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도 실전처럼…‘마지막 하나의 공까지 제대로’

NC 다이노스의 첫 승, 첫 완투, 첫 완봉, 첫 10탈삼진을 거두며 기록제조기로 우뚝 선 신예선수가 있다. 앳된 얼굴로 평소에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지만 마운드에만 서면 전사로 변한다. 올 시즌 NC 돌풍의 주인공이자 2013시즌 최고의 신인인 투수 이재학(23)이 그 주인공이다.

이재학은 2009년 신인지명회의에서 두산의 부름을 받고 프로 무대에 당당히 입단했다.

큰 기대를 받으며 프로에 입단했지만 아쉬움만 남았다. 프로 1년차이던 2010년 이재학은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16경기에 23과 1/3이닝 동안 1승 1패, 평균자책점 5.01을 기록했지만 이후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프로 무대에서 자취를 감춰야만 했다.

그러던 중 2011시즌 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로 이적한 이재학은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15승 2패, 평균자책점 1.55를 기록하며 날개를 달았다.

그리고 2013년 NC의 첫 승리였던 지난 4월 11일 잠실 LG전에 마운드에 올라 당당히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4-1 승리를 견인했다. 이어 팀의 첫 완투를 지난 5월 17일 마산 삼성전에서 선보였고, 7월 31일 서울 목동 SK전에서는 1군 무대 첫 완봉과 함께 팀의 한 경기 첫 10탈삼진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김구연 기자

NC의 시즌이 종료되고 신인왕 결과가 나오기 4일 전인 지난달 31일, 마산구장에서 훈련에 열중인 이재학을 만났다.

열심히 뛰었고 기록도 좋아

올 시즌 풀타임 활약을 이어간 이재학은 인상 깊은 성적을 거뒀다. 26경기에 나와 10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8로 NC에서 찰리 쉬렉과 함께 10승 투수로 이름을 올리고 신인왕이 됐다.

“마지막 경기에서 10승을 거뒀어요. 앞선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지 못해 유희관 선배가 먼저 10승 고지를 밟았는데 뒤처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던졌고, 그 덕에 10승을 올릴 수 있었어요.”

사실 이재학에게는 10승 투수도 중요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 있다. 바로 국내 투수로서의 정상급 기량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재학은 국내 투수 중 유일하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어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과 피안타율은 국내투수 1위, 퀄리티스타트는 노경은(두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7차례를 기록했다. 탈삼진도 144개를 수확하며 리즈(LG), 세든(SK), 노경은(두산), 바티스타(한화)에 이어 5위에 랭크됐다.

“시즌이 끝나고 기사를 통해 이런 결과를 접할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올 시즌 운이 많이 따라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많은 분이 실력이 없으면 운도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구연 기자

힘들게 훈련에 임하고 공을 하나라도 더 던지려고 애를 쓰는 모습 때문에 NC에서 이재학을 평가할 때 악바리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투수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팀을 대표해서 공을 던지는 선수인데 대충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그건 프로의식이 없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 생각해요.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주시는 이유는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더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시는 걸 테니까요.”

늘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일 뿐

지난 4일 이재학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신인왕의 영예를 안았다. 시즌 전에는 팀 동료 나성범이 신인왕 후보 0순위로 많은 미디어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이재학은 스스로 미디어의 사랑을 쟁취했다.

1년의 시간 속에서 이재학은 많은 분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특히 그는 자신과 배터리를 이룬 포수 김태군과 최일언 코치, 손민한, 김광림 타격코치에 감사할 일이 많다고 했다.

“태군이 형이 마운드에 이따금 올라오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저는 직구와 체인지업 비율이 높은 투 피치 투수와 흡사한 유형이라 타자와 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구가 급격히 흔들릴 때가 있는 데 마운드에 올라와 사투리로 대화를 하다 보면 긴장이 풀려요. 태군이 형이 ‘니 또!’ 이렇게 말을 해주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인터뷰 전 김태군은 “니는 또 인터뷰 하나? NC 슈퍼스타 이재학이 부러워서 살겠나?(웃음)”하고 이재학에게 능글맞은 장난을 쳤다.

그 밖에도 이재학이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최일언 투수코치와 손민한, 그리고 김광림 타격코치였다.

“최일언 코치님은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분이죠.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NC에 입단했을 때 제게 하체로 공을 던지는 방법을 새삼 일깨워주셨어요. 투수는 공을 어깨를 비롯한 전신으로 던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었고, 그 점을 항상 강조하셨죠.”

이재학에게 손민한은 어려운 존재였다. 워낙 대선배인데다 현역 프로야구 투수 출신 중에서도 손꼽히는 레전드기 때문이다.

손민한은 1997년부터 12시즌 간 롯데에서 활약하며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부터 롯데 선발투수로 등판한 손민한은 통산 성적 103승 72패 12세이브 평균자책점 3.46으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2005년에는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처음 손민한 선배를 대할 때는 나이 차를 떠나 기록에서부터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있어 어려운 선배였어요. 근데 오히려 선배가 후배들을 먼저 찾아와 하나하나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셨죠. 특히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셨죠. 가령, 위기 순간, 볼 카운트 상황 등에서 어떤 구종이 더 효과적인지를 과거 선배가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알려줬죠. 손민한 선배 조언 덕분에 저 역시 위기순간을 여러 차례 넘겼습니다. 그리고 김광림 코치님에게는 타자들의 생각이나 노림수 등을 전해 들었어요. 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타자의 심리도 잘 알아야 하잖아요.”

/김구연 기자

꾸준한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어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NC 팬들에게 이재학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이 됐다.

스스로 자신이 꿈꿔왔던 기록들은 실제로 이뤄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생각해온 것이 구단의 첫 승과 첫 완투, 완봉, 투수 10승, 3점대 평균자책점이었어요. 근데 진짜 제가 생각했던 모든 목표를 올 시즌 다 이뤄냈어요. 부족함도 많지만 저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해요.”

특히 자기가 이뤄낸 기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난 7월 31일 문학 SK전에서 스스로 일궈낸 완봉승이었다.

“완봉승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경기를 통해 팀이 올 시즌 SK에 완벽한 우위를 점하게 됐고, 개인적으로도 첫 완투를 할 당시에는 패했기 때문이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절 웃게 만들어요.”

숱한 기록과 함께 이재학은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재학은 이런 찬사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손을 내저었다. 겸손이 아닌 진심이었다.

“올해는 잘했지만 내년에는 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구종으로 커브를 연습 중이고 올 시즌 손가락이 아파 많이 던지지 못했던 슬라이더도 좀 더 가다듬어 좋은 무기로 쓰고 싶어요.”

사이드암인 이재학에게 커브는 상대타자에게 많은 혼란을 줄 수 있는 공이다.

사이드암의 커브는 체인지업과는 반대로 좌타자의 몸 쪽으로 감겨 들어간다. 방향은 슬라이더와 비슷하지만, 구속이 느려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에 안성맞춤이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헛스윙을 빼앗기 알맞은 구종이다.

“올 시즌은 주로 체인지업을 던졌기 때문에 내년 시즌엔 상대팀이 철저한 분석을 할 것으로 보여요. 상대팀 타자들에게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커브 장착에 성공하고 싶어요.”

올 한 해 많은 전문가는 프로야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종 중 하나로 이재학의 체인지업을 꼽았다. 상대 타자 허를 찌르는 타이밍보다는 구위로 많은 강타자를 무릎 굽혔다.

특히 MVP 2연패에 오른 박병호와 맞대결에서 11타수 2피안타 7탈삼진을 기록했고, 2년 연속 20(홈런)-20(도루)클럽에 가입한 최정에게는 아홉 번 만나 단 1안타도 내주지 않는 압승을 보였다.

“두 선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들인데 제가 그 선배들을 압도했다기보다는 저를 잘 몰랐기 때문에 공략을 못 한 것이라 생각해요. 내년에는 선배들이 제 공을 1년 동안 봤기 때문에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 같아요. 사실 겁도 많이 나요.(웃음)”

최일언 코치도 이재학과 비슷한 생각이었고, 더 단호했다.

“재학이의 구위나 제구력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투수란 있을 수 없고, 현실에 만족해서는 대성할 수 없습니다. 프로라면 한 단계 더 발전하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이재학은 또 하나의 욕심(?)이 있다. 바로 팬들에게 꾸준한 선수로 기억되는 것이다. 새로운 구종 개발에 나선 것도 ‘반짝’ 빛나지 않기 위해서다.

/김구연 기자

“프로선수들에게 팬들의 사랑은 절대적이라 생각해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반짝하는 선수가 아니라 꾸준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재학은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초반 팀이 못했던 시절, 팬들이 욕보다는 격려의 박수를 정말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 격려 속에 우리 팀이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내년에는 신생팀이 아닌 같은 프로팀으로서 제대로 8개 구단과 경쟁을 할 것입니다. 팬들이 많이 웃을 수 있는 경기를 할 테니 올해보다 더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스스로 1군 무대에서 살아남고자 어제도 오늘도 땀 흘리는 이재학. 선수로 활약하는 이상 수많은 좌절과 환호가 항상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는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낼 것 같다. 겉보기엔 부드럽고 나긋해 보이지만 마운드에 서면 대적할 이가 없는 듯하다. 이재학 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열정과 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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