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후 인생2막 준비 위해 귀향하다

소년의 아버지는 다섯 남매의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소년은 배고픔보다 배움이 더 고팠다. 소년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꿈도 버리지 않았다. 힘들수록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45년이 지나 소년은 구청장(3급·부이사관)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다.

김현만(59)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 그는 7월 12일 퇴임식을 마지막으로 34년 공직을 마무리했다. 공직 생활 중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묻자 그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지 인제 와서 아쉬웠던 부분을 일일이 꼽자면 욕심일 뿐”이라고 말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그,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에게 퇴임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를 가진 탓에 더 젊어 보인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제1의 인생이었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인생 출발선에 선 김현만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을 만났다.

김현만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김구연 기자

제2의 인생 출발 위해 고향 하동으로 이사

-퇴임하고 한 달 됐는데 잘 적응하고 계시는지?

“지금 하동에 내려가서 지내고 있습니다. 7월 어∼ 20일인가 이사를 했습니다. 아내를 설득해서 고향으로 들어가 살고 있어요. 양보면 우복리…. 양보역 있는 동네가 우복리입니다. 어머니가 혼자 계셨는데 항상 마음이 무거웠어요. 저는 다른 볼일 보러 밖으로 많이 다니고, 아내는 어머니 모시고 병원 다니고 텃밭도 가꾸고 그러고 지냅니다. 아내가 큰 결심을 했죠.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니까 저도 참 잘 왔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아내에게 더 고맙고….”

-퇴임하고 나서 소회는?

“항상 긴장된 공직생활보다야 홀가분합니다. 그런데 제2의 인생을 출발해야 하니 무거운 면도 있고요. 아직 정착이 안 됐으니 혼란스러운 면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동군수 출마자로 거론되는데 출마하려고 이사한 것은 아닌지?

“음∼꼭 그런 것은 아닌데. 음∼공직생활 동안 찾아뵙지 못한 친지분들과 지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고향 체험 삼아 마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전체를 둘러보고 이야기도 듣고 해서 결정할 부분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요. 운이 맞고 주변여건이 맞아야 하죠.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다듬고 또 때가 되면 여러 가지 접목할 기회도 가져보는 것도 좋은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정 형편 어려워 중학교도 못 갈 뻔…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오남매 중 차남입니다. 집이 어려워서 중학교도 못 갈 형편이었었어요. 아버지가 농사를 조금 지었는데 학비가 없어 중학교를 보낼 엄두도 못 냈죠. 그런데 사촌형님하고 집안 어른들이 아버지를 설득하고 도와줘서 1년 뒤에 겨우 학교에 갔습니다. 공부는 조금 했는데 옆에서 보니 좀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고등학교도 진주고로 못 가고 가까운 하동고등학교로 갔어요. 대학 보낼 형편이 안 되니 취직하려고 인문과가 아니라 토목과를 지원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이 됐나요?

“군대 가서 3년, 제대하고 개인 설계사무소에서 1년 반 다니다 공무원이 됐습니다. 군대는 대구 영천 제3사관학교에서 일반병으로 복무했어요. 군 복무하면서도 행정고시를 준비했는데 17회 시험에 한번 응시하고 그러고는 접었죠.”

김현만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김구연 기자

-공무원이 된 계기는?

“군 복무 마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는데…. 그런데 설계사무소에서 열심히 해서 만든 설계도를 가지고 가면 공무원이 쳐다보지도 않고 돌려보내고, 가끔은 휙 던져버리고 이래요. 당시엔 공무원 힘이 상당했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공무원이 돼야겠다는 맘을 먹었습니다. 당시 4을, 지금으로 치면 7급으로 시험쳐 공직에 입문했죠."

-처음 공직을 김해시에서 했죠?

“네 그때가 79년이니까 제 나이 26살이었죠. 그때는 김해군이었습니다. 그때 했을 때 건설과 토목계에 발령받아 처음 일을 시작했고…. 어∼ 당시 도시계획 관계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럼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임용되고 그 다음해 바로 결혼을 했습니다. 80년이죠. 직장 사람이 중매를 해줘서 만났습니다. 아내도 하동사람인데 당시 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죠. 내 나이 그때 27살, 아내는 23살. 처음에 딱 보니 인상이 참 좋은 거라. 허허∼ 그래서 곧장 결혼을 했어요. 김해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당시 230만 원인가를 방세로 주고 방 하나 부엌 하나 달린 집에서 시작했어요. 마루는 없었고. 그 뒤로 마루가 생기고, 방이 하나 더 늘고 그런 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 재미였죠.”

김현만 전 회원구청장은 하동 양보중학교, 하동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다 중퇴했다. 주요공직 직책으로는 김해시 공단조성과장, 기반조성과장, 경전철사업단장, 마산시 진북면장, 수도시설과장, 도로과장, 환경사업소장, 상하수도사업소장, 창원시 하수도사업소장, 해양개발사업소장, 건설교통국장, 회원구청장 등을 역임했다. 김 전 회원구청장은 그동안 농림수산부 장관상, 행정자치부 장관상, 국무총리상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김현만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김구연 기자

“촌놈이 구청장까지 할 수 있어서 감사”

-공직생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보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제 와서 아쉬웠던 부분을 일일이 꼽자면 다 욕심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죠. 그동안 후배들 그리고 선배들, 많은 분들 도움으로 무난히 구청장까지 하고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기술직인데…. 기술직 공무원은 승진의 폭이 좁습니다. 그러니 더 노력했고 그러면서 기술직 후배들 배려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요. 후배들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아무튼 그래서 나름 열심히 했죠.”

-공직생활 하면서 힘들었거나 보람 있었던 기억은?

“주로 도시개발업무, 산단 개발, 도로개설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중앙부처 협의과정이 참 힘든 업무입니다. 중앙부처를 방문했다가 인허가를 못 받고 내려올 때 시에서는 목을 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 그게 안됐다는 소식을 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안 떨어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럴 때 참 힘들었다는 생각이 많이 남아 있어요. 당시에는 그게 노력보다도 정치적인 힘이 더 많이 작용했을 때니까…. 그리고 밤에 폭우가 쏟아질 때, 태풍이 올 때 그때마다 재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맘을 졸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30여 년을 보냈으니…. 그때는 온 가족이 걱정을 하죠. 우리 아들 중학교 땐가 비가 많이 와서 아버지 위험한데 현장 나가야 한다고 걱정하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허허∼. 그놈이 이제 서른세 살이니 세월 빠르네요.”

-그럼 가장 기억남은 일화 하나만 소개하신다면?

“지난 2002년도인가? 김해시 주촌면 내삼농공단지가 산사태로 매립된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산사태로 공장 스물 몇 동을 덮쳤는데 젊은 직원 한 분의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매몰 토량이 어마어마한 데다 사람을 찾느라 수색작업도 두 달 넘게 진행됐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당시 공단조성과장이었는데 그래서 저도 밤낮, 주말 없이 현장을 지키며 지휘를 했죠. 당연히 제 할 일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가족이 오히려 저를 챙겨주더라고요. 이러다 저까지 쓰러진다고 당시 실종자의 외삼촌인가 하는 분들이 회를 사 와서 먹으라고 하고 챙겨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공무원으로서 민원인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최고의 서비스고 자세라는 생각을 굳혔죠. 이후에 저도 실종자 어머니가 아파 수술할 때도 챙겼고, 또 실종자를 위해 천도재 지내고 49재 지낼 때 매주 꽃도 보내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 죄스럽지만 아무튼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현만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김구연 기자

-구청장으로 1년을 보내면서 느낀 점은?

“시청 국장은 한 부분만 하면 되지만 구청은 여러 업무를 담당하고 또 민원업무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백화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창원시에 마산회원백화점, 성산백화점, 진해백화점 등 다섯 개 백화점이 있는 셈인데 다른 구청과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려면 우선 품질차별, 디자인차별, 서비스차별 등이 중요하겠죠. 그런 점에서 주민밀착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안된다고 말하기 전에 항상 현장에 가서 판단하라는 주문을 했어요. 현장에 가면 답이 반은 나오죠. 그리고는 될지 안될지를 판단해야 하고…. 또 안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되는 방법을 찾으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했습니다. 공무원이 항상 탁상행정, 복지부동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걸 없애려는 거죠. 그리고 전화 친절, 민원 응대에 최대한 신경을 쓸 것도 교육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마산회원구청 공무원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창원시 갈등, 큰 안목에서 화합과 미래를 봐야”

-청사 갈등 등 창원시 갈등 해결책은?

“갈등은 큰 창원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지역만 생각한 탓에 발생한 부분도 있죠. 국회의원, 도의원과 지역의 원로 등이 머리를 모아 큰 틀에서 중재하고 조정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외된 곳은 통합전보다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하고요. 시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지만, 좀 더 큰 안목에서 자신의 욕심보다 창원 전체의 화합과 미래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 봅니다. 조만간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 봅니다.”

-후배 공무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 갑을 관계 이야기가 많은데 지금까지 공무원이 은근히 갑이었죠. 하지만 공직자는 국민의 공복입니다. 따지면 갑이 아니라 을인데…. 그래서 후배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시민을 배려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능력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구청에 있을 때 직원들에게 강조했어요. 그 마음은 시민과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 부모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면 더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하길 바라는 거죠. 또 가족들에게 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직장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더 중요하죠. 가정이 원만해야 직장도 일도 원만해지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그래서 퇴근 후, 주말에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길 권합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비결은?

“적게는 3살 많게는 5살가량 젊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항상 욕심과 마음을 비우고 남을 먼저 배려하면서 생활하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 젊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허허∼. 그리고 스트레스도 3초 이내에 없애려고 해요. 아내와 다툴 때도 3살 차이가 나니 여동생이라 생각하며 참습니다. 그러면 크게 부딪힐 일도 적고요. 직원들 대할 때도 내가 베풀어야지 내가 형님인데 하는 마음으로 호통 칠 것도 그냥 타이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호통 친다고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소통도 안 되고 사이만 안 좋아지죠.”

“이제 아내에게 진 빚, 원금이라도 갚아야죠”

-술·담배는 얼마나?

“담배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술도 체질에 맞지 않아 안 마십니다. 업무상 꼭 마셔야 할 때는 두세 잔 정도 마시는 편입니다. 그러고 보니 술·담배를 안 해서 젊어 보이는 것도 있겠네요. 아 그리고 꼭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산책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 할 때도 있고…. 신마산이 집이었는데 수출 정문까지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색도 하고 생각도 정리하고 하죠. 안 그랬으면 벌써 쓰러졌을 겁니다. 허허.”

-존경하는 인물은?

“참존 화장품 김강석 회장을 멘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굴지의 기업 경영인이 되기까지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극복해 희망과 성공으로 만들어낸 사람이죠. 지독한 가난도 견디고 벼랑 끝 같은 상황도 포기 않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그런 삶에서 힘을 얻고 또 배우고 싶었습니다.”

-좌우명은?

“‘하면 된다’ 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역경을 이겨나가자는 뜻에서 그렇게 정하고 실천하려고 하죠.”

김현만 전 창원시 마산회원구청장./김구연 기자

-최근 본 영화와 자주 보는 TV프로그램은?

“약 3개월 전에 서울에서 딸이 내려왔을 때 영화를 봤는데 제목은…. 어∼잘 생각이 안 나네요. 미안합니다. 나중에 생각나면…. TV는 자주 못 봅니다. 뉴스를 주로 보고…. 밤늦은 시간 하는 TV토론회나 시사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 정도지요.”

-최근에 본 책이 있다면?

“<평생 갈 내 사람을 남겨라>는 책인데 이주형 씨가 저자인가 그럴 겁니다. 아마. 항상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함을 이야기한 책인데…. 그러면서 사람 관계의 중요성과 관계를 맺는 방법 등을 소개한 책입니다.”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점수는?

“아들, 딸 1남 1녑니다. 아들은 아직 장가를 안 갔는데 청와대서 경찰하고 있고, 딸은 시집가서 서울서 살고 있습니다. 자라면서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 아마 20점도 못 받을 듯싶습니다. 아내는 아마 저한테 10점도 안 줄 걸요.∼허허.”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내한테는 일단 저랑 결혼해줘서 고맙고, 그리고 그 많은 풍파 속에서도 무난하게 구청장까지 마칠 수 있도록 내조해줘서 고맙고…. 그동안 받은 사랑 이제 제가 되갚아야죠. 앞으로 한 가지 한 가지 같이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자는 못 쳐줘도 원금은 꼭 갚을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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