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기 없이 머그잔 2개만 있어도 맛있는 차를”

오랜만에 여유가 묻어나는 공간을 찾았다. 다녀오니 몸과 마음이 맑아진 기분이다. 창원시 성산구 가양로 116번길 8-1. ‘차향이 머무는 뜨락’에서 ‘차 우림이’ 김인숙(56) 씨를 만났다. 수백 개의 커피전문점이 들어선 도심에서 점같이 남겨진 전통찻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사장이기 보다 ‘차 우림이’

“사장이란 표현이 부담스러웠어요. 어떻게 불리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차 우림이가 좋겠다고 생각했죠.”

‘차향이 머무는 뜨락’을 운영하는 김인숙 씨가 스스로 이름 붙인 ‘차 우림이’는 순박하면서도 그 표현에 긴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내려 먹는’ 커피보다 ‘우려 먹는’ 차는 내는 방식부터 차이가 난다.

차 우림이 김인숙 씨와 마주 앉아 녹차를 우려 마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차 맛을 제대로 알았다.

차는 한 사람당 찻잎 2g을 기준으로 우려낸다. 두 사람은 0.5g을 더해 2.5g, 세 사람은 0.1g을 더해 2.6g이 되는 양으로 잎을 우린다. 두 사람 기준으로 2.5g의 찻잎은 다섯 번을 우려 먹을 수 있다.

찻잎을 찻주전자(다관)에 넣고, 끓인 물은 반드시 식혀 차를 우린다.

/김구연 기자

겨울에는 물을 80도로 식혀 따뜻하게 마시고 나머지 계절에는 70도 정도까지 식혀 마시면 좋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차를 우려낼 물의 양은 한 번 우릴 때 찻잔 2잔 분량이다. 한 번 우려낸 차는 찻주전자에서 완전히 비워내야 한다.

우려진 차가 남은 주전자에 물을 부어 다시 우려내면 쓴맛이 난다.

한 번 우릴 때 걸리는 시간은 심호흡을 3번 하면 되는데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차를 찻잔에 따를 때는 6번을 나눠 따르는데 2잔에 맛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서다.

차 맛을 공평하게 나누려면 차 우림이는 우선 첫물을 차 우림이 잔에 조금 붓고 두세 번째는 손님 잔에 네다섯 번째는 다시 차 우림이 잔에 마지막 끝물은 손님 잔에 따른다.

차 우림이 김 씨는 “대개는 손님이 우선이라 생각해 손님 찻잔에 먼저 따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도에서는 둘째를 더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김구연 기자

또한 차는 두 번째 우린 맛부터 진가를 발휘한다. 첫 번째 우린 차는 싱겁지만 두 번째는 입안에 잠시 머금었다 목으로 넘기고 나면 혀끝에 단맛이 감돈다.

차 우림이의 내공에 따라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우린 맛은 같다. 마지막 다섯 번째 우린 차는 약간 떫은맛이 나는데 탄닌 때문이다.

항산화 작용을 하는 요소이니 끝까지 마셔야 제대로 차를 마셨다 할 수 있다.

김인숙 씨는 “차를 우리는 법이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만 따라 해보면 누구나 차를 제대로 우려 마실 수 있다. 특히 다기를 갖추고 있지 않아도 머그잔 2개만 있으면 얼마든지 차를 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1번 머그잔에 끓인 물을 부어 식힌다. 2번 머그잔에는 찻잎을 넣고, 1번 머그잔에 있던 식힌 물을 모두 옮겨 부어 차를 우린다. 2번 잔에서 우린 차는 1번 잔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옮겨 붓고 마시면 된다. 쓴맛이 나는 차를 피하려면 2번 잔에 찻잎만 남기고 1번 잔으로 모두 옮겨 붓는 게 중요하다. 다 마시고 나면 다시 1번 잔에 끓인 물을 부어 식힌 후 찻잎만 남아있는 2번 머그잔에 부어 우리면 된다. 나머지 과정을 반복해 다섯 번 우려 마시면 찻잎은 제 역할을 다하게 된다.

어린이집 원장에서 차 우림이가 되기까지

고향이 진주인 김인숙 씨는 진주여자전문대학(현 진주국제대)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결혼 이후 창원으로 이사 온 그는 지난 1988년부터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동성아파트 단지 내에서 2005년까지 17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어린이집 원장 김인숙 씨가 차를 배운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마음껏 뛰어놀던 아이들이 차분하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장실 한쪽을 비워 다도실을 만들었죠. 조를 나누어 1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차를 마셨어요.”

다도실로 바뀐 원장실은 아이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원장과 교사들만 드나드는 원장실이 아니라 아이들과 동등하게 찻잔을 나눠 마시는 다도실이 된 것이다.

/김구연 기자

그가 처음 다도공부를 배운 것은 지난 2000년 아이가 다니는 창원경일고등학교 학부모 평생교육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이후 창원여성회관 문화강좌를 3년에 걸쳐 수강하며 사범반을 이수했다.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겠다는 생각에 김인숙 씨는 마흔일곱이 되던 해 어린이집 원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던 그는 서울에 있는 한국다도대학에 편입학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찻집을 열려고 대학원까지 다닌 건 아닙니다. 취미가 일이 되면 좋을지 고심한 끝에 일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김인숙 씨는 쉰이 되던 2008년 8월 ‘차향이 머무는 뜨락’ 문을 열었다. 처음 뜨락을 열었을 때는 생각보다 전통 차를 즐기는 이가 없어 운영이 어려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몰라서 못 먹는 것이란 걸 알고는 차 문화를 전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012년 6월부터 모집한 ‘다빈회’는 3개월 과정으로 벌써 5기까지 40여 명의 수강생이 들었다. 겨울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쉬고 오는 3월부터 10명 정도의 6기를 모집할 예정이다.

/김구연 기자

다빈회에서는 차의 유래와 효능, 성분을 익히고 차를 우리는 방법과 예절을 배울 수 있다.인숙 씨는 요즘 배웠던 차 공부를 사람들에게 나누는 재미에 빠져 있다. 차를 배우는 사람이 모이면 뜨락은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차를 선물 받았지만 우려먹는 방법을 모르는 분이 차를 가져와 함께 우려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그가 직접 지은 가게 이름이 담긴 의미에서도 여럿이 어울리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뜨락이란 뜰이란 뜻으로 내 집 앞마당을 의미하죠. 이곳은 제 개인 앞마당이 아니라 찾는 이의 뜰이 되는 공간이죠.”

찻집에서 맛보는 연잎밥

김인숙 씨는 직접 잎차를 덖어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우림이 역할만 할 뿐이다.

“저도 차를 덖을 줄은 압니다만, 재배하고 수확해 덖는 전문가는 따로 있지요. 차를 잘못 덖으면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 녹차, 보이차와 같은 잎차는 사옵니다. 복분자, 오미자 같은 효소차는 재료를 사와 직접 만들고 있지요.”

녹차와 황차(녹차를 발효시킨 차)는 하동 칠불사 근처 곡천제다에서 가져오고, 보이차는 중국차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인천 수경무역을 통해 산다.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말에 지난 2012년부터 연잎밥 정식도 선보였는데 점심·저녁 모임 예약이 꾸준히 늘고 있다.

차 맛도 좋지만 연잎밥 맛도 일품이다. 연잎 향이 깊이 밴 찰밥은 쫀득쫀득하니 차진 게 입이 즐겁다. 차진 밥의 비결은 방앗간에서 이틀 분량을 20분 정도 미리 쪄서 냉장보관하고 가게에서 압력밥솥에 10분을 더 쪄 내는 것이다.

/김구연 기자

연잎밥 정식에 함께 나온 삼겹살 바비큐는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직접 담은 도라지·고춧잎·김 장아찌와 울릉도에서 공수해 온 명이나물이 입맛을 돋운다. 계절별로 장아찌를 담아 손님상에 올린다.

참나물·취나물·도라지 등은 1주일 정도 숙성시키고, 감으로도 장아찌를 만드는데 100일 정도 숙성시켜 손님상에 내놓는다.

손님의 90% 정도는 중년의 여성들로 김인숙 씨는 또래 손님들에게 장아찌 담는 법도 손쉽게 알려준다.

“손님이 친구가 되죠. 친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그래도 내가 나쁜 인상은 주지 않았구나 생각하죠.”

삼겹살 바비큐가 담긴 접시 반대편에는 육류를 먹지 않는 손님을 위해 두부구이가 오르며 그 가운데는 상큼한 상추 샐러드가 차지한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비우고 나면 배가 불러 뒤로 젖혀지는 게 아니라 든든하게 속을 채운 기분으로 가볍게 일어설 수 있는 정도라 더 좋다.

연잎밥을 먹으려면 1시간 전 예약은 필수이고,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오후 5시~7시 두 차례만 먹을 수 있다.

차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김구연 기자


◇메뉴: △연잎밥 1만 원 △녹차 우전 7000원, 세작 5000원 △보이차 6000원 △한방차 7000원 △대추탕 6000원 △오미자 6000원 △복분자 5000원.

◇위치: 창원시 성산구 가양로 116번길 8-1(남양동). 055-274-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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