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개 어민을 만나기 위해 창원시 진해구 수치마을로 향했다. 약속시각인 오전 9시가 지나도 조용했다. 전화해 보니 연결이 안 됐다. 여러 차례 전화해도 마찬가지였다. 급한 마음에 수협 쪽에도 문의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30분 지나서야 겨우 통화가 됐다.

"아, 지금 작업현장에 있는데 곧 들어갈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음…. 초조한 나와는 달리 어민은 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며칠 후 다시 이 어민을 만났다. 그런데 또다.

"아, 작업이 생각보다 좀 늦어졌습니다."

음…. 저번과 마찬가지로 미안한 기색 없이 태연했다. 결국 약속시각보다 1시간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했지만, 그래도 어쩔 도리는 없었다. 이 분의 도움을 얻어야만 취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민과 함께 배를 타고 양식작업 현장으로 갔다.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였다.

양식장 뗏목 위에는 30~40여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형망선이 작업하는 곳으로 다가왔다.

진해수협 직원들이 전해준 우유로 잠시 빈속을 달래고 있는 어민들. /김구연 기자 sajin@

여기저기서 작업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물에서 피조개가 쏟아질 때는 '와르르'하는 소리가 크게 진동했다.

선별 작업하는 아주머니들의 대화 소리까지 섞였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겨울바람은 겨울바람이다. 바람 소리에 귀까지 먹먹해졌다.

그랬다. 작업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는 늘 사고 위험이 존재하기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도 없다. 야속하게 생각했던 어민은 약속에 소홀한 것이 아니라 작업현장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다.

더군다나 이 어민은 작업하는 와중에도 이것저것 설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새벽부터 나와 8~9시간 고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또 촬영 왔느냐"며 그냥 웃어넘겨 준다. 질문하면 목이 터져라 시원시원히 답해준다. 불청객이 떠날 때는 "다음에 또 봅시다"라며 인사를 잊지 않는다. 약속에 좀 늦었다고 서운해 했던 것이 아주 미안하게 느껴진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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