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식품 황술년 아지매

모퉁이 가게 앞에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고구마줄거리다. 껍질을 벗겨놔야 사람들이 사가는 기다.”

“지금 철에 나오는 기 어떤 기라예?”

“참취, 엄나무순, 두릅, 미나리…봄에 나는 기 좀 많나. 겨울 보내고 봄에 나는 거는 보약이라고 다들 사묵는다아이가. 옛날에는 없어서 못 판다꼬 했는데 지금이사 사람이 마이 없네. 나야 저기 도매상에서 가져와 이문을 남겨머근 기 다인데 요새처럼 장사하기 힘든 때가 없었제.”

시장에서 장사 한 지가 얼마인지 물으니 딱히 햇수를 세어보지 않았고 세어볼 필요도 없단다. 아이 낳고 지금까지 살아온 반 이상을 시장바닥에서 보냈는데 그것이 뭔 소용인가 되려 묻는다.

“요새는 마이 팔리는 게 없으니 마이 팔린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아이가. 저눔의 마트가 사람 잡는다. 키워놓으면 키워놓은 대로, 갈수록 다 뺏들어가는구만. 이러다 시장에서 장사할 기 없것다예. 어시장 경기? 다 옛날 말이제.”

 

   
  대림식품 황술년 아지매./권영란 기자  

이칠상회 앞 채소 파는 아지매

“내는 소매고 너른마당 쪽에 도매상들이 있어 거기서 마이 가져오제. 원예농협, 중앙청과가 이동하고는 장사가 영 되네예.”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시작해 35년을 시장에서 장사했다는 아지매는 시장 골목 한가운데 제법 큰 좌판을 깔고 있다. 건너편에 있는 문 닫은 점포 앞에도 열무 단이며 미나리를 내놓고 있어 두 곳을 왔다갔다하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케이드가 생기니 참 좋지예. 여름에 조금 답답해서 그렇지 추위 더위 걱정 없지, 비 걱정 없지…. 시장 환경은 좋아졌는데 장사가 안 된다. 참말 우짜것노 싶구만.”

   
  이칠상회 앞 채소 파는 아지매  

두릅 파는 최성년(71) 아지매

“내는 맨날 고성에서 온다아이가. 그러고로 35년은 된 기라.”

너른마당 앞 난전이다. 아지매 앞에는 아이 손바닥만한 두릅이 한 무더기다.

“이거는 아지매가 직접 딴 기라예?”

“하모. 이기 첫 물이다.”

고성 당동 새물띠기. 매일 새벽 고성에서 마산어시장까지 장사를 하러 온다. 자동차도 없고 딱히 교통이 편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 긴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는지 놀랍기만 했다.

“그래도 요즘은 일요일에는 쉰다아이가.”

집에서 해왔다며 고물 묻힌 쑥떡을 옆에 앉은 아지매들에게 나눠주고 먹어보라고 건넨다.

   
  두릅 파는 최성년(71) 아지매  

차씨할매

“시어머니가 줄곧 하고 있다가 우리가 한 지는 얼마 안 됐어예.”

가게 이름이 왜 ‘차씨할매’인지 금방 이해가 됐다. ‘차씨할매’는 항구상회 옆 1층에 자리했다. 꾸득꾸득 말린 가자미며 생선들을 내놓은 좌판 앞에서 아지매는 “지금껏 어머니 해놓은 기 있으니 잘 되것지예”라고 말했다.

   

‘길커피’ 김정숙(72) 아지매

“이게 50kg가 넘십니더. 엄청 무거버예.”

아지매 손수레는 물을 데우는 가스 장치, 얼음을 담는 아이스박스 때문에 기본적인 무게만도 상당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에는 근처 세종주차장에 리어카를 두고 아침에 다시 들러 끌고 나온다고 했다.

“겨울에는 커피·율무차·생강차가 잘 팔리고 여름은 냉커피지예. 1000원에서 1500원 사이라예. 하루에 100잔은 넘게 팔지예.”

정숙 아지매는 23년 째 새벽 5시에 나와서 12시간을 꼬박 시장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길커피’ 김정숙(72) 아지매  

제일상회 남해경 아지매

“식자재판매를 하니 아무래도 식당 주문이 많아예. 그라다보니 경기가 좋은 지 안 좋은 지 주문 들어오는 걸로 알지예.”

점포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춘장, 튀김기름, 양념장 등 대용량 통들이 잔뜩 쌓여있다. 해경 아지매는 장사 30년 되다보니 이제는 단골들이 대부분인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그동안 문을 닫는 집도 많이 봤다고 한다. 좌판 위 진열대 위에 빛깔들이 제각각 다른 된장이 눈에 띈다.

“집된장, 토종된장, 재래된장…맛도 다르고 재료도 다른 기라예. 집된장은 콩 100프로이고, 토종된장, 재래된장은 콩, 밀, 보리를 섞어만들어예.”

된장 이름들만 들으면 딱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요새는 집에서 담그지 않고 다들 사먹지예. 이것도 내가 직접 담그는 거는 아이고 대량으로 만드는 공장에서 다 가져옵니더. 맛이 괜찮지예. 근데 이것도 시장에서 말고 마트에서 많이 사 먹더라고예.”

   

소금장수 박영술(76) 아재

“어이, 비키이소~. 비켜.”

뒤에서 오는 리어카를 피하면서 뭔가 보니 소금이었다.

소금을 리어카에 한가득 싣고 시장골목을 누비는 영술 아재.
“하루에 서너 바퀴는 맨날 돌지예. 40년 동안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자식 셋 공부 다 시켰제.”

천일염, 간소금 또는 꽃소금 두 종류를 가지고 다닌다. 천일염은 주로 배추·무를 저릴 때 많이 사용하고 간소금은 평소 음식할 때 사용한다.

리어카에는 크기가 제각각 다른 세 개의 됫박이 있는데, 3000원 2000원 1000원 짜리다. “소금은 저기 일일상회에서 받아오제.”

영술 아재는 시장 사람들 많을 때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며 리어카를 밀며 걸음을 바삐 서둘렀다.

   
  소금장수 박영술(76) 아재  

통영상회 김길무 아재

“고성, 통영에서 경매를 봐 오지예. 옛날에는 밭에서 바로 사왔는데 요즘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경매에다 다 갖다주니께네 우리가 사올 때도 경매로 가져오지예.”

김길무 아재는 이제 막 배달을 하고 왔다며 오토바이를 가게 앞에 세웠다.

통영상회는 채소가게다. 인근 식당은 물론 시장에 있는 소매상회에서 주로 가져간다. 대놓고 가져가는 사람들이 주문을 하면 가까운 거리는 길무 아재가 오토바이를 일일이 배달한다.

“지금 철에는 아무래도 시금치, 취나물, 고구마줄기 등 봄에 나는 것들이 주문량이 많지예.”

계란

박숙자(70) 아지매

도라지를 뽀얗게 까고 있는데 왼쪽 가슴에는 상인회에서 나눠준 ‘스마일 배지’가 웃고 있다.

“뺏지는 손님들 보기 조으라꼬 달고 있다예. 장사 다 하고 우짜다 보면 집에꺼지 달고 간다아이가. 아침에 일나서 생각나문 꼭 달고, 까묵을 때도 있지만서도.”

숙자 아지매 좌판 위에는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이 소복이 담긴 대야가 올라가 있다. 숙자 아지매는 껍질을 깐 도라지 한 움큼을 대야 위에 더 올린다.

“요로케 해서 만원이라예.”

칼을 움직이면서 아지매는 붙어 앉은 옆 좌판 아지매와 도란도란 말동무를 한다. 표정이 편안하다. 장사한 지 30년이라는 아지매한테 시장은 이제 놀이터이기도 하다.

   

이정숙 아지매

“계란~ 계란~!”

시장골목을 가는데 계속 울리는 외침이다.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니 바삐 걸어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횟집이나 식당에 달걀을 넣어주지예. 식당 밑반찬용으로도 쓰이지만 일하는 아지매들이 간식으로 삶아 먹더라고요. 한 집에 많이는 들어가지는 않고 20~30개, 들어가모는 많지예.”

정숙 아지매는 마산어시장 만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다른 시장이나 상가에도 달걀을 대어주고 있다. 동그란 색안경을 낀 정숙 아지매는 나이에 비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매일 이렇게 달걀을 팔러 다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 찔 틈’이 없다는 것이다.  

   
  이정숙 아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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