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업하다 3년전 다시 죽방렴 시작

봄 멸치 떼가 바다를 휘젓는다. 그 바다내음은 남해 전체로 스며든다. 멸치 잡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민들은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멸치를 대한다. 이들의 시간이 하나하나 모이면서 '남해 멸치'라는 말은 입에 착착 감기게 되었다.

"자식들이 멸치 많이 먹어서 그런가…머리가 좋아"

① 지족마을서 죽방렴 하는 박대규 씨

3월 초·중순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아직 죽방렴 철은 아니다. 죽방렴 보수 작업을 하며 멸치 만날 준비만 한다. 썰물 때 작업 나간 박대규(55) 씨가 소형 어선을 타고 뭍으로 돌아온다. 그는 15년 전 죽방렴을 시작했다.

"남해 미조가 고향입니다. 아버지는 정치망 어업을 하셨어요. 어릴 때 늘 보다 보니 고기 잡는 건 자신 있었죠. 수산고등학교에 들어갔으니 바닷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겠죠. 그러다 창선면 쪽으로 오면서 죽방렴 매력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래 못하고 한 3년 하다 형제들하고 양식업으로 바꿨죠."

하지만 그는 3년 전 다시 죽방렴으로 돌아왔다. '억' 소리 나는 돈을 들이고 죽방렴 하나를 샀다.

"50대 넘어가니 또 생각나데요. 죽방렴은 선조들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멸치 습성만을 이용해 잡도록 해 놓았으니 얼마나 훌륭합니까. 재료만 대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뀐 정도지, 550년 넘게 그 모양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족마을서 죽방렴 하는 박대규 씨

죽방렴은 일손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박 씨는 죽방렴 보수, 어획, 삶고 말리는 작업을 모두 혼자 한다. 판매 쪽은 아내가 맡고 있다.

"죽방렴은 많은 양을 생산하지는 못하죠. 그래도 부부 둘이서 5000만 원 정도 번다면 괜찮은 거잖아요.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으니까요. 아들이 창원에서 직장생활 하는데, 일 좀 도와달라고 하면 곧잘 해요. 일 머리가 있어요. 사실 죽방렴 살 때 아들 이름으로 해 놨어요. 딸 둘은 모두 서울에 있는데, 늘 멸치 좀 부쳐달라는 연락을 하지요. 어릴 때부터 멸치를 먹고 자라서 그런가, 다들 공부를 잘했지요."

그는 '바다해설사' 자격증을 전국 최초로 땄다. 말 그대로 남은 인생을 바다와, 특히 죽방렴과 함께하려 한다.

"죽방렴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내가 편안해지죠. 철 되면 다양한 어종이 죽방렴 안에 들어옵니다. 이 어종들을 보면 산란하러 왔는지, 부화해서 온 건지, 그냥 유영하다 온 건지 다 압니다. 그냥 이래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거지요."

"현실 맞게 바다어업권 좀 풀어주면 좋겠어"

② 40년 넘게 멸치와 씨름하는 최해주 씨

남해군 본섬 아래에 자리한 미조항. 아름다운 항으로 소문난 이곳은 골목골목에 옛 풍경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최해주(67) 씨 역시 지금껏 크게 변한 게 없다. 한평생 이곳을 떠난 일이 없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멸치와 함께했다.

최 씨는 바다 길목에 그물을 내려놓는 유자망 멸치만 해왔다.

"별 이유 있나. 바다에 있다 보니 사람들 일 돕다가, 유자망이 괜찮겠다 싶어 시작한 거지."

철이 되면 새벽 1~5시 사이에 나가 오전 10시~오후 2시나 되어 들어온다.

조업구역이 짧으면 10km일 때도 있고, 멀리는 100km도 나간다. 남해 바다에 멸치가 없으면 동해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40년 넘게 멸치와 씨름하는 최해주 씨

"현재 바다어업권이 제일 문제야. 남해 호도에서 두미도 같은 곳은 산란장소라고 해서 어획 금지구역으로 돼 있거든. 이게 참 우습지. 예전 일제강점기부터 금지된 것이 아직 그대로인 거야. 들어가서 걸리면 벌금 물고 정지기간도 꽤 되거든. 그래도 뭐, 고기 없을 때는 감수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좀 현실에 맞게 풀어주면 될 텐데…."

3월 초·중순. 그는 손을 놓고 있다. 일손을 구하지 못해서다. 기선권현망이 작업하지 않는 4월 금어기에 그쪽 사람들을 쓸 생각이다.

일흔을 앞둔 그는 이런저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뭐, 큰돈은 못 벌어도 지금까지 먹고살 정도는 됐지. 갈수록 고기 잡는 환경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직 얼마든지 멸치 잡으러 나갈 수 있지."

"색이 하얗고 반듯한 놈이 좋은 멸치야"

③ 삼천포수협냉동냉장 임수정 경매사

삼천포수협냉동냉장 임수정(55) 경매사가 아침부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는 삼천포수협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경매사 일을 하고 있다.

"죽방렴 있는 남해 지족이 고향입니다. 수산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익숙했지요. 20살 지나 삼천포수협에 들어오면서 경매사 일을 하게 된 거죠."

삼천포수협냉동냉장 임수정 경매사

오전 9시. 홍합 경매에 이어 건멸치 경매가 한창이다. 오늘은 울산 인근 바다에서 잡힌 것들이다. 경매사는 상품 상태에 대해 꿰차고 있어야 한다. 그는 특히 멸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그는 상자에 든 멸치를 하나 꺼내들더니 "구매할 때 이렇게 색이 하얗고 반듯한 놈을 고르세요"라고 일러준다.

이곳 삼천포수협냉동냉장은 남해안 일대 건멸치가 모두 모이는 곳이다. 올해는 같은 기간에 비해 물량이 조금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아침부터 목을 써야 하는 일이 예삿일은 아니다. 술·담배는 안 하고 산에 자주 오르며 몸 관리를 한다.

"경매사는 주민과 조합 간 중간 역할이라 모두가 잘 될 수 있도록 해야죠. 멸치 내놓는 사람은 제값에, 사는 사람은 좋은 놈 가져 가면 더없이 좋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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