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수확기에 수분 덜 닿아야 당도 높아

수박 가득 실은 손수레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쪼개진 수박 한 통이 빨간 속살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 있는 수박은 모두 이렇게 잘 익었소'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도 사려는 이들은 신중을 기한다. 이 수박 저 수박 손바닥으로 두들겨 본다. 당연히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칼을 든 수박 장수는 세모 모양으로 조금 딴다. 사려는 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값을 치른다. 노끈에 담은 수박은 묵직하다. 집에 가져가서 물에 담가뒀다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먹을 걸 생각하니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30여 년 전 여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수박은 여름 과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시사철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하우스 재배 덕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기 전 굳이 칼로 따 볼 필요도 없다. 예전처럼 익지 않은 수박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함안군 군북면·법수면·대산면, 의령군 용덕면·정곡면·지정면은 남강을 끼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 마을들이 곧 수박 주산지다.

함안군은 수박 재배 역사가 200년가량 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1800년대 초 여기 수박이 임금님 상에 올랐다"고 빼놓지 않고 말한다.

물론 그 예전에는 밭에서 조금씩 키워 온 식구가 먹는 용도였다. 1960년대에는 내다 팔아 보니 제법 소득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면 망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수박을 주업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우스 재배라는 것이 등장했다.

함안·의령 지역에서도 1970년대 초부터 하우스 재배를 조금씩 시작했다. 오늘날 하우스는 쇠파이프 위에 비닐을 덮은 형태인데, 비닐 여닫는 자동화까지 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쇠파이프 대신 대나무를 이어 지탱했고, 짚을 두툼하게 엮은 거적을 덮었다. 이것을 설치하는 일만 해도 만만찮았을 것은 물론이겠다. 1980년대 중반에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수박 재배가 이 마을 저 마을로 퍼져나갔고, 집단화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보다 수박 하우스재배를 빨리 받아들인 것이다.

수박 하우스 내부 한낮 기온은 40도를 훌쩍 넘어선다.

늙은 잎을 잘라 넝쿨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하고, 첫 가지·곁 가지를 제거하고, 벌을 통해 수정하고, 질 나쁜 수박은 제거하는 적과 작업을 하고, 영양분을 지속해서 공급하고…. 이러한 세심한 재배기술 하나하나가 축적되고 또 공유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어느 과일이나 마찬가지지만, 수박은 땅·햇빛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안·의령 수박 재배지는 남강을 끼고 있다. 모래 성분이 많은 땅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배수가 잘된다는 의미다. 수박 당도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물이다. 수박은 수확을 앞뒀을 때 수분을 덜 받아야 당도가 높아진다. 설탕에 물을 많이 섞으면 싱거워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배수 잘되는 모래땅이 수박 하기에 좋은 토양이 되겠다.

그렇다고 남강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지하수를 활용한다. 겨울 재배 때는 물을 데워 사용해야 하는데, 연료비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비교적 덜 차가운 지하수를 퍼올려 사용한다.

노란 수박.

함안·의령 수박 하우스는 동에서 서로 뻗어있다. 좀 더 많은 볕을 받기 위해서다. 의령은 겨울에 웬만한 중부지역 못지 않게 춥다. 하지만 수박 재배는 추위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이보다는 일조량이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하다. 전라도 지역은 수박이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흐리고 눈이 많기 때문이다. 재배기간이 함안·의령 100~110일보다 30~40일 더 걸린다. 그러다 보니 속은 꽉 차지 못하고 수박껍질만 더 두꺼워지는 경향이 있다.

땅·햇빛에 더해지는 것이 정성과 노력이다.

함안은 전국 하우스 수박 면적의 14%가량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 월촌리에는 하우스가 1600동 이상 된다. 마을 단위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이 지역은 거의 수박으로 살림을 이어간다. 함안수박은 지난 2008년 지리적표시제에 등록했다. 함안은 물이 남에서 북으로 역류하는 고장이다. 그래서 겨울에 춥고 봄에 안개가 많다. 수박 하우스 하기에 도움되는 환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1999년 함안군 수박연구위원회를 만들었고, 지금은 수박 담당 부서까지 두는 노력 등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겨울수박 전국 생산량 가운데 30% 가까이 차지하는 의령은 개별 농가에서도 연구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 최대 무게 수박을 만들어낸 이도 의령 농민이다. 의령은 '토요애'라는 군 농산물 브랜드가 있어 유통 걱정 없이 질 좋은 상품에만 전념하면 된다.

함안과 의령은 각각 수박축제를 열고 있다. 함안은 21년째, 의령은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함안은 대산면에서 시작된 축제를 군 단위로 확장했고, 의령은 애초부터 군 단위로 시작했다. 함안에 집이 있고 의령에 수박 재배지가 있거나, 혹은 그 반대인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함안·의령 사람들은 굳이 제 지역 것을 더 드러내려거나 남의 것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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