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진해, 언젠가 기여할 기회 있다면…

2013년 11월의 한 일요일도 자정을 넘겨 월요일을 향하고 있다. 201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에게는 잠시의 여유가 있는 휴일을 넘어서고 있다. 직장인들에게는 다시 돌아오는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가을의 하루를 뒤로 한 채 달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한강을 지나는 지하철 창속에는 저 멀리 흩어지는 빛이 담겨 있다. 나에게는 인생 40대의 시작을 맞이한 한 사람의 인터뷰를 마음으로 정리하는 자리다. 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버지로, 가끔은 사회를 알아가는 삶을 이어가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고 있는 사회인이다. 11월의 온도계는 낮과 밤을 가르며 요동치고 있다. 30대의 나보다 조금 먼저 살아간 40대의 삶은 어떨까?

지난 3월 역대 최연소 한국관세사회 회장직을 맡은 한휘선(41) 신임 회장과의 인터뷰는 역동적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고향에 내려가서 뭔가 기여하고 환원하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히며 인생의 밑그림에 조금씩 색을 입히고 있었다. 경남 진해 출신인 그는 아버지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제시했다. 인터뷰의 시작과 끝에서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야기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원칙과 명분과 명예를 중시 여기는 분이셨고, 그런 것들이 제가 관세사 회장에 나오는 계기가 됐습니다”라며 “법인을 운영하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는데 이 길을 선택했지요”라고 강조했다.

/조문식 기자

한 회장은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해군 군무원이었던 아버지에 대해 그는 “눈앞의 이익보다는 명예와 명분을 먼저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이는 관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큰 계기가 됐다. “돈보다는 명분을 항상 가르쳐주시던 아버지께서 돈이 평생의 한이셨던지 명예보다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어려운 분을 위해 봉사하는 힘 있는 공무원이 되고자 했던 제 꿈과 맞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관세사의 길로 들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고려대 경영대 무역학과 91학번인 그는 대학시절 사회를 바라본 뜨거운 가슴도 털어놨다. 당시에 대해 한 회장은 “대학시절 학생운동도 좀 했습니다. 1991년도에 입학하자마자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누가 나를 꼬인 것도 아니고 … ‘과연 이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찰이, 학생이 시위를 한다고 해서 쇠파이프로 때려죽이면 되느냐는 생각에 거리로 뛰어나갔지요. 그 뒤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거의 2년을 데모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1991년~1992년이 제일 심했지요”라고 기억했다.

-경남에서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중학교까지는 경남 진해에서 해군가족으로 생활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산에 진학했지요. 마산 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왔습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각진 안경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는 그는 학창시절에 대해 “평범했다”고 말했다.

/조문식 기자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한 건 아니었지요. (웃음) 뒤에서 좀 노는 친구들, 조금은 거친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교우관계가 두터웠다고 생각합니다.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사귄 것 같습니다.”

- 학창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학창시절 미래에 대한 꿈은 다양했습니다. 또 특유의 성실함이 돋보인 계기도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던 건 중학교 시절에 한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뭔가 … 내가 청년시절 생각을 키운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청소를 하면 책상과 걸상을 전부 뒤로 민 후 다시 앞으로 반복하지요? 쓰레기를 뒤로 모으려고 … 제가 마지막에 다 모아서 (마무리를) 하는데, 한 선생님이 (그 모습을) 한 달 정도 봤나 봅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를 생활지도위원으로 위촉을 했습니다. 완장을 차게 됐지요. (웃음) 그때 제가 뭔가 열심히, 아무런 목적 없이 ‘이건 내가 해야지’하는 일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지요. 이후 친구들에게 생활지도위원으로 모범이 돼야한다고 생각을 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 느끼나요? 현재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고향에 자주 갑니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고향에 내려가서 뭔가 기여하고 환원하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협회장이 되고 생각하는 것은 기업들이 원활한 수출·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관세사의 공익성을 확대해나가겠다는 부분입니다. 국가에 기여하고 기업들에 기여하는 공익적 활동들을 많이 생각합니다. 제가 딸이 3명인데, 아들을 바라보고 올 초에 담배를 끊었다가 회장선거에 나오면서 다시 피우고 있습니다. (웃음) 하루 반 갑 정도 태웁니다. 주량은 영업도 있고 해서 학창시절보다 많이 늘었지요. 소주 1병 반 정도는 마시는 것 같습니다. (웃음)”

- 관세사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관세사로 성공한 후 회장에 출마한 계기가 있나요?

“‘돈보다는 명분’이라는 것을 항상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가 돈이 평생의 한이셨던지 ‘명예보다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하기를 바라셨고, 어려운 분을 위해 봉사하는 힘 있는 공무원이 되고자 했던 제 꿈과 맞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관세사의 길로 들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을 꿈꿔왔습니다. 정말 부정부패하지 않는 봉사하는 공무원을 위해서 행정고시를 준비하려고 한 적도 있지요. 관세사가 된 후에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고, 밤낮없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제 앞의 이익을 위해 명분을 저버리는 일은 없었고, 정도를 걸으며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한국관세협회 회장 선거에 나서면서 ‘제 개인의 이익과 특정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도덕으로 선·후배 관세사님들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눈을 피해야 하고 20~30년 손가락질 받는 그런 회장은 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항상 어디서든 생각합니다.”

/조문식 기자

- 수능을 마친 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관세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국내에서의 물품 거래와 달리 해외에서 물품을 국내로 들여오거나 또는 해외로 내보낼 때는 다양한 일들이 필요합니다. 물품에 관련된 세금을 부과하거나 수출·입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거나, 또는 통관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처리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수출·입 업자(화주)로부터 의뢰받아 대행하는 통관전문가가 관세사입니다. 관세사의 주요업무로는 수출·입 통관 대행업무, 관세법 및 환급특례법에 의한 관세 환급 업무, 관세법에 의한 이의신청 심사청구 및 심판청구의 대리, 무역 및 관세에 관한 각종 전문상담, 무역 송장 작성, 클레임 해결 등이 있습니다. 무역관련 업무 절차의 대행, 운송보관 등 물류관련 전 분야 대한 연계서비스 등을 수행합니다.”

- 관세사의 전망은 어떤가요? 학생들이 알면 좋은 세부사항을 말씀해주세요.

“관세사라는 자격증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타 자격사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향후에 FTA와 무역에 대한 전문가로서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이고, 아직까지 많은 개척할 분야가 있는 전망 좋은 자격사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열정을 바쳐 도전해 볼 만한 자격증이지요. 관세법과 대외무역법, 외국환거래법, 회계학 등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관세사 자격을 취득하면 개인 관세사무소, 합동 관세사무소, 관세사법인, 통관취급법인 등에 취업할 수 있고 무역관련 기업체나 관세청 산하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초봉은 3500만 원 수준이고, 법인 등에 채용됐다가 몇 년 후 독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관세사 자격은 어떤 과정을 통해 취득할 수 있나요?

“관세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세청에서 주관하는 관세사 시험에 합격해 자격을 취득해야 합니다. 시험은 매년 1회 시행됩니다. 만 20세 이상이면 학력, 성별, 나이의 제한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지만 관세법, 내국소비세법, 관세율표 및 상품학, 무역실무 등 전문적인 내용을 평가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경영학, 경제학, 무역학, 세무(회계)학, 법학 등의 전공을 이수하면 자격 취득에 유리합니다. FTA 협약이 계속 확대되고 있고 각 국가마다 협약 내용과 범위가 상이해 이에 따른 협약 수출·입 절차 이행, 원산지증명서의 발급 및 검증 등 새로운 업무가 부여됨으로써 과거 기본적 업무인 수출입통관 신고업무 보다 전문적 업무영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문식 기자

- 마지막으로 회장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회장에 출마할 때 밝힌 것처럼, 갈라진 회원들을 통합하고 외부세력의 침략을 막아내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토론하는 그런 관세사회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또 어느 자격사보다 우월한, 자랑스러운 관세사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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