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원 할아버지1980년대 초 각고 노력으로 양식허가

창원시 진동면 고현마을 어귀에는 '고현미더덕 정보화마을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유상원(65) 할아버지가 잠시 일손을 놓고 센터에 들어왔다. 그는 철만 되면 언론사 취재 의뢰를 많이 받는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우리 특산품 알리는 거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줘야지"라고 말한다.

유상원 할아버지의 미더덕 역사도 정옥준 할아버지 못지않다. 이 마을에서 미더덕 양식에 막 눈 돌릴 때인 1980년대 초 시작했다.

"양식면허가 없으니 불법 아닌 불법이었지. 그래서 여기저기 뛰어다녔지. 거제, 통영, 그리고 마산 구산면을 다니며 '양식 허가 어민 동의서'를 한 장 한 장 받았지. 나라에는 '어민들이 미더덕으로 이렇게 많이 먹고산다. 활성화해야 불법어선도 없어질 수 있다'고 했지. 그런 노력 끝에 허가가 났고, 미더덕영어조합도 만들어지면서 안정적으로 됐지. 이 마을 사람들이 미더덕 시장을 개척한 것이지."

▼ 바쁜 와중에도 특산품 알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괜찮다며 인터뷰에 응해준 유상원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다시 초창기로 돌렸다.

"채취·가공도 모두 수작업이었으니 많이 하고 싶어도 못했고. 그물에서 끌어 올리면 일일이 손으로 따서, 지금과 달리 바다 위 작업장에서 가공했지. 딴 것은 대야에 넣어 발로 밟아서 씻었어. 가공하는 방법도 몰라서 가는 칼로 연필 깎듯이 껍질을 벗겨 냈고."

할아버지는 한창 가격 좋았던 때를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가격이 최고로 좋았어. 한창 잘나갈 때 이 마을 70%가 미더덕을 했어. 일손이 부족해 인근 진주에서까지 데리고 오고 그랬지. 지금은 230가구 중 40가구 정도 되나? 여기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많이 하니까. 그래도 시원찮은 직장 다니는 것보다 미더덕 하는 게 나으니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야."

미더덕은 큰 태풍이 있거나 날이 가물면 재미가 없다. 바다 일이라는 게 다음 해를 예측할 수 없듯 미더덕도 마찬가지다. 이런 자연환경보다는 유통에서 어려움을 더 겪고 있다.

"중간 상인이 받으러 오기도 하고, 마산·부산 공판장에 내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데 생산하는 사람은 많은데 유통업자는 그만큼 못 따라가거든. 풍작일 때는 더 그래. 어떻게든 팔기는 해야 하니까 가격을 턱없이 낮춰서 내놓기도 하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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