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 음악시장은 크게 미국, 유럽, 일본으로 삼분된다. 기타 시장이 있긴 하나 이 세 곳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다. 그래서 음악깨나 하는 사람은 세 곳을 일차 타겟으로 삼는다. ‘돈 되는’ 음악소비자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소 형편이 나아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오는 유명 외국 아티스트는 일본공연이 주목적이었다. 한국은 기획사들이 남는 시간에 끼워 넣는 ‘서비스 만두’였다. 그래서인지 성의없는 연주가 속출하곤 했다. 미국과 유럽 주변 나라들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음악 선진시장은 미국 일본 유럽

세 곳이 음악 선진(?) 시장이 된 이유는 경제력 덕분이다. 60년대 이후 일본이 부상하면서 형성된 이 지도는 아직 크게 변함이 없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에다 원전사고로 휘청거리는 바람에 다소 흔들림이 있지만, 시장 판도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

Miles Davis

재즈 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본, 유럽이 압도적이다. 음반판매량이나 공연횟수가 타지역에 비할 바 아니다. 재즈를 좋아하고 즐기는 ‘여가문화’가 완전히 정착돼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삼자가 판이한 ‘재즈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본류(本流)로, 일본은 아류(亞流)로, 유럽은 독류(獰流)로 보면 된다.

재즈가 미국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뻗어나갔기에 미국이 본류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일본은 재즈 시장이 크고 명인들도 많긴 한데, 전체적인 느낌이 수입국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아류다.

유럽은 재즈를 수입했음에도 거기에 고유한 색깔을 입혀 독자적인 문화로 승화시켰다. 독류라는 조어가 적합하다.

스웨덴 레이블 ECM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적(籍)을 두고 있는 수많은 군소 레코드 레이블은 저마다 독창적인 색채를 자랑한다. 본류인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유럽에 오면 유럽 재즈에 스스럼없이 동화된다. 유럽재즈는 그래서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따뜻하게’ 여겨진다. 재즈가 지닌 본질은 공유하되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를 창출한다.

Dexter Gordon

당신은 재즈 황제잖아요?

유럽 재즈를 들먹일 때면 늘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북유럽에 공연을 갔을 때다. 공항에서 최고급 승용차에 오르는 등 국빈대접을 받았다. 세계적인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본토인 미국에서 늘 ‘검둥이’로 핍박받았던 그라 크게 놀라 물었다. 왜 이렇게 자신을 융숭하게 대접하느냐고! 마중 온 사람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당신은 재즈의 황제잖아요!” 마일스 데이비스가 지우(知遇)에 보답하고자 사력을 다해 연주했다는 건 불문가지.

1986년도에 제작된 재즈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Round Midnight)>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이 직접 주연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노쇠한 재즈 명인과 가난한 프랑스 재즈 애호가가 쌓아가는 우정, 그 둘을 연결하는 건 멋들어진 재즈다.

흑인 뮤지션, 음악으로 포용하다

주인공인 프랑스 남자는 남루하게 살지만 카페 건물 구멍으로 흘러나오는 재즈를 죽도록 사랑한다. 그래서 색소폰 명인인 덱스터 고든은 그에게 우상이다. 그런 그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라도 하면 온몸을 던져 보호한다. 주인공 얼굴에 오버랩되는 건 유럽 재즈가 지닌 진정성이다.

유럽 재즈가 독자성을 띠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미국보다 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즈라는 새 음악을 들고 온 뮤지션들을 ‘음악으로’ 평가하면서 따뜻하게 껴안았다. 덱스터 고든도 그렇게 유럽에 정착한 사람이다. 30~60년대에 유럽으로 넘어간 미국 뮤지션들중에는 명인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류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크게 환영받았다. ‘니그로’에 대한 증오가 이글거리던 미국과는 딴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산 재즈를 좋아한다. 소장하고 있는 레퍼토리는 그리 다양하지 않지만, 전후(戰後) 이탈리아가 풍기던 ‘스산한’ 풍경 때문인지 왠지 동질감을 느낀다. 어릴 때 봤던 영화 <라 스트라다(La Strada>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고단하고 신산했던’ 전후 이탈리아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거기서 흘러나오던 애절한 트럼펫 소리야말로 내 귀를 재즈 기악으로 연결한 첫 매개체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유럽은 제국주의(帝國主義)가 싹튼 곳이자, 맹위를 떨친 지역이다. 잔학했던 선조를 둔 그들이 재즈에 대해서만큼은 왜 이토록 유연한지 아직도 궁금하다. 조상들이 지은 죄를 대속하려는 것인가? 굳이 사회학적(?) 분석을 내놓는다면 아마 이런 것이리라! ‘유럽은 제국주의 후예들이지만 사회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에 수반되는 천민적 속성을 상당부분 극복했다. 이 경향은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국주의 후예들이 어떻게?

어쨌든 유럽이 재즈를 평가하는 분위기는 미국과 확연히 다르다. 창조는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큰 토양에서 가능하다’는 옛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겠다. 단 영국은 예외다. 유럽 대륙 국가들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제대로 된 재즈 스트림이 없다. 제국주의 원조라서 그런가?

유럽 재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월간지 <재즈 피플>에 고맙다는 말을 또 한 번 전해야겠다. 이 잡지는 때때로 유럽재즈를 특집 CD로 만들어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피아니스트 티그랑 하마시안(Tigran Hamasyan)이 트리오로 연주한 역작 <Gypsyology>를 접한 것도,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제대로 된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던 압둘라 이브라힘(Abdullah Ibrahim)을 제대로 만난 것도 다 <재즈 피플>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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