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만큼 원초적인 소리가 또 있을까? 비단 아프리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느 나라건 민속 음악 체계에 ‘열정적인 타악’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리고 이 전통은 근대 이후 생겨난 모든 음악장르에도 어떤 형태로든 스며들어 있다.

재즈에서는 베니 굿맨(Benny Goodman) 빅밴드가 1938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벌인 연주가 재즈 드러밍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첫 계기다. 그 유명한 댄스곡 <Sing Sing Sing>이다. 드러머 진 크루파(Gene Krupa)는 마지막 솔로에서 ‘연박으로 탐탐을 리드미컬하고도 우아하게 두드려’ 환호를 자아냈다.

Gene-Krupa.

전설이 된 Sing Sing Sing

<Sing Sing Sing>은 발표되자마자 곧 전설이 됐다. 그러나 사실 지금 이 곡을 들으며 역사적인 그때를 반추하기란 어렵다. 이 정도 연주는 웬만한 국내 드럼학원에 가도 들을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잣대로 옛 음악을 재단할 순 없다.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버드 포웰(Bud Powell)을 보자. 요즘 젊은이들에게 버드 포웰 음악을 들려주면 대부분 심드렁하다. 뭐 이 정도 연주는 웬만한 아티스트라면 다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 지금은 일급 연주자라면 그 정도는 다 한다. 하지만 그때는 그만이 그렇게 연주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모든 피아니스트가 버드를 보고 베꼈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듣는 ‘평균적인’ 재즈 피아노 연주다.

GRP 레코드사가 90년대 초 소속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빅밴드를 이끌고 일본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재즈 스탠더드를 멋지게 재해석한 공연인데, 평소 GRP계열 연주는 손사래를 치지만 이 공연만큼은 부릅뜬 눈으로 봤다. 여기서도 예의 <Sing Sing Sing>이 등장한다. 드러머는 금세기 최고 테크니션 데이브 웨클(Dave Weckle)이다. 압도적인 ‘업그레이드 버전’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런데 이 공연을 입에 올리는 이는 드물다. 좋은 연주이기는 한데 원곡을 현대감각으로 다듬은 정도에 불과하다. 진 크루파가 펼친 연주가 그만큼 창조적이었다는 말이다.

드럼 레전드 스티브 갯

어릴 때부터 유달리 북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록음악에 담긴 비트가 늘 고만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조금은 독특한 리듬과 조우했다. 팝 아티스트 폴 사이먼(Paul Simon)이 솔로앨범에 수록한 곡 <50 Ways to Leave Your Lover)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드럼 인트로가 묘했다. 규칙적인 정박이 심장을 울리는 록 음악과는 달리 느슨한 듯 풀어진 듯, 그러면서도 섬세한 리듬이 독특했다.

Steve-Gadd.

나중에 확인한바 그가 바로 ‘드럼 레전드’ 스티브 갯(Steve Gadd)이다. 이후 <Aja>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콤비네이션을 구사하는 걸 보고 경악했다. 단순히 리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소리 톤이 다른 드러머들과 완연히 달랐다. 가죽을 더 대기도 했겠지만, 그가 내는 중후한 북소리는 다른 아티스트들을 압도한다.

스티브 갯이 지닌 무게는 버디 리치(Buddy Rich) 추모공연에서 열린 ‘드럼배틀’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스티브 갯은 여기서 전천후 드러머로 꼽히는 비니 콜라이우타(Vinnie Colaiuta), 데이브 웨클과 함께 드럼 기예를 펼친다. 나머지 두 사람이 현란한 테크닉으로 북을 두드리자, 스티브 갯은 드럼 소품 <Crazy Army>로 자기 차례를 시작한다. 스네어 드럼 연타로 계속되는 이 대목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가히 ‘독보적인’ 질감을 지닌다. 수십 년 쌓아온 내공과 테크닉, 그리고 감상자들을 빨아들이는 흡인력까지.

물론 그라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명성이 워낙 높다 보니, 돈 좀 있는 아티스트들이 너나없이 부르는 바람에 ‘금’이 떨어진 건 큰 흠이다. 그래서 그가 이류 아티스트와 협연한 앨범이나 라이브는 아예 제쳐놓았다.

비밥 본류가 풍기는 카리스마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티브 갯에게서 제대로 된 스윙연주를 듣긴 힘들다. 스윙 본류는 따로 있다. 계보를 따져 들어가면 책 한 권이 모자랄 정도지만, 오늘은 대표주자로 맥스 로치(Max Roach)를 꼽아보자. 그가 남긴 비밥연주는 지금 들어도 경이롭다. ‘타임 키핑’ 같은 전문용어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스윙감 넘치는 비밥에 완벽하게 용해되는 플레이만 즐겨도 충분하다. 진화하는 재즈 드러밍을 살펴보면 ‘원초적인 핵심’에 항상 그가 도사리고 있다.

Max-Roach.

90년대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드러머로는 브라이언 블레이드(Brian Blade)를 꼽고 싶다. 케니 가렛(Kenny Garrett)과 트리오로 펼친 비밥 명연에다, 조슈아 레드맨(Joshua Redman)과 핑퐁 게임하듯 나누는 펑키 연주까지. 이 바싹 야윈 흑인 아저씨(?)는 늘 믿기 힘든 에너지를 뿜어낸다.

수많은 북쟁이들이 남긴 두드림은 각기 개성과 테크닉으로 가득하다. 어떨 땐 “아니? 이런 무림고수가 있었다니”하고 혀를 내두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평판에만 의지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그래도 그같은 두드림을 일목요연하게 소화 흡수할 방법은 없을까?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는 욕심이다. 결론은 ‘왕도는 없다’다. 그들이 남긴 음악을 최대한 많이 듣는 것 외에는. 그들은 예외 없이 청자(聽者)를 사로잡는 비방(秘方)을 갖고 있다. 그 비방을 알아채는 방법은 즐겨 들어 ‘두드림을 떨림으로 연결하는 것’, 바로 악리(樂理)를 깨닫는 것뿐이다.

개척자들 1, 2위를 차지하다

다만 욕심 많은 이들을 위한 가이드는 있다. 잡지 모던드러머(Modern Drummer)가 선정한 ‘금세기 최고 드러머’ 평가다. 순위가 매겨져 있긴 하지만, 그건 실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창조력과 영향력 크기를 측정한 것이다.

1위는 버디 리치, 2위는 진 크루파다. 1, 2위는 재즈 드러밍 개척자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재즈 드러밍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 2위는 선구자들에게 바쳐진 헌사(獻辭)가 되겠다. 이어 스티브 갯이 3위, 토니 윌리엄스(Tony Williams)가 4위를 차지했다. 비니 콜라이우타는 6위, 맥스 로치는 8위, 빌리 코브햄(Billy Cobham)은 12위,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는 20위, 데이브 웨클은 23위다. 록 드러머로는 25위 내에 존 본햄(John Bonham), 링고 스타(Ringo Starr), 닐 파트(Neal Peart)가 있다. 이 잡지는 왜 그들이 그런 순위를 부여받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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