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행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여러 곳을 훑으며 스쳐 지나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한곳에 오래 머물러 보는 거다.

오랜 걷기로 지친 나는 스페인에서 포르투갈 국경을 넘자마자 바로 기차를 탔다. 포르투갈의 상업수도라 불리는 항구도시 포르투에서 하루, 성모의 기적으로 유명한 가톨릭 성지 파티마에서 하루를 머물고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다.

몇 해 전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희망봉에 간 적이 있다.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유럽인으로는 처음 발을 붙였고, 1497년 바스쿠 다가마가가 이끄는 포르투갈 선단이 다시 희망봉을 지나 인도를 찾아 나섰다. 우연히도 나는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와 바스쿠 다가마가가 처음 출발했던 그 도시에 오게 된 것이다.

/이서후

한국인과 가능하면 어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깨고 한인민박을 숙소로 정했다. 그저 아무라도 좋으니 한국어로 수다를 떨고 싶어서였다.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사람 중 이곳 이베리아 반도의 끝, 리스본까지 오는 이는 드물다. 나는 그곳에서 거의 한 달을 지냈다.

대항해 시대의 영광과 번영이 여전히 곳곳에서 묻어나는 거리는 풍경으로 풍성했다. 하지만 오랜 걷기 여행은 나를 풍경에 시큰둥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침이면 숙소를 나서 종일 거리를 아무렇게나 어슬렁거렸다. 하도 어슬렁거렸더니 나름의 탐방 루트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이서후 루트’라고 불렀다. 이를 따르면 반나절 만에 관광지 입장료 없이도 리스본 중심가의 핵심을 거의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한국 여행객들의 안내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서후

오래 머물면 일상이 생긴다. 아침이면 나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 뒤, 구멍가게에서 물을 한 병 사고, 키 작고 상냥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샀다. 그리고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때로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기도 했고, 익숙하게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이나 쇼핑몰을 가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리스본에 ‘살고’ 있었다.
 

/이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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