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가요 손이 가"

<맛있는 경남>에서 음식소개를 할 때 가끔 식당이름을 밝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이름을 밝혀 '맛집'으로 소개해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마산 어시장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의 진동 고현마을 '고현횟집'도 그런 경우다. 고현횟집은 미더덕 요리 전문점인데 따로 손을 사는 일 없이 부부가 운영한다.

활어회나 매운탕 등의 메뉴도 있지만 요즘은 미더덕이 제철이다. 부산에서 입소문을 듣고 미더덕을 먹으러 왔다는 일행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진해 군항제에 왔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예약손님도 절반이 넘는다.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이곳은 해가 잘 들고 조용하고 깨끗하다. 기분 좋은 공간이다.

"미더덕은 터트려서 펄을 빼고 그냥 먹어야 맛있습니다. 굳이 초장을 찍을 필요가 없죠."

미더덕회를 내오며 주인은 설명한다. 1인분에 1만 원인 미더덕회는 둘이서 나눠먹기 적당한 양이다. 밥이나 다른 것들과 함께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더덕찜. /권범철 기자

잘 손질한 싱싱한 미더덕은 먼저 향으로 즐긴다. 혀끝에서 '쎄한' 느낌이 나면서 입 안에서 향이 한 번 돌고 코끝으로 향을 뱉으며 두 번째 향이 돈다. 이어서 씹어 먹으면 오독오독한 식감과 함께 단맛이 올라와 향과 섞이며 미더덕맛이 완성된다. 짠맛이 있다 해도 향과 단맛에 묻힌다.

미더덕회와 함께 나온 것은 미더덕부침개다. 파는 메뉴가 아니라 식당 사정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미더덕의 재발견이라 할 만한 음식이다. 부추 외에 특별한 야채는 없는데 미더덕이 함께 반죽되면서 마치 양념한 듯 색이 진하다. 누군가 미더덕향이 어떤 향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미더덕부침개를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향이 좋다. 부침개의 고소함과 미더덕의 식감, 향이 최고의 조화를 이룬 음식이라 할만하다.

이어 나온 것은 미더덕덮밥. 여기 미더덕 음식의 주인공이다. 흔히 멍게비빔밥과 비교를 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덮밥과 비빔밥의 차이는 있다. 굵은 육질을 잘게 썰어 비벼 먹는 멍게와 달리 미더덕은 육질이라고 할 것이 없다. 속을 빼 꼼꼼하게 다지면 마치 잘 삭은 젓갈을 몇 숟갈 올려놓은 모양새다. 거기에 참기름과 김 등을 올리면 완성이다. 어시장과 고현마을을 취재하면서 미더덕맛이 어떤 맛이냐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할머니들의 대답은 "덜큰하다"거나 "달큰하다"였다. 그 말은 약간 시금하면서 단맛이 난다는 말인데 처음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더덕덮밥에서 그 맛을 만났다. 고소하고 달고 향기롭다.

미더덕찜.

반찬으로 나온 흰미더덕찜과 머위장아찌, 김치 등도 훌륭하다. 자극적인 맛은 전혀 없으면서 깔끔하다. 주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시집갔는데 어느 순간 마산에서 살고 있더라는 가벼운 푸념을 하는 주인 아주머니. 식재료가 풍부하지 못해 조리법이 발달했다는 내륙의 손맛이 진동의 재료와 만난 것이다.

고현에서의 미더덕요리는 자체로 훌륭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산 특유의 매운미더덕찜이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이라면 어려서부터 아귀찜보다 친숙한 음식이었으니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미더덕찜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오동동 아구골목의 진짜초가집이다. 아귀찜으로도 유명한데 미더덕찜도 함께 한다. 이 곳 미더덕찜은 조선간장으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아귀찜의 경우 된장을 넣는데 미더덕찜은 간장과 고춧가루로 맛을 낸다. 3만 원 하는 가장 큰 크기인 '특'으로 주문하면 성인 남자 4명은 먹을 수 있다. 반찬은 없다. 이 집 특유의 동치미만 미더덕찜과 함께 나올 뿐이다.

미더덕젓갈.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먹어도 좋은 안주지만 미더덕찜은 밥과 함께 먹어야 제 맛이다. 양념이 가득 밴 미더덕을 콩나물, 미나리와 함께 먹으면 맛도 맛이지만 식감도 훌륭하다. 미더덕과 탱탱한 콩나물이 입안에서 오독오독 연주를 한다. 여기 미더덕찜엔 바지락도 함께 들어있는데 그렇잖아도 감미료 성분이 든 미더덕이기에 그 감칠맛은 비교하기 힘들다. 가라앉은 양념을 숟갈로 퍼서 미더덕 콩나물 등과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옛날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푸짐하게 나오지만 추가해 먹을 수밖에 없다. 건더기를 건져가며 다 먹고 나면 남은 밥은 과감하게 접시에 붓고 비벼 먹으면 된다. 동시에 여러 개의 숟가락이 미리 연습한 것처럼 빨리 밥을 비빈다. 누구 하나 급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행 중 한 명은 미더덕찜을 "미더덕의 풍미를 진한 양념에 싸서 먹는 맛이다. 양념에 묻히지 않는 미더덕의 힘이 느껴지는 음식"이라며 극찬했다.

미더덕덮밥.

여기 미더덕찜은 포장도 된다. 미리 전화해 놓으면 기다릴 필요 없이 가정으로 가져와 즐길 수도 있다. 칼칼하나 맵지는 않아 아이들도 좋아한다. 찬 성분으로 분류하는 미더덕은 이렇듯 고춧가루나 마늘 등의 양념을 만나 그 영양의 균형을 이룰 수 있으니 여러모로 훌륭한 음식이다.

진동 고현마을이나 마산어시장에 가면 미더덕 젓갈도 맛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별미다. 미더덕 젓갈은 그 종류도 만드는 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먹으면 된다.

흔히 된장국을 먹다 입 안을 덴 경험 한 번 쯤은 있다는 미더덕. 때문에 지레 먹기 힘든 식재료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미더덕만큼 구하기 쉽고 건강에도 좋으면서 맛도 있고 조리하기 쉬운 식재료를 본 적은 없다. 

미더덕회.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미더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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