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배허리노린재는 사철나무 열매를 좋아해

국명 : 사철나무, 노랑배허리노린재
학명 : Euonymus japonica Thunb.
Plinachtus bicoloripes Scott

결혼 전 대전에 살 때는 눈이 그렇게 그립지 않았는데 결혼 후 경남에 살다 보니 눈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워졌다. 그래서 간혹 겨울에 한번이라도 눈이 오는 날이면 무조건 주남저수지로 달린다. 눈이 안 오는 동네인지라 제설작업이 제 때에 되지 않아 도로 상태는 엉망이지만 어렵게 도착하면 아름다운 주남저수지의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얀 눈으로 덮힌 논과 저수지 위로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평생 보아도 질리지 않을 듯하다.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그나마 습지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으며 걸을 때마다 포근함이 느껴진다. 2010년 겨울이었나. 창원에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역시 나는 주남으로 달렸다. 출근하면서 꼼짝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남편의 당부를 뒤로 한 채.

사철나무.

그렇게 하여 도착한 후 눈을 배경으로 재두루미를 담을 거라고 농로를 들어갔다가 차바퀴 한 개가 빠져 고생하기도 했다. 반대로 어느 날은 동판의 아름다운 설경을 담다가 두렁에 빠진 차를 보았다. 함께 간 사람이 두렁에 빠진 차를 들어올리는 작업을 도와주는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철나무 열매.

그때 눈 속에 빨간 열매들이 반짝이며 빛나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철나무 열매이다. 사시사철 푸르다고 해서 사철나무인데 열매는 늦가을부터 익는다. 꽃은 여름에 피지만 잎과 비슷한 연두빛이고 꽃처럼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열매만큼은 “나 여기 있소” 하고 광고를 하는 빨간색이다. 겨울에 익는 나무 열매들은 보통 새들의 일용한 양식이 되는데 이 사철나무 열매는 가끔 다른 손님으로 북적인다.

일반적으로 곤충들의 성충 활동 시기는 봄부터 가을까지이지만 종에 따라 가을부터 이듬해 봄에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다. 먹이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이 사철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노랑배허리노린재도 그 중 하나이다. 늦가을 사철나무 열매가 빨간 속살을 드러낼 때쯤이면 어김없이 노랑배허리노린재도 어디선가 나타난다. 아마도 사철나무 열매를 먹으려니 이 노린재의 생활사도 거기에 맞춰졌을 것이다. 이 노랑배허리노린재는 사철나무 말고도 노박덩굴과 집안인 화살나무나 노박덩굴을 먹는데 이 식물들의 열매는 모두 늦가을에 익는 공통점이 있다. 어쨌든 이 노랑배허리노린재는 짙은 갈색의 정장에 배는 샛노란색으로 매치를 하고 다리엔 롱 부츠를 신어 마치 영국신사 같은 귀족 느낌이 난다.

노랑배허리노린재.
노랑배허리노린재의 흡즙.

해마다 온난화가 진행되어 지구는 자꾸 더워진다니 이젠 남부지방에서 눈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올해에도 딱 한번쯤은 눈 오는 날 창원을 돌아다니는 행운이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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