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를 캐 보기로 한다. 설천농협 앞에서 시금치 경매가 끝난 시간은 오전 9시30분. 경매장 뒤편 마을로 돌아 내려가면 온통 시금치 밭이다.

미리 그렸던 모습은 아침 바다를 배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고랑마다 아낙들이 나와 시금치를 캐는 장면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하얗게 내린 서리가 휑함을 더했다. 동행한 사진기자도 난감해했다. 알아보니, 이른 시간에 시금치를 캐지 않는다고 한다. 시금치 잎의 이슬이 마를 오전 11시 정도가 적당한 시간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해변을 따라 문항리 쪽으로 더 들어가 본다. 역시 남해는 아름답다. 육지의 논밭이 완만하게 바다로 이어지면서 바다와 땅이 구분이 안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10시를 좀 넘겼을까? 시금치를 캐는 사람을 찾았다. 설천면 문항리에 사신다는 아주머니는 아침부터 나와 시금치를 캐고 계셨다고 한다. 이슬이 마르지 않은 시금치는 캐면서 흙이나 이물질이 묻기 때문에 아침 일찍 캐진 않는다고 설명해 주신다. 다만 여기 밭은 치밀하게 관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일찍 나오셨다고 한다. 양해를 얻어 도구를 빌렸다. 

   

시금치 캐는 낫(맨 왼쪽)의 모양이 특이하다. 아주머니 설명으론 여기 농협에서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 한다. 끝이 날카로워 조심해야 한다. 장갑은 필수다. 낫의 끝 부분을 흙속으로 찔러 넣어 시금치의 뿌리를 자르면 된다. 땅 위의 잎이 상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 잎을 정돈하며 낫을 써야 한다. 쉬운 듯 하지만 장시간 하기엔 힘들다. 때문에 방석(가운데)이 필요하다. 

   

작은 부표 모양의 방석은 끈이 달려 양 다리에 끼우면 엉덩이에 부착된다. 약간 민망한 모습이다. 방석을 낀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앞으로 나아가며 시금치를 캔다. 해가 높아지면서 이슬이 더 빛난다. 흙이 녹으면서 흙냄새가 올라온다. 아주머니와의 수다도 재미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본다. 행복한 노동이다. 수확한 시금치는 바로 단으로 묶는다. 바깥의 시들거나 상한 잎을 떼 내고 밀도 있게 단 묶는 틀(오른쪽)에 쌓아 전용 노끈으로 묶는다. 노끈은 300g과 800g 두 종류다. 둘러앉은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끊기지 않는다. 어느새 마당에 든 햇살도 다소곳이 앉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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