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게 나누기를 지향하는 차상(茶商)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香山里)에 가면 석가명차(石佳茗茶)라는 차 가게가 있다. 갖은 차와 차도구를 주로 판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여기 모두 있다 해도 된다. 중국에서 수입한 차들이 많고 그 가운데서도 보이차가 많은데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차와 보이차를 많이 즐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중국 보이차라 하면 매우 비싼 줄 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보이차 가격 거품을 빼다

장사를 한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고 팔까? 하고 생각하리라고 짐작한다. 더욱이 중국차, 그 가운데서도 보이차를 주로 다룬다고 하면 그런 생각은 더욱 커진다. 한때 크게 유행하면서 중국 보이차는 매우 비싸게 팔렸다.

아마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쳐서, 원가와 견준다면 5~10배 장사는 한다고 여겨졌다. 석가명차를 운영하는 최해철 대표(49)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2년 전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원가에 10~20% 정도를 더 얹어서 값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은 석가명차가 얼마에 내느냐가 영향력을 갖게 됐습니다. 옛날 중국과 왕래가 잦지 않을 때는 가격에 거품이 많았습니다. 차 또한 정상적이지 아닌 것이 많았어요. 수입을 하면 물량을 많이 가져오기 때문에 이문을 조금 남겨도 됩니다. 10~20% 정도 이윤을 붙여 정상적으로 출시를 했는데, 사람들이 이랬어요. ‘보이차는 그렇게 파는 것이 아니다. 원래 비싸게 파는 품목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차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연은 소중하고 한 번 인연은 평생 인연이거든요. 또 비싸게 받으면 마음도 편하지 않고요. 도와주시는 분께 도리가 아니지요. 그래서 기존 업체한테 원망도 듣고 협박도 받고 했습니다. 또 ‘석가명차는 싸구려다’ 하는 헛소문도 많이 돌았습니다.

2001년 개업해서 12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이제는 저희 가게 출시 가격이 표준으로 삼아질 정도로 정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매장 면적도 가장 크고 무역 규모도 가장 큽니다. 중국에 보이차 생산업체가 2000군데 정도 되는데요, 우리나라에 직접 진출해 대리상을 모집하는 1위 업체를 빼면, 2~5등에 해당하는 업체는 모두 저희가 한국 총판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냐고요? 누구든 가게에 오면 도와주는 분입니다. 뭐라도 팔아주시면 도와주는 분입니다. 팔아주지 않아도 찾아주는 자체가 고마운 일입니다. 2층 계단 들머리 흰칠판에 적혀 있어요. ‘먼 데서 오신 손님 기름 닳카 가메 와 주신 것도 고마운데 물건 값까지 물어주시니 어찌 고맙지 않으리오.’ 우리 엄마 말씀입니다.
인연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그 인연들이 모여서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돈 안 되는 차 보관업을 하는 까닭

   

알려진 대로 중국 보이차는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맛도 향도 좋아지고 값도 덩달아 오른다. 10%, 20% 이렇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2배, 3배 이렇게 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 보이차를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내다팔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챙기는 이윤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런데 석가명차 최해철 대표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지금은 손님이 산 차를 수수료만 받고 보관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자기 몫을 키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손님들에게 판 차를 보관해 줄까?

“본업은 무역업이고 보관업은 그에 딸린 일인 셈입니다. 보관 창고는 160평 정도 됩니다.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를 구분해 보관합니다. 제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보이차는 장기 보관하면 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집니다. ‘월진월향(越陳越香)’이라 합니다. 생차의 특징은 자연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 속에 조금씩 익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숙차는 공장에서 완전히 쾌속으로 익혀 숙성해 내놓습니다. 구분을 해야 서로 향이 다치지 않습니다. 또 생차는 습기가 있어야 좋고 숙차는 건조해야 도움이 됩니다. 숙차는 쾌속발효했기 때문에 텁텁한 숙미(熟味), 익은 맛이 좀 빠져야 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맑아지는 셈이지요. 반면 생차는 익히지 않은 상태로 뭉쳐놓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익어갑니다. 그래서 조금 눅눅한 것이 좋지요.

차 보관업은 저희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느냐고요? 수익 창출보다는 고객 보답 차원입니다. 스님들 차 많이 좋아하는데 이동이 잦습니다. 선방에 거처하시면 더욱 그렇습니다. 석 달에 한 번꼴로 옮겨다닙니다. 미리 사 놓으면 좋겠는데 보관 장소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도록 해서 보관해주고 필요한 때 필요한 곳으로 보내드리면, 보관 걱정 없이 좋은 차를 좋은 가격에 구매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요구가 많아졌고 그래서 어렵지만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해철 대표에게서는 불교 냄새가 난다. 인연을 강조하는 품도 그렇고 차 문화 자체가 불교와 관련돼 있다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석가명차에는 스님들 발길이 무척 잦은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불교와 인연이 깊지요. 젊은 시절 떠돌이 생활을 했어요. 7~8년? 이 산 저 산 돌다보니 절을 만나게 됐고 거기서 묵었지요. 불목하니 노릇도 하고 심부름꾼도 하고 노가다도 하고 하면서 스님들 잘 알게 됐고 또 맨 처음 차를 맛본 곳이 절입니다. ‘차 한 잔 하라’면서 스님이 내려준 찻물에 대한 기억이 각인돼 ‘나중에 찻집이라도 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게 실현이 됐습니다. 스님들 오시면, 특별하게 어려웠던 시절에 저를 살게 해 준 분들이기 때문에 좋은 가격에 좋은 차를 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여기 위치가 좋습니다. 통도사·석남사·불국사·내원사·표충사 등등이 모두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 안에 있습니다.”

최 대표는 수입만 아니라 수출도 한다. 차를 수입하다 보니 중국에 이런저런 인연이 생겨서 한국 차와 한국 차도구 따위를 중국에 소개하고 팔 수 있게 됐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 차와 차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는 무엇이 있나?’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침 중국에 사무실이 필요해졌는데, 창고 삼아 중국 상품만 두기는 그렇고 해서 전시 목적으로 몇 가지 한국 것 갖다 놨는데요. 한류, 한국 드라마 이런 영향 덕분인지 다행히 찾는 사람이 있고 자기 물건 사주는 데 대한 보답 차원에서 사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겼어요. 다르지만 특별한 분위기를 즐기는 분들이지요.

이렇게 분위기가 이뤄지다가 도자기나 차 도구 만드는 이들이 요즘 어렵거든요? 그래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작가들을 모아 중국 차 관련 박람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국관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내걸고요. 처음에는 중국 정서에 맞는 제품을 주로 소개했는데, 오히려 한국에 고유한 정서가 곁들여 있는 작품이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이번에 대만 마주보는 하문에서 10월 10일부터 15일까지 박람회가 있었는데 한국 작가 20명 초청하고 부스 20개를 열었습니다. ‘최초’라고 또 얘기하려니 부끄러운데, 개인적으로 판매를 하신 분들은 있었겠지만, 조직적·체계적으로 진출한 것은 저희가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가게 중국 현지 법인 석가차업유한공사를 통해 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순환과 흐름을 위해 차도구옥션도 열고

어지간한 일반 가정집에도 차도구가 일습씩은 있다. 차를 즐겨 마시지 않아도 보자기에 덮인 채로 한 쪽 구석에 놓여 있는 찻잔 등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시성으로 갖추거나 아니면 선물로 받은 물건이기 십상이다. 이런 중고 차도구를 손쉽게 사고팔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도 최 대표는 운영하고 있다.

“차도구옥션(www.tauction.net)인데요, 참 이거 자랑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지금 도자기 시장이 차 관련해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전시 위주로 차도구를 사 모으기는 하는데, 쓰지를 않으니까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매·재구매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경제는 순환이고 흐름인데, 그게 이뤄지지 않고 쌓여 있습니다. 소장가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작품을 재판매할 루트를 열어주면 계속 순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부산대학교 이병인 교수랑 <아름다운 차도구> 박홍관 발행인이랑 뜻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물건들이 새 주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제품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6월에 첫 경매 이뤄졌고요. 10월이면 5차가 되는데 9월 경매에서는 접속 인원이 폭증해서 사이트가 다운됐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경매 특성상 시작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사람은 싸게 살 수도 있어요. 다른 인터넷 경매 사이트와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도 전시합니다. 보통은 누구나 자기가 올리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찍어서 올리게 돼 있지만 차도구옥션은 아닙니다. 도자기·차 제품·서화 등 분야별로 검증·심사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데는 낙찰률이 10~20% 수준인데 여기는 90%가 넘습니다.

자랑 같아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여기서 나는 이윤으로는, 도자기 제작이나 차업 종사자들한테 일부 지원을 할까 하고 있습니다. 운영 경비는 받아야지만 수익금으로 치부를 하기보다는 한국 차도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하는 기업, 사람을 살리는 기업, 다 같이 사는 기업,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기업, 이런 이미지를 심고 싶습니다.”

   

최 대표는 이렇게 고루 나누자는 생각을 하게 된 근본을 자기 태생에서 찾았다. 원래 가난해서 그런 것 같다고, 부자로 태어났으면 가난을 몰랐을 테고 그러면 나누거나 고르게 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얘기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불어 잘 살자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차문화를 말했다.

몸과 마음에 두루 좋은 차를 누구나 편히 마시게

“한국 차문화 역사가 중국 못잖게 유구하답니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차 마시는 일은 밥 먹는 일과 같은 일상이었습니다. 고려시대는 다방도 있었어요. 누구나 서민들조차 편하게 끓여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이 되면서 차문화가 불교 척결과 함께 척결돼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이런 분들이 근근이 맥을 이어왔습니다. 현대에도 해방 이후 문화·사회적 혼란, 전쟁 이런 것들로 분위기조차 형성되지 못하고 80년대 초반까지는 차문화가 끊겼습니다. 그 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그나마 있던 하동·보성 차밭에서 생산이 됐습니다.

   

그런데 돈 있는 사람이 먼저 하게 되면서 괜히 폼을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차가 귀하고 비싼 것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그에 더해 차를 알리려다 보니 여러 사람 앞에서 보여줘야 했겠지요. 그래서 의식이 생기고 절차가 생기면서 꼭 사람이 무슨 벌을 서는 것 같은 그것을 하나의 문화라고 여기게 돼 버렸어요. 불편한, 비싼, 끼리끼리 문화로요. 하지만 이제 대중화돼 가면서, 간단하게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도 많아지고 찻집도 늘고 하면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싸게 공급하려 하지요. 경제의 기본 원리는 박리다매라고 봅니다. 오래된 보이차를 노차(老茶)라 하는데 아주 비싸거든요, 이를 판매해 보라는 유혹을 많이 받았습니다. 차맛은 다기나 물, 심지어는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그러다가 ‘이거 맛이 좀 이상한데?’ 이렇게 되면, 비록 정품을 팔았어도 구매한 사람 처지에서는 큰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금들이 서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노차는 아예 취급하지 않습니다.

저는 또 비싼 차를 먹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름 의미가 있고 그런 선택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시주 받아서 사는 스님들이 그렇게 먹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거 1000만원짜리야’ 하고 자랑하는 대신, 900만원은 좋은 데 쓰고 나머지 100만원은 일반 차를 많이 사서 나눠 갖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 여기는 것입니다.”

차를 마셔 입이 맑아지면 머리와 마음이 맑아지고 결국은 세상까지 맑아진다고 믿으며 이런 정신문화를 퍼뜨리고 건강에도 좋은 차업을 하니까 더 보람이 있다는 최해철 대표는 이렇게 울산에 가게를 내고 있으면서 가까운 양산 상북면 대석리 고향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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