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재배 이미 70년대부터, 노지 딸기 시절 '봄과일' 오늘날에는 '겨울과일'

'진주 딸기'는 최근 특허청의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됐다. 원산지 가치를 인정받고 상품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진주에서 딸기를 특히 많이 하는 곳은 수곡면·대평면이다. 그래서 '진주 딸기'보다는 '수곡 딸기' 혹은 '대평 딸기'가 귀에 좀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 딸기 시배지는 밀양 삼랑진이다. 1943년 일본에서 모종 10여 포기를 들여온 것이 최초로 전해진다. 진주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재배에 나섰다.

그 시초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좀 엇갈린다. 사료에는 수곡면에 살던 김병곤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종자를 들여와 처음 심은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수곡면 주민들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집현면에 사는 누군가가 일본에서 딸기재배법을 배운 후 종자를 들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살던 집현면 아닌 수곡면에 씨를 뿌렸다고 한다. 탁 트인 수곡면 들판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농가에서 딸기 선별 작업 중인 농민들. 유통 시간을 고려해 조금 덜 익은 것을 내놓는다. /김구연 기자 sajin@

시초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엇갈리지만 1970년대 말 수곡면에서 시작해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수곡면은 이전에 사과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물론 벼·보리농사가 주업이었다. 농민들은 항상 돈 되는 것에 눈 돌리기 마련이다. 벼·보리에 비해 딸기가 수익성 높다는 것을 알면서 작목을 바꾸는 분위기가 커졌다.

1980년대 들어 새 소득증대사업에 대한 행정 지원이 많아지면서 딸기 재배 농가도 급격히 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노지 아닌 하우스 재배로 굳어졌다. 1992년에는 수곡면 5개 마을 농가가 조합을 결성했고, 이것이 오늘날 수곡덕천영농조합법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외지 나갔던 이들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뿐만 아니라 귀농인까지 눈 돌리면서 딸기 재배는 더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2003년에는 일본 수출까지 하게 됐다.

딸기 하우스는 지하수를 이용해 온도를 조절하는 수막식이다. 하우스 내 온도는 5도에서 20도 사이를 유지한다. 하우스 내에는 벌통이 있는데, 이는 수정 역할을 하는 꿀벌을 두기 위해서다. /김구연 기자 sajin@

오늘날 딸기는 대부분 하우스에서 자란 것들이다. 진주에서는 이미 1970년대 말 시작했으니 하우스 딸기 시초에 가깝다.

수곡면·대평면뿐만 아니라 집현면·명석면 같은 곳에서도 딸기를 한다. 주로 진양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다. 모래땅이기에 물 빠짐이 좋다는 것이다. 대곡면 같은 곳도 땅 조건은 비슷하지만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다.

딸기는 물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깨끗한 물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을 필요로 한다. 수곡면·대평면 같은 곳은 암반굴착으로 깨끗한 지하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지하수를 찾아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10m 아래에서 시작된 것이 이제는 100m까지 내려가 끌어올린다고 한다.

집현면 같은 곳은 예전보다는 딸기 하는 이가 줄었다고 한다. 산이 깊어 일조량이 적기에 딸기 환경조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진주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인근 산청 딸기가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일교차가 커 당도도 높고 야물어 높은 가격을 받는다. 특히 물 좋은 고장이라는 덕을 보고 있다. 하동, 거창, 밀양, 합천 같은 곳에서도 많은 양을 내놓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충남 논산, 전남 담양, 전북 완주 같은 곳이 유명하다.

모종을 키우는 별도 비닐하우스. 딸기는 모종 재배가 특히 중요하다. /김구연 기자 sajin@

어느 농가는 하우스 10동에 3000평가량 하는데, 연 매출은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 사이라고 한다. 순이익은 매출의 반가량 된다고 하니 온 가족이 붙어 부지런을 떨면 소득이 괜찮다고 한다. 그러니 전국적으로 딸기에 눈돌리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20∼30년 전 대부분 노지 딸기이던 시절에는 봄에나 그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겨울부터 이듬해 5월까지 맛볼 수 있다. 노지에서 하우스로 넘어가면서 제철이 봄에서 겨울로 바뀐 것이다. 한 대형마트에서는 사과·감을 제치고 딸기가 처음으로 겨울과일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제 딸기는 '겨울과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동지 때 개딸기'라는 말은 '철 지나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의미다.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딸기농사 하는 이들은 상품성 없는 것은 집에 가져가 해결한다. 한 농민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도 처음에는 좋다고 했는데, 늘 먹다 보니 이제는 시큰둥하지. 그래서 잼으로 만들거나 가공제로 활용할 수밖에 없지. 딸기향이 좋기는 하지만, 나도 수확 철 일 많을 때는 냄새 맡기도 싫어. 그래도 가격 좋을 때는 이 향이 그리 좋을 수가 없지.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야.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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