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잡채였다. 그때는 특히 귀한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손 갈일 많은 잡채를 그리 자주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됐다. 그래도 가끔 당면·고기·채소를 준비해서 잡채를 한솥 만들어주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접시에 있는 것으로는 부족해 냄비째 가져와 먹고는 했다. 물기 없이 뻑뻑한 잡채였기에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했다.

   

그런데 잡채에 들어있는 것 가운데 한 가지, 시금치는 먹지 않고 옆으로 빼놓았다. 시금치의 그 질겅거리는 느낌이 아주 싫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금치를 많이 먹어야 눈이 안 나빠진다더라.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물론 나는 '또 잔소리…'라며 흘려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난해 남해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밑반찬으로 시금치가 나왔다. 별 생각 없이 한 젓가락 했는데 깜짝 놀랐다. 단맛이 줄줄 흘렀다. 시금치가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시금치에 뭐가 들어갔는지 주인 할머니에게 묻자 "다른 거 들어갈 게 뭐 있노. 남해시금치는 있는 그대로 내놓아도 그리 달아"라고 했다. 그때 이후로 시금치는 나에게 급호감 음식으로 다가왔다. 생활터전인 창원에서 먹는 것은 남해 현지에서 먹는 그 맛까지는 아닐지라도, 이제 그래도 가리지 않을 정도는 됐다.

38살인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혹은 렌즈) 신세를 졌다. 공부 때문에 책을 열심히 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근거가 있든 없든 간에, 지금에서는 "시금치를 먹어야 눈 안 나빠진다"는 어머니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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