좋은데 뜻은 순수하지만 아무 경험이 없는 친구들을 길러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길게는 3년까지 대안 대학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지난한 과정

-조만간 외국으로 떠날 거라고?

“캐나다에 안식년 삼아 3년 예정으로 갈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지역공동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500년 정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후터라이트를 좀 보고 배울 생각입니다. 그분들이 다 자급을 하고 있어요. 경제 교육 문화 다 되고 있어요. 규모는 마을당 많게는 30가구까지. 자급자족이 다 될 뿐만 아니라 부유해요. 사람들이 다 같이 생산하고 다 같이 부를 나누고 있죠. 자본주의 안에서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들을 뛰어넘어 하고 있는데 그걸 좀 보고 배우려는 것입니다. 비결이 뭔지 보고 나면 다음에 한국에서 다시 시작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캐나다를 갔다 와서는 적정기술 바탕을 두고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정부도 농촌 고령화에 대응해 이것저것 사업도 벌이고 지원도 하고 있고 농촌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다양한 시도도 있습니다만, 모범 사례는 나오지 않고 쓸 데 없이 예산만 낭비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농촌에서 마을기업이니 체험마을이니 만드는 분들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요. 정부 돈이 투입되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많이 만들어내는 듯해요. 도시와 농촌의 삶이 굉장히 다르잖아요.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중간 단계를 만들어서 농촌을 체험할 기회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교육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도 문제는 있습니다. 한국 농촌 보면 다 어르신인데다가 거기서 정치하면서 살아온 분들이 많아요. 정부 돈 투자 받아 살아온 분들은 계속 그리하는 거고,

   

 그분들만 계속 투자받아 살아가는 거죠. 지역 내 공무원과 유지들과 유착이 다 돼 있죠.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데 그러니 돈을 투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람이 없는데.”

돈이 아닌 관계가 중시되는 사회

-산업화할 때야 이농향도 때문에 도시빈민이 생겨났지만, 후기산업사회 이후로는 이것으로 도시빈민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빈민 문제에 접근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것은 땅이 없어서거든요. 물론 기술이 없어서 못 배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땅이 없어서거든요. 내 친구는 주택 임대료로 월 80만 원 내고 살더라고요. 돈 벌어서 월 80만 원 내고 나면 쓸 게 뭐 있겠어요. 자본주의에서는 결국 돈 있는 사람이 땅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이상 죽으라고 일해도 늘 가난할 수밖에 없어요. 빚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죠. 농촌에서 공동체가 되고 이런 마을이 생겨나면 가난한 사람들도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돈, 빚, 땅 등등 여러 얘기를 하십니다만, 결국 해결해야 할 과제군요.

“현실은 돈이죠. 도시에 가면 사람들이 의지할 것은 돈밖에 없어요. 우리는 공동체나 마을 운동을 하면서 관계가 우선이지 돈이 중심은 아니다, 그렇게 봐요. 옛날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려움에 닥쳤을 때 먼 친척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 있는 이웃이 힘이 된다는 말이죠.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가 돈보다 소중한데. 그래서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들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내가 어려울 때 자기 모든 것을 내걸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관계만 되면 우리가 돈에 얽매어 살지 않아도 되는 데 안 그러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돈과 연결되지 않는 도시 생활이 잘 상상 안 되긴 합니다만, 관계가 어떻게 돈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있으면 다 할 수 있잖아요. 내 친구가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갔어요. 캄보디아에서 학교도 만들고 농촌운동도 마을기업도 만들고 해가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같이 합류하게 됐어요. 새로 온 집 둘째 애가 뇌에 염증이 생겼어요. 애가 죽음 앞에 서게 됐는데 캄보디아는 기술이 떨어지니 뇌 수술을 한 번 했지만, 병을 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특별 항공편으로 한국에 와야 해요. 비행기 삯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관계를 맺은 많은 사람이 이 소식을 공유했는데 1주일 만에 3000만 원을 모금했어요. 텔레비전에 떠든 것도 아니고 SNS를 통해 홍보한 것도 아니고 그저 주변에 아는 사람에게 전화만 했는데. 그 애는 살았고요. 보험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아 사람이 힘이구나, 사람이 그런 관계가 돼야 돈이 없어도 살 수 있구나 싶었어요. 돈이 우선이 되면 관계가 깨져요. 돈을 배제하고 만나야 이웃이지만 나의 형제 관계로 갈 수가 있다는 거죠.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배제하고 살 것인가를 참 많이 고민하고 살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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