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기분좋게 먹는 것이 삶의 위안

“이탈리아 음식이 한국에서야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지 이탈리아에서는 이른바 ‘집밥’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스타를 포크로 찍어 숟가락을 대고 돌돌 말아먹죠. 이탈리아에서는 우리네 국수 먹듯 그냥 후루룩 들이켜는 것이 상식입니다. 국내 이탈리아 식문화는 너무 경직돼 있어요.”
진주시 신안동 배영초등학교 옆에서 이탈리아 음식점 ‘비란치아’를 운영하는 박영석(34) 사장. 비란치아의 오너 셰프(식당 주인 겸 주방장)인 그는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5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가정식처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

비란치아는 작은 공간이지만 여느 이름난 이탈리아 레스토랑들보다 뛰어난 맛으로 손님들을 사로잡고 있다. 비란치아를 운영하기 전 박영석 사장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 ‘그란구스또’ 주방을 책임진 경력이 있다. 그란구스또는 서울을 대표하는 정통 이탈리아 음식점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 그곳에서 정통으로 요리를 배워 온 사람들이 주로 주방을 책임지던 이곳에서 박영석 사장은 순수 국내파로 메인 셰프로 주방을 약 2년 동안 지휘했다.

박영석 요리사./김구연 기자

열혈 청년, 요리사 된 사연

박영석 사장은 본래 진주 출신이다. 경남대 사회과학부에 다니던 그는 대학생 시절 때만 해도 열렬한(?) 운동권 학생이었다. 학과 성격도 성격이지만 개인적인 마음가짐도 학업보다는 대한민국 정치 현실과 사회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더욱 깊은 고민을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매사 열정적으로 사회 참여를 해온 그는 그러나 3학년 때 학업을 중도 포기한다.

“가족 문제라 말씀을 자세히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했어요. 집안에 벌이가 아주 없어 거의 파탄 지경까지 갔죠. 이런 상황에서 학업을 계속한다는 것은 저로선 사치였죠. 수준에 맞게 살자. 먼저 가정을 살리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는 미래 구상을 위해 자전거 전국 일주를 떠난다.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돈을 빨리 모으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사 말고는 답이 안 나왔다.

그런데 무슨 장사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전국 일주 도중 그는 예전에 자신의 꿈이 뭐였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대학 시절 줄곧 생각해 온 NGO활동은 돈이 안 됐다. 중학생 시절 꿈이던 국어 교사, 고등학교 시절 꿈이던 사회 교사도 스쳐갔지만 이는 이미 대학 중퇴와 함께 이룰 수 없는 꿈이 돼버렸다. 그러다가 유년시절 추억에 다다른 그는 문득 ‘요리사’에 생각이 미쳤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처음으로 가진 꿈이었어요. 당장 손에 잡히는 무언가는 없지만 ‘이거다’하는 느낌은 왔어요.”

이렇게 14일 간 전국 일주의 결실로 인생항로를 요리로 정했다. 집안의 반대가 뒤따랐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자식이 이제껏 살아오며 일면식이 없던 요리사의 길을 무작정 간다는데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부모님도 누나 형제도 그의 완고한 뜻을 막지 못했다.

“집에 돈도 없고, 대학에서 제대로 된 학문을 연구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형편도 어려운데 비싼 대학에서 공부도 안 하고 졸업장만 덜렁 받아 나온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자체 판단했죠.”

열정과 학구열로 요리에 매진하다

박영석 사장은 여행에서 돌아온 그 길로 진주 일신요리학교 문을 두드렸다. 이곳에서 한식과 일식 자격증을 딴 그는 진주의 한 일식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요리사의 길을 걸었다.순탄치만은 않았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한 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음식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일쑤였다.

박영석 요리사./김구연 기자

한번은 복요리를 배우려고 서울 지하철 삼성역 근처 꽤 유명한 복요리 집에서도 일했지만 미원, 혼다시, 다시다 같은 화학조미료를 과도하게 넣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자진해서 나왔다.

박 사장은 이후 일식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었다. 전문요리사로 5년을 살아왔지만 한 직장에서 가장 오래 일해 본 것은 신림동의 한 한정식 집에서 생선구이 담당을 맡아 1년 6개월 동안 근무한 것이 전부였다.

요리사로서 방황의 세월을 겪던 박영석 사장은 지난 2007년 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편찮아지는 등 여로 사정으로 다시 진주로 돌아온다.

하루 종일 병수발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무료한 시간이 마구 지나갔다. 동생이 일을 하지 못해 매사에 힘이 없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박 사장 누나는 어머니 병세에 차도가 보이자 당시 레이크사이드 호텔에 일하던 친구를 통해 호텔 내 양식당에 취직자리를 알아보게 된다.

다행히 만 5년에 가까운 요리 경력은 인정받아 취직을 하게 된다.

박 사장은 이때 양식에 눈을 뜨게 됐다. 양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음식별로 체계도 잘 갖춰져 있어 일이 너무도 쉽고 재미가 있었다.

박영석 요리사./김구연 기자

특히 이탈리아 음식은 원재료를 최대한 손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요리 철학에 맞았다.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요리 공부에 거침이 없었다. 평일 호텔 주방에서 일을 하고 나면 주말에는 서울 유명 이탈리아 요리학원에서 기본부터 착실히 실력을 쌓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가서 수업을 듣고는 그날 마지막 남은 심야버스를 타고 진주로 돌아올 정도로 신나게 공부했다. 이탈리아 음식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흠뻑 빠진 박 사장에게 어느 날 진주를 넘어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 해봐야겠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한다면 해야 하는 성미에 그날로 바로 서울 시내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 리스트를 모두 뽑았다.

다음엔 일일이 전화로 채용을 문의했다. 이때 마침 그란구스또 대표가 연락을 해 왔다. 장장 2시간에 걸친 면접 끝에 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잡았다. 다음날부터 3일간 이뤄진 실전 테스트가 끝난 후 그의 실력과 성실함에 만족한 그란구스또 대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초년병인 그에게 ‘주임’ 직함을 줬다.

당시 주임은 박 사장보다 2살 어린 이탈리아 유학파였다.일은 정말 고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란구스또는 서울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레스토랑 중에서도 가장 일이 고되기로 악명 높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란구스또 사정을 잘 아는 서울의 친구 요리사도 살인적인 업무량을 우려하며 취업을 극구 말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한번 견뎌보자!”는 오기가 난 터였다.박 사장은 주변의 우려를 특유의 학구열로 극복했다. 일은 정말 힘이 들었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었다. 진주에서처럼 휴일이면 늘 학원에 가서 파스타 공부를 했다. 자취방에서는 이탈리아 요리 관련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란구스또 대표는 이런 박 사장의 노력을 눈여겨봤다. 대표는 얼마 되지 않아 그를 과장으로 앉히고는 음식점 가까운 데 원룸도 마련해줬다.

매일 새벽이면 좋은 재료를 구하러 가락동 농산물 시장을 함께 다녔다. 박 사장은 이때 좋은 물건 고르는 법과 상인들 대하는 법을 익혔다.

박영석 요리사./김구연 기자

이탈리아 24개 지역 맛기행을 하다

그란구스또에 취직한 지 1년 되던 해 대표는 박영석 사장에게 한 달간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그 지역의 특징적인 음식을 모두 먹고 돌아오라는 특명도 내렸다.

박 사장은 반년 간 준비 끝에 지난 2010년 이탈리아로 갔다. 로마를 시작으로 나폴리, 시칠리아, 볼로냐, 파르마, 모데나, 베로나, 베니스, 밀라노 등 한 달 동안 모두 24개 도시를 돌며 각 지역 음식을 맛봤다.

“한 지역에서 점심을 먹으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는 일정으로 다녔어요. 시칠리아에 3일 있었던 거 말고는 거의 다 하루 또는 반나절만 머무르며 음식을 맛보고 바로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죠. 이런 일정을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전부 혀를 내둘렀어요.”

덕분에 책으로만 보던 이탈리아에 음식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다.

“이탈리아는 정말 지역별로 기후, 지형 등이 천차만별인데다 환경에 따른 음식 종류와 맛을 내는 비결도 정말 다양했어요. 이 여행이 몇 년 유학을 갖다 온 것과 맞먹는 엄청난 공부가 됐죠.”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차장 승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대리까지 승진했다. 불과 2년 남짓한 기간에 주방 최고 관리자가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바로 유학이었다. 마음을 먹고 지난해 12월 대표에게 업장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한데 일을 그만둔 후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벌써 서른 중반이 다 된 나이였습니다. 유학을 간다 해도 다시 돌아왔을 때 유학 간 사이 당장 벌이가 없을테니 다시 누군가 밑에 들어가 요리를 해야 된다는 것 또한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박영석 요리사./김구연 기자

이내 대표에게 나만의 가게를 열겠다는 통보를 했다. 고향에서 작으나마 내 장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 것이다.

먹는 것이 행복한 솔(Soul)푸드 만들 것

비란치아는 이렇게 탄생했다. 비란치아가 여느 이탈리아 레스토랑보다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것은 신선한 재료에 있다.

박영석 사장은 매일 아침이면 진주 중앙시장에 나가 양질의 재료만 골라 들여온다.

“제철에 나는 정직한 재료로 누구나 한 번 먹으면 감동을 할 수 있는 접시를 내겠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냉동 해산물과 MSG는 절대 쓰지 않는다. 어머니가 진주 중앙시장에서 수산물 유통업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좋은 물건을 선별해 준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렇게 시장에 나오는 재료의 양과 신선도를 모두 따지다 보니 매일 재료 수급 현황이 다르다.

이 때문에 메뉴 또한 매일 바뀐다. 매일 들이는 신선한 재료만 쓰니 손님들은 믿고 찾을 수 있다. 어느 음식이든 신선한 기운이 입맛을 돋운다.

음식을 만들 때도 원재료 맛을 훼손하지 않는 최소한의 조리법을 지향한다. 한우 암소 안심으로만 만드는 스테이크는 약간의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한다.

스테이크는 안심 자체에 배인 육즙만으로 고기가 가진 풍부한 맛을 즐겨야 한다는 소신이 깔렸다. 원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면 쉬이 비리기 마련인 고등어 오일 파스타도 손쉽게 만든다.

이 밖에도 글라블락스(염장 연어 샐러드), 토마토 해물 파스타, 마르게리따 피자, 디저트인 리꼬따 치즈 타르트 등도 모두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직접 만들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한마디로 ‘오너 셰프’ 음식점의 장점은 모두 가졌다.

“요리는 종합예술입니다. 재료, 칼질, 구이 온도 등에는 물리학, 화학 등 종합과학도 숨어 있죠. 근데 인간미는 좀 없어요. 저는 제 음식이 사람마다 하나씩은 가진 ‘솔푸드(위안음식)’처럼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기를 바라요. 그러려면 좋은 재료로 배부르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 만드는 게 제 사명이라 생각해요. 이러면 감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겠어요.”
 

박영석 요리사./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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