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비해 살이 많은 3월 봄멸치 '회무침' 일품, 조림과 쌈 … '멸치쌈밥'

남해 지족에서 만난 한 식당주인은 멸치를 '밥상의 감초'라고 했다.

다른 음식에 비해 도드라져 보이진 않지만 없으면 허전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멸치볶음과 김치 정도는 기본적으로 깔아줘야 우리네 밥상이 완성되는 듯도 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먹는 된장찌개나 각종 국의 육수를 만드는 것이 멸치다. 멸치 육수나 액젓을 잘 활용하면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떡볶이와 같은 간단한 요리에도 멸치 육수를 활용하면 특유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오죽하면 각종 조미료들이 멸치 맛을 흉내 내었을까.

이처럼 흔히 접하는 멸치지만 너무 흔해서 잊고 사는 것 또한 멸치다. 그래서 막상 멸치요리를 해 먹으려 하면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표 밥상에 언제나 있었던 멸치는 당최 그 요리 시점을 알 수가 없다. 좀처럼 요리광경을 목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학교나 직장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잡고 집으로 들어서면 끓고 있는 것은 언제나 찌개나 국이고, 굽고 있는 것은 생선이나 계란 같은 것이다. 멸치볶음이나 콩자반 같은 것은 한가한 시간에 미리 해두는 음식이다. 그래서 전업주부들을 한가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한가한 시간엔 한가한 시간대로 또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멸치볶음과 같다고 보면 된다. 흔히 볼 수 있다고 가볍게 봐선 안 된다.

마른 멸치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멸치볶음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잔멸치를 사서 팬에 기름 없이 볶는다. 비린내도 잡고 바삭함을 더하기 위해서다. 살짝 볶은 멸치를 덜어내고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간장과 설탕, 마늘을 올려 끓인다. 취향에 따라 청양고추나 고추장을 사용할 수도 있고 매실진액이나 다른 양념을 혼용해도 된다. 그냥 하기 나름이다. 이어서 멸치를 넣고 적당히 볶으면 된다. 좀 더 바삭하게 먹기 위해선 불을 끄고 물엿을 둘러 잘 섞어주면 된다. 꽈리고추나 견과류를 넣어 볶아도 좋고 편마늘이나 마늘종 등을 넣어 볶아도 궁합이 괜찮다. 멸치육수의 용도만큼이나 멸치볶음의 종류도 다양해질 수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불종거리 위편에 있는 실비집 '만초'에 가면 독특한 멸치무침을 맛 볼 수 있다.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으로 소스를 만들고 청양고추와 잔파, 깨소금을 듬뿍 넣은 다음 5~6cm 정도 되는 배와 내장을 제거해 찢은 멸치를 푸짐하게 올린 이 멸치무침은 두부와 먹어도 좋고 밥에 비벼 먹어도 아주 맛있다. 흔히 볼 수 없는 맛이다.

남해 지족의 한 멸치쌈밥 전문점에서 만난 멸치 회무침. /김구연 기자

또 멸치는 샐러드에 넣어도 괜찮다. 살짝 튀긴 잔멸치를 담백한 드레싱으로 간을 한 야채샐러드에 넣으면 조합이 괜찮다. 야채와 함께 먹으면 건강식 안주가 된다.

간혹 오래된 멸치볶음이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계속 꺼내 먹기도 그렇고 상한 것은 아니니 버리기도 아깝다. 이럴 때 애기김밥을 만들어 먹으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참기름과 깨소금을 둘러 식혀가며 섞은 밥을 4분의 1로 자른 김에 펴서 올리고 묵은(?) 멸치볶음을 넣어 말아 먹으면 아이들 입맛에도 딱이다.

이렇듯 어떻게 해 먹어도 맛있는 멸치는 고르는 법이 가장 중요하다. 어민이나 수협 관계자, 상인들은 공통적으로 "등엔 은빛이 돌고 배가 하얗고 모양이 예쁘고 상처가 없는 멸치가 상품"이라고 한다. 이런 멸치들은 짜거나 쓰지도 않다고 한다. 실제 최고의 멸치라고 하는 남해 죽방렴 멸치는 그 맛은 담백·고소하고 모양새는 참 예쁘다. '예쁘다'는 표현이 애매하긴 한데 남해멸치가 모이는 삼천포 서동건어물 직판장 99번 중매인 부부는 "얌전하게 인사하듯 살짝 굽은 멸치가 최고"라고 한다.

멸치는 보관법도 중요하다. 쪄서 말렸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된다. 때문에 관계자들은 반드시 냉동보관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상하지 않고 특유의 바삭함을 유지할 수 있다. 간혹 잘못된 보관으로 눅눅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전자레인지에 살짝 넣었다 꺼내면 바삭하게 되는데 이때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썩 괜찮다.

3월 말이 되면 봄멸치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가을멸치에 비해 살이 많은 봄멸치는 생으로 조림이나 회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인근 여수나 타지역에 비해 기름기가 덜하고 내장에 씹히는 펄이 없는 남해멸치는 생멸치 요리로도 유명한데 남해읍, 지족, 미조 등지에 괜찮은 음식점이 많다.

남해 지족의 한 멸치쌈밥 전문점에서 만난 멸치조림. /김구연 기자

취재진이 찾은 곳은 지족의 한 멸치쌈밥 전문점이다. 지족의 멸치쌈밥 전문점에선 갈치회와 조림을 함께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제주갈치와 같은 바다에서 잡히는 갈치라 그 맛도 괜찮다.

먼저 나온 것은 멸치회무침. 미조에서 손질한 멸치들이다. 머리와 뼈, 내장을 제거한 생멸치는 비린내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비린내 자체를 멸치 맛으로 먹어도 나쁘진 않다. 각종 채소와 양념으로 붉게 무쳐 나온 회무침은 밥과 함께 비벼 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무래도 익히지 않은 것이라 두툼한 생선회에 길들여진 분들이라면 피하고 싶은 맛일 수도 있다.

메인 메뉴는 멸치쌈밥이다. 자작한 멸치조림과 쌈채소, 마늘, 쌈장 등이 멸치쌈밥의 구성이다. 이미 남해의 명물이 된 멸치쌈밥은 가게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된장을 기본양념으로 하고 각자의 양념이 더해진다. 때문에 남해를 찾는 관광객들마다 선호하는 가게들이 조금은 갈린다. 이 또한 산지의 매력이다.

오늘 찾은 집은 시래기나 고구마 줄기 같은 채소가 없는 조림이다. 끓는 양념에 멸치를 넣고 그대로 조린 것이다. 이 집 주인은 여러 채소를 넣는 것 보다 멸치를 더 넣는 게 훨씬 좋다고 강조한다. 멸치 자체의 육수가 나오는 멸치조림은 따로 조미료를 쓸 필요가 없다. 된장과 기본양념이면 충분하다.

쌈채소에 뜨거운 밥을 올리고 멸치를 한 마리 올린 다음 자작한 조림 국물을 한 숟갈 떠 부은 다음 싸서 먹는다. 취향에 따라 생마늘을 쌈장에 찍어 넣어 먹어도 좋다. 멸치조림은 기본적으로 매운 양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먹다보면 코 끝에 땀이 맺힌다. 뜨겁고 매운 그것을 먹다보면 멈추기 힘들다. 밥을 추가해 먹는다.

나른해지는 봄날 멸치쌈밥 한 상이면 몸도 챙기고 마음도 챙길 듯 싶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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