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뱉으며 장난치던...'여름의 추억' 계절 과일

1994년 8월, 울산바위가 보이는 외설악 아래 한 신병훈련소. 한 달 전 김일성이 사망했고 30년 만의 폭염으로 온 나라가 죽죽 늘어지던 때였다.

21살 훈련병이었던 나는 피우지도 못했던 담배를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피우면서 그 연기를 핑계 삼아 눈물을 훔치곤 했다.

고향집을 떠나오기 하루 전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날씨는 이미 푹푹 찌기 시작했는데 아버지는 더 일찍 어시장엘 다녀오셨다. 입대를 앞둔 장남을 위해 가족 간의 간단한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큰 양은 쟁반에 멍게며 해삼, 개불에 미더덕까지 해산물 세트가 차려진 것이다. 평소 좋아했던 것이었지만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영 넘어가질 않았다. 회를 쳐 육질이 어느 정도 굳은 해삼은 그날따라 더 딱딱했다.

당시엔 모든 게 그랬다. 입대를 위해 처음 간 춘천, 지금 생각해보면 춘천 명동거리였던 것 같은데 처음 맛보는 원조 닭갈비는 양배추의 쓴맛만 났다. 기름에 볶은 닭은 고소했을 것이고 익어가는 양배추는 단맛을 더했을 것인데 지금도 유독 기억하는 것은 그 쓴맛이다. 때문에 이후로 난 닭갈비를 즐겨먹지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 만에 찾은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은 닭갈비는 매콤하고 달달하면서 고소했다. 입가심 메밀국수는 말해서 무엇하랴.

마산 3·15 묘역 옆 제2금강산 계곡에서 반으로 쪼갠 수박.

맛은 감정이고 기억이다.

고향에서 얼마나 왔는지 계산하기도 힘든 낯선 곳에 와 입대를 앞둔 청년이 무엇인들 맛있었겠는가. 군대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모든 미각을 앗아간 것이다. 이런 경험을 우리는 흔히 한다. 사장님과 먹는 1등급 한우등심보다 친한 동료들과 어울린 냉동 수입삼겹살이 더 맛있는 법이다.

다시 당시 훈련소로 돌아가서, 그토록 두려웠던 훈련소 생활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힘들다는 여유도 주지 않으려 부단히 사람을 괴롭혔다. 어두운 내무반 침상의 베갯잇을 적시며 훌쩍이는 동기들의 흐느낌에 관심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사고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유명 사립대 출신 학군장교에게 대들다가 밤새 얼차려를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새벽까지 얼차려를 받으며 등을 타고 턱까지 내려와 입술에 닿던 그 땀 맛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런 훈련소 생활 중에도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 있는데 그 주인공 중의 하나가 바로 수박이다.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에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작업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박을 옮기는 일이었다. 수박이라니! 훈련소에서?

어른 주먹 두 개만한 크기에 대충 수박 모양새만 띤 것이었지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훈련소 목욕탕(그때까지 목욕탕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에 물을 채우고 전체 훈련병이 먹을 수박을 담갔다. 변기 수조의 공기볼 만한 수박들이 큰 욕조에 동동 떠있는 모양이 탐스러웠다. 그날 저녁 각 소대로 나눠진 수박을 손으로 깨 나눠 먹었다. 크기도 작고 다 익지도 않았으며 시원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한 그 수박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달고 시원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 감정이 이후의 내 기억이 그 수박을 세상에서 가장 맛난 수박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듯 수박은 유독 기억의 과일이다.

저녁 어스름을 밟으며 대문을 밀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한 손에 들려있던 그것. 그늘 좋은 평상에 둘러 앉아 떠들며 먹던 그것. 껍질에 붙은 과육을 남긴다며 야단 맞아가며 먹던 그것. 씨앗을 빼서 얼굴에 붙이고 멀리 뱉기 놀이를 하던 그것. 반가운 이를 찾아갈 때 두 손 가득히 들고 현관문 앞에서 뿌듯해 하던 그것. 그것이 수박인 것이다.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수박집하장에서 사 온 수박으로 동료기자들과 기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도시락과 수박을 들고 가까운 계곡을 찾기로 한 것.

계곡에서 수박을 자르고 있는 권범철 기자.

근처 마트에서 화채에 쓸 재료를 구입한다. 보통 수박화채라 하면 수박에 얼음을 채우고 설탕을 뿌려 먹는 것인데 이번엔 좀 달리 해보기로 한다. 우유와 사이다는 기본으로 준비하고 요즘 값싼 바나나와 작게 포장해 나오는 프루츠칵테일을 산다. 각각 1500원 선이다. 추가로 산 것은 어린잎이다. 수박화채엔 시금치 잎이나 어린잎을 넣어 먹으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마트에서 샐러드용 어린잎 한 봉을 1600원에 샀다. 이어 얼음을 준비하면 끝.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넣기도 하는데 단맛이 강한 프루츠칵테일 국물로 충분하다.

3·15묘역 옆 제2금강산 계곡으로 간다. 수박을 계곡물에 담가놓고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먹는다. 함안에서 만난 수박재배 농민은 냉장고에 든 수박을 싫어했다. 수박은 상온 그늘에 뒀다가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때 이른 계곡 소풍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등산객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햇살은 따뜻하고 물은 맑고 경쾌하다. 밥을 먹는 동안 어느 정도 시원해진 수박을 꺼내 횡으로 반을 자른다. 보통은 종으로 잘라야 하지만 절반은 화채를 만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 숟가락으로 속을 파 적당량의 수박을 남기고 얼음을 올린다. 우유와 사이다를 부은 후 바나나와 프루츠칵테일을 붓고 마지막으로 어린잎을 계곡물에 헹궈 올리면 완성이다.

작은 접시에 덜어가며 둘러앉아 먹는다. 달고 시원한데 거기에 어린잎의 조화가 훌륭하다. 적은 비용으로 고급 수박화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기억이 한 줄 그어졌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다 해도 그 가족들의 마음만 하겠는가. 지난여름 둘러앉아 수박을 나눠 먹었을 세월호 탑승자 가족들에게 이제 수박은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과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수박을 즐기고 있는 권범철.서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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