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옮기는 손, 속기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

2005년 12월 28일 오전 10시 30분, 남기청 부의장이 개회를 선언하면서 제234회 경남도의회 2차 본회의가 열린다. 상정 안건은 △경상남도 시·군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 정수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 △2005년 경남도 추경 세입·세출 예산안 △2005년 경남도교육비 특별회계 추경 세입·세출 예산안 등 3건이다. 출석 의원은 28명. 그리고 본회의가 열린 장소는 의사당 광장 우측에 세운 ‘경남70나 9487’ 의회버스 안이었다. 경남도의회 의정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건으로 꼽는 ‘버스 날치기’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남아 있다. 당시 현장을 기록한 속기사가 유상호(46) 주무관이다.

두꺼운 스프링노트를 펼치자 마구 흘려 쓴 선과 점이 어지럽게 이어졌다. 글자라는 것을 미리 알고 보면서도 글자라고 보기 어려운 모양이다. 굳이 생김새로 갖다 붙이면 아랍 문자 정도가 비슷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 문장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유상호 주무관은 머쓱한 듯 웃기만 했다.

“경남도 소속 속기사는 10명이고 그 중에 남자 속기사는 저를 포함해 2명입니다.”

상냥한 말투, 조심스러운 단어 선택, 부드러운 표정에서 섬세한 성격은 쉽게 드러났다. 사진기자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움찔 거리며 카메라를 보는 바람에 핀잔(?)을 듣기도 했다.

“카메라 보지 마시고요. 앞에 기자 보면서 편하게 말씀하세요.”

/박일호 기자

그때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속기사는 드러나는 일이 아니다. 잠시라도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영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내 일이라고 확신한 속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고향은 경북 김천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경남에서 계속 학교를 다녔지요.”

유상호 주무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합성동) 근처에 있는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다.

“다니던 학원 맞은편에 속기 학원이 있었어요. 친구가 마침 그 학원을 다녔는데 권하더라고요. 당시 89·90년 당시 지방자치제 부활로 속기 수요가 늘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속기 학원 광고도 많았지요. 한 번 공부해볼까 생각해서 등록했는데 저와 너무 잘 맞더라고요.”

차분한 성격,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던 상호 씨에게 속기는 맞춤옷 같은 일이었다.

최근 속기는 대부분 컴퓨터 타자로 한다. 컴퓨터 속기는 1년 정도 공부하면 3급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상호 주무관이 공부했을 때는 당연히 수필이었다. 수필 속기는 당시 유난히 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공부로 꼽혔다.

“수필 속기는 100명 정도 공부를 시작하면 2~3년 안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이 2~3명 정도였어요. 굉장히 합격률이 낮은 시험이지요. 시험 범위라는 게 따로 없고 불러주면 받아쓰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아요. 영어나 모르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몇 글자만 막히면 그냥 탈락이지요.”

유상호 주무관은 그나마 시간이 무기였다. 방위 근무를 했기 때문에 군 입대로 생기는 공백도 피할 수 있었다. 독서실에서 연필과 종이와 녹음기와 종일 씨름했다. 1년 동안 학원에서 기본기를 배우고 나서 나머지는 끊임없는 반복 훈련이었다.

“16절지를 펼쳐놓습니다. 그리고 연필을 하루에 두 다스 정도 깎아서 16시간을 썼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박일호 기자

속기는 혼자 하는 공부다. 끝없는 반복이었고 시간과 싸움이었다.

한 번 한계를 깬 자신은 바로 넘어서야 할 경쟁자가 됐다. 그렇게 자신을 이기고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다. 녹음한 음성을 옮겨 쓰고, 다시 옮겨 썼다. 그리고 속기한 내용을 다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자로 바꾸는 작업은 한없이 이어졌다.

유상호 주무관은 1991년 속기사 자격증을 받는다. 그리고 그해 11월 진양군의회에서 속기사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일하고 경남도로 발령받았다. 경남도의회 생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속기, 그 특별한 세계

유상호 주무관은 1997년에 결혼했다. 지금 고등학생인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속기사는 낯선 직업이다.

“속기사이기 전에 공무원이니까요. 처가에서 보기에는 공무원과 결혼한 것이지요. 연애를 해서 아내가 제 일에 대해서는 잘 알았어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아니,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특별한’ 것과 ‘특이한’ 것을 애써 구분하는 게 당연한 듯했다.

엄밀하게 보면 속기사는 내용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음성을 기록하는 일이다. 보통 내용을 듣고 기억하기 좋게 간추려서 정리하는 메모와는 전혀 다른 작업이다. 그냥 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선과 점은 방향과 꺾임, 길이에 따라 그 뜻을 구분해 음성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처음에 어려웠던 것은 전문 용어였어요.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훨씬 나은데 의원들이 전문용어를 쓰면 들리는 대로 기록은 하지만, 나중에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때는 책을 막 뒤져야 했지요. 우리는 그 내용을 전혀 모르니까. 그래도 못 찾으면 결국 의원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박일호 기자

속기는 크게 기록과 번문으로 나눈다. 약속한 기호로 음성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속기라면, 그렇게 기록한 결과물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일상 언어로 풀어 쓰는 게 번문이다. 즉 속기를 아무리 제대로 했더라도 번문이 되지 않으면 그 작업은 의미가 없다. 번문하는 과정에서 또 한 가지 걸림돌은 사투리였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아 번문 과정에서 곤욕을 치른 일도 많았다. 물론 지금은 20여년 경험에 인터넷 검색까지 더해지면서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다시 속기로 돌아와서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손으로 옮겨 적는 작업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보통 컴퓨터를 어느 정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손으로 쓰는 글 속도가 타자 속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그리고 웬만큼 타자 속도가 빠르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말을 음성 기록 수준으로 남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도의회에서 열리는 회의에는 속기사가 반드시 배석하는데, 속기사는 수필과 타자를 모두 이용해 기록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타자가 있는데 굳이 수필이 필요한 것인지 싶기도 하다.

“속기 타자는 일반 키보드와 형태도 다르고 프로그램도 다릅니다. 한두 글자만 눌러도 문장이 되는 구조지요. 보통 타수로 따지면 기본 800~900타 정도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속기에서 수필과 타자는 기록에서 속도나 결과물이 차이가 없습니다.”

그가 접었던 노트를 펼쳤다.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했다.

“커뮤니케이션.”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간에서 한 번 꼬인 선을 긋는다. 어디서부터 ‘커’가 시작해서 어디까지가 ‘뮤니’가 되고 ‘션’은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게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속기사나 알 수 있는 ‘기본’ 글자다. 속기 기술은 한 가지 더 추가된다. 바로 암호다. 작은 원에 물결을 넣고 그는 ‘대한민국’이라고 읽었다.

“우리는 단어를 만듭니다. 물론 모든 음성을 속기 기호로 쓸 수도 있지만, 반복되는 단어, 특정 단어는 자기만 아는 기호로 더 줄이지요. 속기는 쓴 사람만 알아보면 됩니다. 번문만 정확하다면요.”

/박일호 기자

그렇게 만든 단어, 즉 암호는 그 암호를 정한 속기사만 소유한 게 된다. 자기만 쓰는 문자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유상호 주무관에게 속기는 그만 소유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보람

2005년 ‘버스 본회의’ 기록 분량은 3쪽이다. 남기청 부의장 개회 선언을 시작으로 의안 상정, 심사결과 보고, 표결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개의 시각은 16시 6분이고 버스 안에서 폐회 선포 시각은 16시 10분으로 돼 있다. 의원들이 의회버스에서 내려 의사당 앞으로 이동해 다시 폐회를 선포한 시각이 16시 14분이다. 출석 의원 28명 명단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자 속기사고 선임이다 보니 급박한 일이 있을 때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버스 안에서 속기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서서 기록했습니다. 굉장히 긴장했고요 나중에 내렸을 때는 어떻게 적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더라고요. 최근에는 진주의료원 조례 개정안 처리할 때도 속기석에 있었지요.”

진주의료원 조례 개정안을 처리한 6월 11일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 몸싸움은 곳곳에서 치열했다. 여야 의원은 뒤엉켰고 물건이 날라 다니기도 했다.

/박일호 기자

“함께 기록했던 여직원은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고 기록해야지요. 여직원과 같이 무섭다고 얘기하면서 계속 기록했어요.”

취재와 속기는 말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물론 그 작업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기록하는 처지에서 상대하기 편한 대상은 분명히 있다. 일단 핵심을 잘 꼬집어 얘기하는 상대가 가장 좋다는 것은 속기사도 기자도 동의했다. 9대 도의회만 놓고 보면 어떤 의원이 기록하기 편하게 말했을까.

“김오영 의장님이 기록하기 참 편하게 요점을 잘 얘기합니다. 기록하는 처지에서 편하지요. 허기도 의원님도 차분하게 말해서 괜찮습니다. 이성용 의원도 말을 듣기 편하게 하고… 전반적으로 말씀을 듣기 좋게 잘하는 편입니다.”

잘 맞는 일을 선택했고 한 길만 걸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누구보다 보람도 많이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일을 그만 두고 싶을 때는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니 그런 어려움은 없고,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니 정신적으로는 지칠 때가 많지요. 자판을 많이 치는 여직원은 근골격계 질환 때문에 힘들다고 하고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속기사 직업병(?)을 하나 소개했다.

“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굉장히 예민해요. 울리는 곳에 들어가면 귀가 좋지 않지요. 식당 같은 곳에 가면 옆 테이블 이야기가 빠짐없이 다 들려요. 마치 기록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요. 그냥 시끄러운 게 아니라 내용이 자세하게 들리지요. 그런 게 좀 힘드네요.”

그에게 정작 아쉬운 점은 일 자체가 아니라 수필 속기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아쉬움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비례했다. 지금은 수필 속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 4~5년 전부터 학원은 사라졌고, 그나마 국회에서 정책적으로 교육을 하기는 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는 흐름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 유상호 주무관은 수필 속기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기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 손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항상 장비를 갖출 수 없는 비상사태도 있을 수 있고요. 정책적으로 수필 속기를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유상호 주무관은 의회 역사를 기록한 20여년을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문자가 있다는 것도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한 일을 20년 넘게 계속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행복이라고 했다.

“좋은 일을 하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게 행복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 일을 너무 좋아합니다.”

지방자치 역사 절반은 지방의회 역사다. 그리고 그 지방의회 역사는 속기사 손을 거쳐 남는다.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지 그 역시 다른 속기사와 더불어 지방자치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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