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설 일 있으면 마다치 않는 한의사

“아이고, 저는 그리 들려드릴 얘기가 없는데…. 좀 양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허허허.”
창원시 의창구 ‘창덕한의원’ 조길환(51) 원장은 인터뷰를 몇 차례 사양했다. 하지만 한의학계를 위해 궂은일도 기꺼이 감내한다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었다. 몇 차례 전화통화 끝에 마침내 “그럽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며칠 후 한의원을 찾았다. 진료를 끝낸 조 원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다. 조 원장은 “오늘 저녁 일정은 모두 빼놓았습니다”라고 했다. 인터뷰 예상 시간은 2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오후 7시 시작된 인터뷰는 오후 10시 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조 원장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세세히 작성해 두었다. 안 하면 모를까, 뭐든지 한번 하면 제대로 하는 성격임을 엿볼 수 있었다.

조길환 원장은 개인 한의원에만 얽매여 있지 않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친목 도모, 학술교류, 봉사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창원시한의사회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2000년 창원시한의사회 재무이사를 시작으로 총무이사·감사·부회장에 이어 2012년에는 통합창원시한의사회 초대 회장까지 맡았다. 지금은 통합창원시한의사회 총회 의장을 맡고 있다. 스스로 일 복이 많은 편이라 생각한다.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피하지 않고 충실히 하려는 성격 탓, 혹은 덕이다.

/사진 남석형 기자

어릴 때부터 양약보다는 한약에 친숙

조길환 원장은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봉래초-진주대아중-진주대아고를 나왔다. 조 원장 현재 얼굴에서 학창시절 모습을 떠올려보자면, 대부분 ‘범생이’를 그릴 법하다. 조 원장도 부인하지 않는다.

“뭐, 말썽부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학생이었지요. 대개 그 시절 아버지들이 다 그랬지만, 특히 교육공무원인 제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엄한 편이셨죠. 그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 원장은 어릴 때부터 한약을 자주 접했다. 집안 어른이 그 계통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가족 가운데 감기든 이가 있으면 병원에 발걸음 하기보다는 한약에 의지하는 쪽이었다. 한의사 길을 걷게 된 자연스러운 계기라 할 수 있다.“보약으로 한약을 자주 먹었어요. 그런 식으로 한약이 늘 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의학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졌죠. 대학 입시 때 원서를 두 군데 넣었습니다. 아무래도 아버님 직업 영향으로 사범대를 우선 지망했고, 다음으로 한의대에도 원서를 넣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원광대학교 한의대를 선택했습니다.”

조 원장은 매사 긍정적이고 차분한 성격이다. 세상은 순리·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의학은 전체를 보는, 그리고 자연 친화적인 학문이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배려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조 원장과 아주 잘 맞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학 내내 한의학에 푹 빠져 지냈다. 그렇다고 마냥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한의사 길을 가기 위해서는 기존 틀과 싸울 일도 많았다.

/사진 남석형 기자

“한의학과에 들어가면 모두 투사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의학계는 각종 법적·제도적 규제에 발목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늘 난관이 많습니다. 자격 없는 이들의 유사 의료행위가 있기도 하고요. 이런 것 때문에 데모할 일이 많았지요. 뜬금없는 말 같기도 하지만, 가끔 치과의사가 부럽기도 했어요. 치과의사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제약 없이 고유한 영역이 보장돼 있었거든요. 저로서는 참 부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 원장은 쉰 살 넘은 지금도 법적·제도적인 부분에서 한의사들이 뭉칠 일이 있으면 앞에 서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진료상담 길어 간호사 눈총받는 원장

1988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경북 영천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있으며 경험을 쌓았다. 이후 군 제대 후 한의원 개원을 준비했다. 애초 서울 쪽에 자리 잡으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가까이 있길 원했다.

조 원장은 고향 진주에서 개원하는 것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결국 낙점한 곳이 마산 합성동 쪽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 창원 봉곡동 쪽에 ‘창덕한의원’을 개원했다.

/사진 남석형 기자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시작했죠. 그때는 인테리어 같은 개념도 없었기에 목수들과 같이 못질하면서 한의원을 만들었죠. 진료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창덕’이라는 이름은 ‘창성하고 덕치를 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20년 넘게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덕한의원은 추나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조 원장은 추나요법이 한의학 중에서도 질병예방·근본치료에 매우 들어맞는다고 믿는다.

“사람마다 다리 길이가 차이 나기도 하고, 또 한쪽 어깨가 처져 있기도 해요. 뒤뚱거리며 걷는 이들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분들은 시간이 지나면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목·허리 디스크가 대표적입니다. 생활 속 나쁜 자세를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다리 길이 차이, 골반 틀림, 휘어짐 같은 체형으로 변하는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통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때는 심각한 경우가 많다. 조 원장은 이러한 이들을 위해 손을 내민다.

“디스크 환자 가운데는 수술받지 않고 보존치료만으로 회복할 수 있기도 합니다. 이를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더 이상 몸에 칼 대는 건 못하겠다며 찾아온 아주머니가 있었죠. 일정 기간 추나요법을 받으면서 정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가능한 수술하지 않고 병이 치유된다면 그보다 더 이상적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추나요법은 한의사 육체노동이 많이 들어가기에 매우 힘들죠. 그만큼 보람이 크기도 합니다.”

조 원장은 환자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한다. 그것만으로도 질환에 대한 환자들 고통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환자 한 명 상담하는데 1시간을 넘기기도 합니다. 어휴, 그러면 우리 간호사들이 ‘대기 환자들 밀렸다’면서 눈치를 많이 주죠. 개업 때부터 20년 넘게 함께한 간호사는 시어머니나 마찬가지예요. 하하하”

바쁜 대외 활동…“가족에게 늘 미안하죠”

조 원장은 한의원·한의사회 일 아니더라도 여러 곳에 손길을 내민다. 남해항도마을에서 정기적인 의료봉사를 하고 있고, 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진행하는 학교주치의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3산청전통의약엑스포’ 일도 돕고 있다. 이 대목에서 조 원장 목소리는 다시 진지해졌다.

“한의학은 아주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잘 가꾸고 다듬는 것이 중요하지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우리 경남 산청에서 엑스포가 열립니다. 앞으로 산청이 한의학 메카가 될 것입니다. 엑스포 때 산청을 찾으면 한의학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바깥일 때문에 때로는 한의원 진료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도 감내한다. 물론 환자들에게는 양해를 구할 일이다.

/사진 남석형 기자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조 원장은 7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 사이에서 2녀 1남을 두고 있다.

“한의원 개원할 때 신혼이었죠. 아내가 고생 많이 했어요. 그때는 일요일에도 격주만 쉬고 일했는데, 아내가 한의원에 나와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요. 막내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저는 만학도로 공부하랴, 출장 가랴…. 옆에 있어줄 틈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 함께해 주지 못한 막내 아이한테도 미안하죠. 이제 중학교 1학년인데, 뒤늦게 만회 좀 해 보려고 지금은 제가 수학 선생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큰딸은 카이스트에 들어갔다가, 지금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작은딸은 한의학과는 거리 먼 대학생이다. 조 원장은 늘 자식들 선택을 존중해 주려 한다.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자식들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간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죠”라며 여운을 남긴다. 막내아들은 아직 꿈이 왔다갔다해서 아직은 모를 일이라고 한다.

어릴 적 무뚝뚝한 아버지 아래서 자란 조 원장이지만, 스스로는 자녀들에게 부드러운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한다.

“아이들과 스킨십을 많이 하려고 하죠. 스무 살 넘은 딸들이 요즘도 아버지가 품에 스스럼없이 척척 안깁니다. 사랑의 표현이 터치라고 생각하기에 되도록 많이 하려고 노력하죠.”

조 원장은 누가 보더라도 동안이라 할 만하다. 그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아이 둘 있을 때까지만 해도 주변으로부터 중매 서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동안,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도시락에 있다고 한다.“제 건강 비결은 ‘아내표 도시락’입니다. 콩주스, 토마토 주스, 닭가슴살 샐러드 같은 것을 매일 싸 주지요. 이렇게 정성스럽고 사랑이 담긴 도시락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할 따름이지요. 물론 한약도 꾸준히 먹습니다. 우리 간호사들이 ‘원장님 약 먹어요’라면서 챙겨주고는 하죠.”

수영·등산도 자주 하고, 최근에는 12년 만에 골프도 다시 시작했다. 술은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라, 잦은 모임에서는 억지로 버티는 쪽이다. 요즘은 새로 이사한 집 옥상에 고추, 상추, 가지 같은 채소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좀 더 나이 들어서는 특용작물 농사를 지어 볼 마음을 두고 있다.

그래도 조 원장은 끝까지 한의학에 대한 열정은 숨기지 못했다.“희생하고 봉사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 또한 기쁨이죠. 앞으로도 좀 더 많은 사람이 한의학을 사랑하고, 또 한의학을 통해 건강해질 수 있도록 계속 그 역할을 다 할 겁니다.”

/사진 남석형 기자

조길환 원장 주요 이력
-1988년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2000년 2월~2002년 1월: 창원시한의사회 재무이사 역임
-2002년 2월: 제1기 추나학 연구과정 수료
-2003년 10월: 내과 인증의 취득, 정형제통과 인증의 취득
-2004년 1월~현재: 추나학회 부산경남지부 부회장
-2004년 2월~2006년 1월: 창원시한의사회 부회장 역임
-2008년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2010년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2011년 2월~2012년 1월: 창원시한의사회 회장 역임
-2012년 2월~2013년 1월: 통합창원시한의사회 초대 회장 역임
-2012년 9월~현재: 2013산청전통의약엑스포 자문위원
-2012년 9월~현재: 창원지방검찰청 의료자문위원
-2013년 4월~현재: 경상남도한의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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