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면 옥계마을에서 40년간 미더덕을 했다는 방호연 씨는 매일 어시장에 나온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바다에 나갔다 어시장으로 와 오후 네댓 시까지 난전에서 미더덕을 판다. 이걸로 자식들도 키우고 살림도 제법 일으켰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깐 놈의 배를 툭 갈라 물을 빼더니 한 입 먹어보라 권한다. 짜고, 달고, 향기롭다.

어시장 지하도 옆 건널목 양쪽으로 이런 분들이 많다. 질문에 답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끊임없이 미더덕 껍질을 까야 하는 것이다. 손님이 왔는데 까놓은 것이 없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십 년간 미더덕 가공을 하신 분들이라 손이 빠르다. 말 그대로 눈 감고도 까는 수준이다. 딴 곳을 보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까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며 꼭 해보리라 맘 먹는다.

   

다음날 찾은 진동 고현마을 포구는 온통 미더덕이다. 작은 포구 둘레로 양식장에 넣었던 그물망은 산처럼 쌓여 있고 미더덕 가공을 하고 있는 뗏목과 작업장만 해도 20곳이 넘는다. 작고 조용한 바다마을처럼 보이지만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몇 명씩 앉아 미더덕 껍질을 까고 있다.

방파제 끝의 한 작업뗏목으로 들어갔다. 매년 미더덕으로 언론노출이 잦은 동네이다 보니 거리낌이 없다. 미더덕 껍질을 까 보겠다며 능청스럽게 한 자리 차고앉았다. 이 뗏목의 주인인 하춘자(64) 씨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칼에 너무 힘을 주거나 깊이 찔러선 안돼. 얇게 벗겨낸다는 기분으로 이렇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툭 터트리고 말았다. 미더덕 속의 물이 주르륵 손을 타고 팔꿈치까지 흐른다. 경고를 무시하고 깊이 찌른 것이다. 두껍고 야문 껍질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혼자 속으로 변명하고 있는데 "원래 첨엔 다 그래. 우리 며느리도 그랬다"며 "좀 예쁜 놈으로 해보라"며 오히려 권한다.

용기를 얻어 재도전한다. 끝이 뭉툭하고 짧은 칼을 잡은 손에 힘을 빼고 각도를 최대한 낮춰 얇게 파고들며 사과 깎듯 돌려가며 깐다. 제법 잘 된다 싶다가도 마지막이 고비다. 남은 껍질을 칼과 손으로 적당히 잡고 당기면 되는데 그게 힘들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성공이다. 통통하게 속살을 드러낸 놈을 들어 보니 황금빛이다. 함께 작업하던 분들은 기특한 듯 웃으며 축하를 보낸다.

   

여기서 하루 작업하면 일당 5만 원을 받는데 보통 두세 명이 하루 100kg 정도를 작업한다. 과거엔 미더덕 양식장에서 바로 가공을 했지만 요즘엔 대부분 포구로 가져와 작업을 한다. 재밌는 것은 양식 초기엔 문구용 칼로 연필 깎듯 껍질을 깎았다고 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