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느껴야 제맛, 한약방 운영하던 아버지 영향

차를 마시면 오감이 즐겁다는 말이 있다. 물 끓는 소리에 귀가 즐겁고, 연두색 찻물에 눈이 즐겁고, 그윽한 향에 코가 즐겁고, 찻잔에 전해지는 따듯함에 손이 즐겁고, 그 맛에 입이 즐겁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를 한평생 곁에 두고 있는 이가 있다. 농업법인 쌍계명차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곤(67) 씨다. 그는 차를 내놓으며 "녹차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지요"라고 말한다.

김동곤 씨는 우전차 제조 기능 보유 국가지정 28호, 즉 '우전차 명인'이다. 하동군 화개면에서 태어나 대를 이어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그가 10대째이며, 아들·손자까지 12대에 걸쳐 화개면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녹차를 가까이하며 지냈다.

"하동 녹차가 긴 세월을 잇고 있지만, 제 어릴 적에는 한 끼 걱정하던 시절이라 차 마실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한약방을 하셨는데 녹차도 약재로 많이 사용했지요. 그래서 직접 차를 생산하셨습니다. 인근 쌍계사 스님들로부터 덖음차 제조법도 익히셨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늘 차를 가까이할 수 있었지요."

당시 상품으로 나와 있던 차는 주로 일본 쪽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 전통차는 절에서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 역시 쌍계사를 오가면서 참나무로 불 때는 법, 무쇠솥을 달구고 온도를 조절하는 법 등을 익혔다.

김동곤 명인이 세계 차 품평대회서 받은 상.포장에 신경쓴 큐브 덖음세작 세트.

군대 다녀온 20대 중반 들어 제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5년 '쌍계제다'라는 이름으로 차 설립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후 손수 따고 덖은 수제차를 알리기 위해 곳곳의 사찰·대학에 발걸음 했다.

"아버지에 이어 이 일을 이어간 것은 전통차문화 부흥에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죠. 무쇠솥을 길들이는 법, 더 좋은 덖음 방법을 찾기 위해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죠."

1980년대 초 들어 우전차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머물지 않고 우전차를 더욱 세밀화해 최고급 발효차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마을 할머니 대부분은 집에서 잭살(작설의 방언)차를 만들었기에, 솜씨 좋은 이들을 쫓아다니며 채취시기, 비비는 강도, 발효 온도·시간 등을 배웠다.

그러한 노력 끝에 '우전차 명인'이라는 이름도 달게 됐고, 국제명차품평대회에서는 금장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차 관련 책을 10권가량 냈으며 재배 농민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그는 현재 10만㎡(약 3만 평) 땅에 녹차를 재배하고 있다. '쌍계제다'라는 이름을 지금은 '농업법인 쌍계명차'라 바꿔 달고 제조·유통·판매까지 직접하고 있다.

"녹차는 겨울 지나고 처음 딴 것이 제일 맛있습니다. 즉 우전을 말하는 거지요. 4월 20일 정도 되면 첫 잎을 따고, 5월 초 두 번째, 5월 중순 세 번째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5월 하순부터는 티백용 찻잎을 땁니다. 갈수록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동에서는 5월 안에 거의 작업이 끝납니다. 보성 같은 곳은 가을까지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을·겨울 되면 퇴비 좀 주고 풀 두어 번 베는 작업이 다입니다."

   

말 그대로 자연에 맡겨두는 '야생차'라 할 만하다. 하지만 찻잎 따기는 모두 수작업으로 하기에 일손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부분 70대 이상 할머니들이다. 화개면 인근 악양면뿐만 아니라 강 건너 전남 구례 같은 곳에서도 사람을 데려온다. 점심·새참 값까지 치면 하루 1인당 인건비는 5만~6만 원 정도 된다.

수확한 녹차는 선별작업 후 덖음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바닥에 두고 비비기를 한 후, 건조·끝덖기를 거쳐 상품화한다.

   

"차 많이 찾던 시절에는 직거래도 많이 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통찻집이 민속주점이나 커피집으로 바뀌더군요. 지금은 인터넷 판매도 거의 안 하고 대부분 직접 판매합니다. 전국 백화점 여러 곳에 직매장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수수료가 30%가량 되고 매장 위치를 툭하면 바꾸라고 통보하니, 쉽지는 않아요."

그는 녹차산업이 갈수록 내림세라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많은 사람이 차를 찾게 되면 관련 문화가 함께 발달할 수 있죠. 차로 인해 도자기 문화가 꽃피고, 다실을 장식하는 그림·시·건축도 함께 따라오는 것이죠. 꼭 이런 것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많은 이가 녹차를 마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차에 격식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냥 편하게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