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내려온 노하우 보다 재첩 그 자체가 '요리'

'재칫국 사이소~' 낙동강서 채취한 재첩이 팔리던 풍경이다. 재첩이 풍부했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낙동강 하구의 엄궁과 하단 사람들의 옛날이야기가 된 재첩은 그래서 더 귀해졌다. 재첩이 귀한 이유는 또 있다. 이 작은 것을 퍼 올리고, 선별하고, 살을 발라내는 과정이 지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푹 끓여 낸 맑고 뽀얀 국물을 뚝배기째 마시면 섬진강 전체를 마시는 것이다.

재첩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하동재첩특화마을이다. 흔한 관광지 휴게소와 같아 믿음이 가는 풍경은 아니다. 허름한 간판을 지붕에 이고, 엄지를 푹 담가 국을 내오는 '할매집'을 상상했던 것은 그간의 경험 때문이다. 현대화한 대형 식당에서 자주 느낀 배신감은 말해서 무엇하랴. 또한 '산'과 '물'과 '길'이 깊은 하동에서라면 그 깊이를 더해줄 숨은 명인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품고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적잖이 당황했다.

국도변 넓은 주차장, 잘 닦은 유리문에 붙은 홍보문구는 거슬렸다. 넓고 깨끗한 주방을 30대 중반의 주인아주머니 혼자 책임졌다. 무엇 하나 기대를 품게 한 것은 없었다. '맛집'을 다시 탐색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던 중에 음식이 나왔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재첩무침, 재첩국, 재첩전.

흔한 상차림이다. 재료에 대한 불신은 없었다. 특화마을 뒤편 섬진강에선 오전 내내 재첩을 채취하고 있었고, 가게 앞에선 그 재첩을 씻고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지 재첩을 섞고, 감추고, 파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이곳 조건만은 훌륭하다.

◇감칠맛 강한 재첩국

재첩국을 먼저 마신다. 이 국물은 들고 마셔야 제 맛이다. 숟가락으로 먹기엔 뭔가 아쉬운 음식이 재첩국이다. 여기 재첩국은 끓인 국물을 뚝배기에 담아 내온다. 뚝배기 째 끓여 상에 올리는 집도 있다. 각자의 방식이다. 다만 재첩국은 식으면 비린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뜨끈하게 먹는 편이 낫다. 어린 부추를 잘게 썰어 올리고, 간은 소금으로만 했다. 어린 부추를 쓰는 이유는 텃밭에서 키워 쓰기 때문이란다. 찬 성분으로 분류하는 재첩의 음기를 부추가 보충해주는 것이다. 감칠맛이 훌륭해서 자꾸 마시게 된다. 어떤 천연 조미료보다 훌륭하다. 비린향이 있다고는 하나, 바다에서 난 조개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맑은 감칠맛. 흔히 '개미'가 있다고 하는 그런 맛이다. 자주 먹는 조개국물보다 감칠맛이 센 이유는 살이 약하고 작은 재첩을 많이 넣어 끓이기 때문이다. 다섯 말을 끓이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이후 살을 발라내고 상에 오르기 전에 또 15분 정도 끓인다.

재첩국./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담백한 양념장 버무린 재첩무침

따뜻한 국물로 속을 달래고, 무침을 먹는다. 살짝 구운 파래김에 싸서 먹는 것이 여기 방식이다. 바삭한 김에 각종 과일과 야채를 버무린 무침을 싸서 먹는다. 보통 무침의 경우 재료에서 난 수분으로 양념이 흘러내리거나 재료가 물컹해지는 일이 잦다. 하지만 물기를 쏙 뺀 재첩살이 사과, 배, 당근, 오이, 양배추, 상추의 수분을 잡아주고, 김이 한 번 더 잡아준다. 야채는 잘게 썬 것이 특징이다. 특이한 점은 강하지 않은 양념이다. 함께 섬진강을 끼고 사는 망덕포구에서 봤던 재첩무침은 재료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붉은 양념이 많았다. 그와 달리 평범한 초고추장으로 약간의 간을 보탠 무침은 담백하고, 달고, 시원하면서 고소했다. 시원한 맛의 비결은 배즙이다. 재첩 알이 작아 숟가락으로 먹어야 할 정도였지만, 이 또한 좋은 재료라는 방증이다. 아쉬운 점은 양념에 밥을 비벼 먹을 수 없었던 점이다. 담백한 양념의 장점에 가린 작은 단점이다.

재첩무침은 살짝 구운 파래김에 싸서 먹는다./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재첩무침./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얇고 바삭하게 구운 재첩전

피자 모양으로 잘라 나온 재첩전은 겉이 바삭하게 잘 구워졌다. 얼핏 보기엔 흔한 고추전처럼 보이는데, 기실 고추전에 재첩을 넣은 것과 다름없다. 부추와 고추, 재첩으로 반죽해 얇게 구웠다. 재료들이 겉으로 돌출하지 않게 꾹꾹 눌러 구워 맛이 밀도 있고, 먹기에도 편하다. 적당히 매운데, 재첩국과 함께 먹으니 서로 돋우는 맛이 있다. 이 재첩전 역시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요리를 한 사람의 고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담백한 맛을 고집한다는 것은 재료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함께 주문한 참게장은 자칫 심심할 뻔했던 밥상에 간을 더했다. 이 또한 여덟 번 간장을 끓여 직접 담근 것이다.

재첩전./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어느새 가게 입구에서 느꼈던 불신은 사라졌다. 맛의 비결을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심심하다. "그냥 텃밭에서 기른 부추나 상추를 쓰고, 집에서 먹는 초장으로 양념했죠."

세월의 깊이가 낳은 '할매'의 손맛을 기대하고 하동엘 왔다. 하지만 재첩의 맛은 흘러온 세월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흐르는 섬진강에 있었다. 재첩 자체가 재첩요리였던 것이다.

여기서 끓인 포장재첩국을 살 수도 있다. 2kg 무게 한 통이 1만8000원이다. 택배로도 가능한데, 지인께 보냈더니 만족해했다. 포장재첩국은 데워서 부추를 넣어 먹으면 된다. 취향에 따라 매운고추나 애호박도 어울린다. 매일 더 쌀쌀해지는 요즘, 아침식사로 그만이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