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민 NC 다이노스 전 대회협력실장 / 박동수 NC 다이노스 전 스카우트 팀장

올해로 NC다이노스가 창단한지 3년이 됐다. 3년이란 세월 속에 NC다이노스는 무럭무럭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신생팀이지만 7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그 과정 속에는 지금은 다이노스를 떠난 사람들이, 창단을 위해 두 발 벗고 나섰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다. 이 중 변종민 전 실장과 박동수 전 팀장을 만나 지금의 NC다이노스가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창생에서 NC다이노스로 이어진 인연

지난 1월 8일 중리에 있는 청아병원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얼마 전 등산을 하다 다리를 다쳐 수술대에 올랐던 박동수 전 스카우트 팀장과 변종민 전 대외협력실장을 만났다.

박 팀장과 변 실장 두 명은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출신이자 1961년생으로 올해로 54세이다.

박 팀장이 다리를 다친 뒤로 변 실장은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에 방문한다. 두 사람은 학창시잘에는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박 팀장이 모교팀인 마산용마고를 맡게 되면서 사이는 각별해졌다.

변종민 전 NC 다이노스 대외협력실장과.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프로무대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제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은 꼭 고향팀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용마고 감독 제의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어요. 변 실장과는 그때부터 잘 어울리기 시작했죠.”

변 실장은 당시에도 마산용마고 총동창회 사무국장으로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NC다이노스로 이어졌다.

창원시 프로야구 9구단 창단 유치위원회가 만들어질 당시 박 팀장은 용마고 감독이었지만 유치위원으로 합류했다. 당시 유치위원에는 이재문 현 야구협회장도 있었고, 허구연 해설위원도 있었다. 창원시에 프로야구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이미 전국에 확산된 상황이었다.

박 팀장은 “9구단이 출범하는 것은 야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었어요. 9구단이 창단되면 10구단은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거든요. 양대 리그를 운영하든 독립리그를 운영하든 짝수 구단 체제로는 하기가 어렵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창단이 확정된 후 2011년 4월, 박 팀장은 NC다이노스 두 번째 입사자가 됐다. NC의 첫 번째 입사자는 지금은 서울에 있는 이상구 전 부사장이다. 이 전 부사장은 오랜 시간 롯데 프로야구단에서 프런트를 역임했던 프로야구 전문가였다.

박 팀장의 NC 입사는 이 전 부사장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 팀장은 “제가 롯데에서 이 전 부사장님과 오랜 인연이 있었기에 저를 추천해주셨죠. 지역에 있는 야구인 중에는 제가 오랜 시간 프로무대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야구는 알아도 그 외적인 일에서 힘이 부족했죠. 그래서 변 실장을 구단에 추천했죠” 라며 둘 모두의 NC 입사과정을 털어놓았다.

변 실장은 그렇게 6월에 입사했다. 변 실장은 “열 평 남짓하던 사무실에 제가 입사했을 때 보니 딱 열 번째 입사자더군요. 제가 구단에 가게 된 이유는 지역에서 머문 시간이 길어서 아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교육청이나 경찰, 언론 등 여러 부문에서 다른 인사들보다는 발이 넓다 보니 NC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걸음마를 준비하는 데는 고작 3개월

둘 모두 입사를 했지만 정작 중요한 선수들이 없었고, 2차 드래프트나 신인 지명 드래프트 등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물론 돌아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박 팀장은 소신 있게, 반듯하게 스카우트 팀을 구성했다.

박동수 전 스카우트 팀장.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제가 운영팀장이자 스카우트 팀장을 동시에 역임했는데 가장 급한 것은 선수 수급이었죠. 하지만 프로구단 스카우트에게는 일절 제의를 하지 않았어요. 상도덕에 어긋나기도 하고 막내 구단에서 그런 행위를 한다면 나쁜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고교야구부 코치나 감독을 스카우터로 섭외를 했어요. 다행히 고교야구 일선 지도자들과 스카우팅을 해서 좋은 선수들을 선별할 수 있었어요.”

스카우터가 구성됐지만 현실적으로 남은 시간은 3개월이었다. 이미 타 구단은 스카우트를 위해 많은 선수를 확인하고 점검했지만 NC다이노스는 백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박 팀장이 말하는 신의 한 수가 나왔다.

“시간적인 여유는 분명히 없었지만 구단 스카우터들은 다 고교야구에서 일선 지도자로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었죠. 우리가 상대할 팀들의 핵심자원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어요.”

비단 스카우트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말 그대로의 신생구단이었기에, 8개 구단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돼 방출 당했던 선수들에게 지원서를 받았다. 트라이아웃을 통해 1차적으로 100명의 지원을 받아 여기서 선수단을 추려냈다. 그리고 2011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이민호, 노성호처럼 훗날 팀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낼 수 있는 선수를 뽑았다. 그리고 나성범도 NC다이노스의 선택을 받았다.

박 팀장은 “성범이 같은 경우는 이미 과거에 신인지명회의에 나선 적이 있어서 우선 지명으로 선발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우선 지명에서 선택한 선수들과 동일한 계약금을 안겨줬어요.”

트라이아웃과 신인지명회의에서 선수단을 많이 보강한 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지금 NC다이노스 핵심자원인 김종호, 이재학을 선발했고, 지난해 군에서 제대한 오정복을 데려왔다.

그렇게 구성된 선수단의 첫 훈련은 강진이었다. 강진에서 흘린 구슬땀의 결과물은 이듬해인 2012년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박 팀장은 “이 맛에 스카우팅을 하죠. 우리가 선발한 선수들의 가능성이 현장에 있는 코칭스태프의 힘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참 재미’죠”라고 웃었다.

이 말에 변 실장은 박 팀장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고 전했다.

“정말 더운 여름날이었거든요. 매일 땡볕에서 고생하고 모처럼 얼굴을 보면 시커멓게 타 있었어요. 박 팀장을 비롯한 스카우터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기에 사실 지금의 NC가 자리를 잡을 수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죠.”

현장에서 선수들을 봐온 박 팀장이 있다면 변 실장은 구단의 해결사였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직원들도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는 제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해결해야 할 일은 많은데 직원들의 경험은 부족하고, 인맥도 없으니 쉽게 일을 해나가지 못했죠. 그런 일들은 제가 다 했어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런 일 하라고 제가 입사한 거니까.(웃음)”

변종민(왼쪽) 전 NC 다이노스 대외협력실장과 박동수 전 스카우트 팀장.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그런 변 실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현재 홈구장으로 쓰는 마산구장의 리모델링이다. 변 실장은 리모델링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녀 완벽하진 않지만 과거보다 개선된 지금의 마산구장이 탄생했다.

난제 해결에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해

박 팀장은 두 번째 입사자였지만 지난해 11월 사직표를 내고 사임했다. 변 실장 역시 창단의 주역이자 열 번째 입사자였지만 지난해까지 근무를 한 뒤 그만뒀다. 창단을 위해 노력했고, 구단이 창단된 뒤에는 팀이 자리를 잡기까지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자리까지 뿌리를 내리게끔 일조했다. NC 다이노스의 개국공신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박 팀장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일을 쉬고 있어 시원섭섭해요. 11년 만에 가족들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죠. 그동안 롯데에서, 모교에서, 그리고 NC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라고 훗날 계획을 밝혔다.

박 팀장의 가족들은 현재 캐나다에 있다. 박 팀장은 지난 30년간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왔는데 지난 3개월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아내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면서 웃으며 말했다.

박 팀장만큼이나 변 실장의 역할도 컸다. 현 마산구장의 리모델링이 자신이 한 일 중에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새 야구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

“NC도 하나의 기업입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해야하죠. 물론, 창원시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다른 시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으니까요. 정치적으로 (야구)부지가 정해졌다면 정치력으로 해결을 해야합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야구장은 계속해서 쓸 수 없어요. 관중 수입이 절대적인 현 프로야구체제에서 외야가 내야보다 많은 기형적인 모습으로는 마케팅에서 결코 장점이 될 수 없거든요.”

그러면서 대외협력실장으로서 이 난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책임감이 크다고 했다.

“나름대로 야구장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또 창원시에 전해줬습니다. 하지만 결국 해결 못 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창원시 관계자에게도, 다이노스에게도 간곡히 부탁을 해야 하는 시민의 한 사람이 됐어요. 창원시는 시민을 위해, NC는 팬들을 위해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고,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차분히 말을 듣던 박 팀장도 “창원시민들의 야

변종민(왼쪽) 전 NC 다이노스 대외협력실장과 박동수 전 스카우트 팀장.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구에 대한 애정은 이제 완벽히 확인됐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입장만을 내세우는 것보다 각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올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 실장은 현재 직업이 없는 상황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또 직업을 찾아 나서야죠.”

변 실장의 이 말에 박 팀장은 “허, 이 친구 서글프게 그런 말 좀 하지 마. 2년간 고생했으니 좀 쉬는 것도 괜찮지. 차차 생각해도 충분히 넌 잘할 거니 걱정하지 마”하고 응원했다.

야구로 맺어진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고, 이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NC다이노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구단 프런트, 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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