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어머니의 비법과 전통 방식으로 승부하다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서 조청을 고던 우리 전통이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데 전통 방식으로 만들지 않은 것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들 개량식 제품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이 아니라는 거죠.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은 인정하지만 전통은 전통다워야 합니다.”

의령 연호전통식품 성삼섭(57) 대표는 우리 전통의 우수성을 연신 강조했다. 불과 오래지 않은 과거에 가정에서 설탕 대신 음식에 맛을 내는 감미료이자 상비약으로 사용하던 것이 바로 ‘조청’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올리고당과 물엿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요즘은 막상 ‘조청’이 있어도 그 용도를 놓고 난감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쌀뿐 아니라 고구마·인진쑥·부추 등 다양한 재료가 원료가 되고, 그 쓰임새 또한 많은 전통 음식이 ‘조청’이라고 한다.

/이원정 기자

설탕이나 보존료, 방부제, 색소 등 화학첨가물 없이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로 재료 본연의 맛을 내며 조청과 한우곰탕 등을 만드는 연호전통식품 성 대표 부부를 만났다.

제대로 된 식품 만들기 위해 고향으로

의령군 부림면이 고향인 성 대표는 대학을 부산에서 다니고 부산에서 공무원 생활도 10년가량 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그만뒀다.

“1990년 컴퓨터가 한참 뜰 때였습니다.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가 직접 회사를 차렸죠.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10년쯤 하니 매너리즘에 빠지고 하기 싫어졌습니다.”

흥미를 잃으니 사업은 지지부진해졌다.

친환경 식품과 관련한 일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떠올랐다. 제대로 된 식품을 팔아보자는 생각에 식품 회사를 차렸는데 쉽지가 않았다. 또한 친환경 매장을 하면서 맛본 소위 ‘전통 식품’이 어릴 때 먹던 맛이 아니었다. 왜 된장 맛이 옛날과 다를까 고민에 빠졌다.

결국 5년가량 회사 운영을 하다 직접 좋은 식품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고 2007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인 손윤교(54) 씨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다.

/이원정 기자

“아내와 대학 같은 과에 다녔죠. 아내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입니다. 농촌 실정을 모르니까 따라왔죠. 또 당시 상황이 절박하기도 했고,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았으니 반대를 안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통 이어받기

공무원과 컴퓨터라는, 전통 식품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던 성 대표가 ‘믿는 구석’은 바로 어머니였다. 지금 나이가 90세인 손을선 여사는 조청과 고추장 등 우리 전통 식품을 전통 방식으로 꾸준히 만들고 있었다. 이를 이어받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성 대표의 계획이었다.

어머니께 비법을 배우고 만드는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수수·마늘·부추·콩·도라지·무 등 원재료를 무농약으로 직접 재배하고 무쇠 가마솥 10개를 내걸었다.

“조청은 뛰어난 식품입니다. 사실 조청의 맥이 끊어진 게 40년가량밖에 안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서 조청을 만들어 먹었죠. 조청이 바로 전통 발효 효소입니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물엿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쌀을 먹기 어려운 시절에 쌀로 만든 조청은 정말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성 대표는 철저히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연호전통식품에서 내놓은 조청은 무도라지청, 수수청, 인진쑥청, 칡청, 부추청 등이다. 설탕 등 인공 첨가물 없이 국산 보리엿기름을 이용해 만든다.

“보통 쌀 조청만 알고 있는데 용도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들지 않지만 꿩이나 돼지도 조청 재료가 됩니다.”

성 대표가 내놓은 조청은 입자가 약간 거칠었다. 가스불과 고압추출기 대신 장작불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스불에 끓이면 온도가 일정하니까 단맛이 강한 대신 깊은 맛이 없습니다. 가스불은 최대온도가 800도로 적정 온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장작불은 최고 1300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원적외선과 피톤치드 등이 나온다고 하죠. 장작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씁니다. 장작불과 무쇠 가마솥을 이용하면 원재료의 성분이 완전히 빠져나옵니다. 가스불을 쓴 것과 맛이 다릅니다.”

물론 가스불과 고압추출기를 이용하면 시간도 적게 걸리고 양도 많지만, 우리 전통을 지키는 진정한 ‘소울 푸드’를 만들겠다는 것이 성 대표 부부의 각오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명인이나 전통이 붙은 조청을 보면 회의가 들 정입니다. 재료에 보면 올리고당 등 많은 것이 첨가돼 있어요. 어떤 것은 3년을 그냥 둬도 곰팡이가 안 피더군요. 이런 것이 틀린 것은 아
니겠지만, 전통 식품이라고 부르면 안 되죠. 우리 것은 냉장 보관을 해야 합니다. 외국에 보면 전통적인 것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유독 우리 것은 평가절하되고 있습니다.”

성 대표는 “어머니의 기술과 손맛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조금 부족함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원정 기자

“저희 부부가 기술을 제대로 못 이어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환경적인 요인과 재료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누룩의 경우 옛날에는 우리나라 밀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단가 등의 이유로 대부분 수입산 밀을 씁니다. 또 가마솥이나 장작의 공급도 옛날만큼 원활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제품에 80% 정도 만족했는데, 요즘은 거의 만족합니다.”

가마솥 이용한 제품 다양화

한우곰탕도 연호전통식품의 주력 상품이다.

수수 등 농작물을 기본으로 한 조청과 축산물을 이용한 한우곰탕이라는 어색한 조합이 ‘무쇠 가마솥’으로 하나가 된다. 재료 신뢰성을 위해 곰탕 재료는 의령 농협과 축협에서 사온다. 아무래도 개인에게서 사는 것보다 100% 국내산 한우라는 공신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이 한우 사골과 잡뼈를 장작불에 푹 고아 곰탕을 만든다.

“곰탕도 얼마든지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서 만들어 팔 수 있습니다. 대량화와 기계화, 시장논리 등을 내세우며 안 된다고 하지만 궤변입니다. 내가 직접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러한 전통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곰탕이면 다 곰탕이라는 거죠. 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가스불이냐 숯불이냐를 따지면서 곰탕은 전통을 무시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수출하자면서 엉뚱한 개량품만 좇으니 전통을 지켜 고생해서 만들어도 판매 루트가 거의 없어요.”

시간을 들여 푹 곤 한우곰탕은 “혹시 우유를 섞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할 만큼 진하고 구수하다.

또 하나 성 대표가 내세우는 것은 막걸리이다. 역시 무쇠 가마솥에서 고두밥을 지어 술을 빚는다. 100% 국내산 찹쌀을 사용하고, 발효제 없이 전통 누룩으로 발효하는 것이 자랑이다.

“전통 밀 누룩과 가마솥 찹쌀 고두밥, 물 이 세 가지만을 이용해 저온에서 60일 이상 숙성한 것이 바로 황새골 전통가주입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막걸리가 정말 우리 전통주냐 하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걸리도 옛날식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막걸리는 1000원 남짓한 값싼 술이라는 인식이 많은데, 1000원부터 1만 원, 10만 원까지 다양한 상품이 판매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원정 기자

성 대표는 유리병에 막걸리를 담아 1만 5000원에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현재 병 디자인 등을 마쳤다.

이 외에도 연호전통식품에서는 전통발효효소 정, 환, 약고추장, 보리지장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아내, 그리고 남편

아무것도 모르던 도시 아낙은 시골에 와서 독초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좌충우돌 적응기를 거쳐야 했다.

“하루는 밭일을 하다 남편이 ‘더덕이다’며 뭔가를 던져 주더군요. 냄새를 맡아 보니 더덕향이 나는 것 같았어요. 좋은 걸 발견했구나 싶어 집에 가져와서 찢어서 물에 담가 뒀다가 먹었는데, 30분 지나니 토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미국 자리공’이라는 독초였어요. 결국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가고….”

한번은 상추를 심었는데 벌레가 너무 많이 먹었다. 아내는 어디서 식초가 좋다는 말을 듣고는 식초를 원액 그대로 밭에 뿌렸다.

“다음날 보니 노랗게 변해서는 다 죽어 있었어요. 식초를 100~1000배가량 물에 희석해서 뿌려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남편한테는 식초 원액을 뿌렸다는 말을 안 하고 왜 죽었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아내는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수수 한 알을 심었더니 주먹 한 움큼이나 열리는 게 신기했습니다. 마늘도 한 알 넣었는데 여섯 알이 되니까 신기했죠.”

아내는 “나는 고생을 안 한다. 남편이 일을 다 한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다르다. “조청 만드는 것도 술 만드는 것도 아내가 다 한다”며 제품 설명을 아내에게 미룬다. 인터뷰용 사진을 찍을 때도 꼭 아내를 불렀다.

/이원정 기자

투박한 경상도 남편과 알뜰살뜰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을 살피고 돕는 아내. 그런데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남편은 “아내가 보기와는 다르다. 내가 꽉 잡혀 산다”며 일렀다. 막걸리 발효실의 문을 열쇠로 걸어 잠근 사람이 바로 아내라는 것.

“내가 오며 가며 술을 살짝 마시니까 아내가 아예 잠가 버렸습니다. 내가 아내한테 꼼짝을 못해요.”

가마솥 50개 내거는 게 꿈

성 대표는 상복도 있는 편이었다. 그동안 경남관광기념공모전 금상과 벤처농업창업경연대회 농림부 장관상, 국립품질관리원 품평회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이런 수상이 제품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열린 직거래 장터에서 준비한 상품이 모두 매진될 만큼 인기를 얻기도 했다.
연호전통식품의 상품명은 ‘의령 황새골’. 성 대표가 자리 잡은 부림면 감암리의 골짜기 이름을 땄다. 지난해 매출은 1억 원으로, 이를 5억 원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가마솥도 현재 10개에서 50개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이는 수제품으로도 충분한 분량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성 대표는 가마솥 50개가 완전 장관을 이룰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듯했다.

성 대표의 향후 계획은 2가지이다. 하나는 전통식품학교를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시에 복합매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전통 먹거리를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공장 바로 위에 터를 사서 황토 등으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곳을 체험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데 아직은 20명 정도를 수용할 규모밖에 안 됩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4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원정 기자

복합 매장은 한우곰탕을 전면에 내걸고 기타 제품을 전시·판매할 계획으로, 가급적 직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연호전통식품의 주 고객층도 인근 지역보다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많이 있다.

홈페이지(www.otfood.com)가 있지만, 경상남도가 운영하는 특산물 사이트인 ‘e경남몰(http://egnmall.net/)’을 통해 주로 판매한다. 전화 문의는 010-2831-9716.

<추천이유>
◇이영미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가
= 연호전통식품 성삼섭 대표는 의령군귀농자협의회와 의령군식품가공협의회 회원으로, 무쇠가마솥에 장작불로 농축한 전통발효효소, 홍삼정처럼 원재료를 농축하여 차로 마시는 전통발효효소, 소화흡수가 확실하고 부작용이 없는 프리미엄 고급환, 천연당분 식이섬유가 풍부한 경상도 전통 고추장,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진품 전통수제품 등을 생산하는 가공업체 대표입니다. 특히 조청과 전통가주, 곰탕 가공을 주로 하는 전통식품의 대가로 차별화된 기술력과 노하우로 제품생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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