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홍합 '양식 도입', 가공산업 도전·연구용역 설명회 앞둬

아버지의 아버지는 돛 달고 노 저으며 고기를 잡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무동력선을 이어받아 바다로 나갔다. 그는 잡는 것이 아닌 기르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 그의 아들들은 잡고 기르는 방법으로 바다와 함께 살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에서 4대째 어업을 가업으로 이어가며 스스로 '뱃놈'임을 자부하는 정연철(70) 씨를 만나러 마산수협 원전위판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이소, 여기가 심리 괭이바다입니다. 경치 좋고 물 좋고 홍합 양식에는 끝내주는 곳이죠."

원전위판장 앞에서 만난 그의 첫 마디다. 귀 덮는 모자에 구명조끼와 긴 장화를 신고 악수를 청하는 그는 한눈에 보아도 경륜이 묻어나는 어부였다.

'홍합양식 1세대, 조합장 출신, 심리, 산증인'이라고 적힌 사전조사 메모장을 펼치며 '정씨홍합기'를 듣기 시작했다.

"제대하고 3년 만에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심리를 나가라고 하시데요. 고기 잡는 일은 포기하고 도회지 가서 장사를 하라고 시내 가게에 취직시켜주셨는데 딱 1년 만에 다시 들어왔지요. 그러고 보니 고향 심리 밖에서 살아본 건 70평생에 4년이네!"

군대 가기 전인 60년대 초, 정 씨는 굴 양식장 관리를 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동네에서는 홍합을 바닷가에 살포하여 채취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도회지에서 돌아온 청년 정 씨의 머릿속에는 굴 양식과 홍합 살포가 떠올랐다.

"굴 양식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홍합도 바다에 뿌리지 말고 양식을 해야겠다 결심을 했죠. 그 당시에는 전화선을 이용해서 홍합 종패를 붙였지요. 채취에서 양식으로 전환한 거지요."

창원 마산합포구 심리에서 4대째 어업을 이어가고 있는 정연철 씨.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정씨홍합기'는 그렇게 시작한 것이었다. 심리 내만은 홍합양식에 천혜 요건을 지니고 있어 뿌려서 채취하는 것보다 몇 배의 수확량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주변에서 양담배를 사 가지고 와서 홍합양식을 해 달라고 했지. 저의 아버님 세대와 같이 일을 했으니 내가 홍합양식 1세대지."

심리 내만 바다에서 홍합양식을 처음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그의 목소리에 힘을 더해준다. 청년 정 씨의 홍합양식 역사는 계속됐다.

"자신감이 생겼어. 그 당시에는 난포·심리 내만에서만 양식을 하던 것을 연안 외만으로 옮겼지. 양식줄도 배 이상 실한 것으로 써야 하고 바다 물살이 세서 위험 부담도 있었지. 그때 아버지께서는 사업 망하려고 한다고 하셨지. 딱 3개월 지나니까 정말 실한 홍합이 올라오데요. 그때 돈 좀 벌었지."

탄탄대로만 달릴 줄 알았던 그의 인생에도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했다. 홍합양식으로 기반을 마련한 그는 아버지가 소망하던 어류양식에 도전했다. 일본에서 눈으로만 보고 온 어류양식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거리였다.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에겐 단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연이었다. 두 번의 태풍은 장년 정 씨의 삶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전 좀 특이해요. 실패를 할수록 더 적극적입니다. 뱃놈 기질이겠죠. 늘 자연 앞에는 작아지지만 스스로는 작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홍합양식으로 돌아왔죠."

심리 앞에 펼쳐진 괭이바다는 그에게 풍요를 선사했다. 그런 그는 자신과 같은 어민 이익을 대변하고자 마산수협 조합장이란 감투를 마다치 않았다. 감투를 벗은 후 나머지 인생을 홍합과 함께 하기로 했다. 정연철 씨는 나이 70세에 창원홍합양식어업공동체 대표를 맡은 것이다.

"홍합 때문에 오늘날 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또 홍합은 괭이바다 덕에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이 모두는 자연이 준 덕분이죠. 그래서 돈벌이를 위한 어업이 아니라 바다와 같이 살아가려고 어민단체를 만들었죠. 이런 것을 자율어업관리라 하죠. 젊은 친구들이 바다 일을 하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때와는 달라요 허허."

정 대표는 노익장을 과시하듯 웃음을 던지며 홍합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제 나이 70에 바다 나가서 얼마나 잡겠습니까.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준비 중입니다. 마산 홍합의 미래를 바꾸는 거죠."

홍합양식의 산증인 정연철 씨는 마산 홍합의 부가적인 공동체 사업을 준비 중이다. 양식, 채취, 판매라는 일차원적인 홍합산업구조에 가공이라는 방식을 추가하려고 한다.

"가공만 해서는 안 되지요. 1년 전에 경남대에 홍합연구용역을 맡겼어요. 홍합에 기능, 효과, 보관 방법 등 가공을 위해서 필수적인 거죠. 연구용역 설명회가 25일 마산합포구청에서 열립니다. 시간 나면 오세요. 마산 홍합의 진가를 알게 될 겁니다."

정 대표의 자부심은 절정에 달했다.

"기자 양반 당신이 전국 포장마차 어디를 가더라도 홍합국물이 나오면 그것은 마산 홍합이라고 확신해도 좋소. 생물로 유통되는 마산홍합이 거의 70% 이상이고 홍합 싱싱하기에는 100%지."

인터뷰하는 사무실로 한 분이 들어와 멸치작업선이 정박해야 한다며 정 대표 배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한다. 아직 마산 홍합의 진가를 더 들어야 하는데 아쉽다. 그를 따라 포구로 나갔다. 정 대표는 정박용 밧줄을 풀고 배에 시동을 건다. 그리고 괭이바다로 선수를 돌린다. 뒤돌아보는 정연철 씨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퍼런 바다로 멀어져 가는 정 씨의 배를 보며 영화 <노인과 바다>의 대사가 떠올랐다. /박민국 기자 domintv@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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