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종·재배법 다양한 요놈…알면 알수록 어려워

거창 사과테마파크 체험장에서 한 농민이 알은 척을 했다.

"선생님, 사과대학에서 강의 잘 들었습니다."

성낙삼(57·거창군 농촌지도사) 씨를 향한 인사였다. 성 씨도 '고맙다'며 화답했다. 하지만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사과대학' 개설 때부터 강의에 나섰으니 그 제자만 수백 명이다.

이렇듯 성 씨는 거창에서 '사과 사부님'으로 통한다. 전국적으로도 '사과 박사'로 유명하다. 그는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15년가량 사과와 함께했다.

"1981년 창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어요. 2년 후 동읍 단감 관련 업무를 보면서 과실나무를 접하게 됐죠. 그러다 1984년 고향으로 발령받으면서 거창 사과와 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면서 농업과학기술원에서 2년간 연수도 받았습니다. 그때 과실나무에 대해 분석·시험하고, 또 관련 서적을 엄청 봤죠. 거창은 사과가 주종이다 보니 이쪽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거고요."

성낙삼 농촌지도사는 거창 내에서 '사과 박사님' 혹은 '사과 사부님'으로 통한다. 사과대학에서 그가 교육한 제자들만 수백 명이다. 사과를 살펴보는 그의 표정에는 잘 자란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 느낌이 묻어난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사과 재배 농가들은 재래 영농에 의존하고 있었다. 재배기술이 체계적이지도 못했으며 장기적인 안목도 없었다. 성 씨는 '이대로는 미래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 단위로 흩어져 있던 사과 작목반을 하나로 모아 '거창사과발전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체계적인 재배기술 보급에 나섰다.

"낮에는 행정 업무 때문에 시간이 나질 않죠. 인력 교육은 주로 밤에 할 수밖에 없었죠. 오토바이 타고 밤에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

시험재배를 통해 기후 변화에 맞는 품종 개량에도 애썼다. 판로 개척에서도 눈을 넓혔다. 외국 시장을 뚫기로 했다. 그리고 1999년 187톤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사과대학도 개설해 토양학·비료학·농약학·작물생리학, 재배 관련 기술, 유통·마케팅 등 전 분야를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사과대학에서는 연간 강의 100시간 가운데 80시간 이상 이수하고, 논문을 제출하면 학위를 줬다. 이 논문을 매년 하나로 모아 책으로 내면 그 또한 훌륭한 기술서적이 됐다.

이러한 성 씨 노력이 큰 몫을 하며 오늘날 '거창 사과'는 이 지역 특산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사과와 함께한 지난 세월 속에서 풀어놓을 얘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과테마파크 전시관 내에는 국내 품종 11종·외국 품종 2종이 시험재배 되고 있다.

"사과뿐만 아니라 모든 농사는 기본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땅을 잘 만들어야죠. 그러면 10년이 편합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급해요. 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그냥 고달픈 농사를 하는 거예요. 그러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술 한잔 먹고 찾아와서는 막말을 쏟아내요. 나중에 알고 보면 저보다 한참 밑에 후배인 경우도 있고…. 어휴, 그런 일이 다반사입니다."

반면 성 씨가 권유하는 대로 실행에 옮긴 이들은 '고맙다'며 머리를 숙인다.

"다른 일을 하다가 처음 사과에 손대는 이들도 많죠. 그런 분들 가운데 오직 내 말만 믿고 100% 실천한 분들이 있어요. 몇 년 지나 '빚을 다 갚고 다시 일어나게 됐다'며 고마워하시죠. 그럴 때면 제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성 씨는 어릴 적 거창읍에서 살았다. 1960~70년대에도 주변에 사과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철 없을 적에 서리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하지만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님은 공직에 계셨어요. 땅이 좀 있었지만 직접 농사를 지은 건 아니에요. 그러니 어릴 때 농사일할 기회는 없었죠.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사병으로 가 보니 체질에 안 맞더라고요. 제대 후 공무원 시험 3개월 준비했는데 바로 합격한 거죠. 공무원 되고 나서 과수 업무를 맡으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성 씨는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도 과제물을 하면 확실히 하고, 어중간하게 할 바에는 아예 안 했다. 사과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성낙삼 지도사는 "거창 사과에는 산·학·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과학, 그리고 현장의 농민들 땀이 동시에 스며있다"고 말한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책만 보면서 머리로만 이해하면 안 되죠. 현장을 알아야죠. 그래서 농업기술센터 내에 품종별 재배를 하면서 전 과정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하니 농민들과 대화도 잘 됐어요."

그래도 사과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포도·배·복숭아 같은 과일에 비해 품종도 다양하고, 더 많은 재배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재배 기술에서 예전에는 답이 아니던 게, 환경 변화에 따라 지금은 정답인 것도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사과죠. 그래서 사과 농사는 힘들어요. 제가 사과에 대해 많이 안다지만, 개인적으로 재배할 엄두는 못 내겠어요."

성 씨는 공직 퇴임을 몇 년 남겨놓지 않았다. 이런저런 계획이 머릿속에 서 있다.

"농업기술센터는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농민들에게 처방을 내려줘야죠. 그게 안 되면 '농업행정센터'라 불러야죠. 기술 없는 직원이 앉아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현장·기술을 익히고 꾸준히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터득한 사과 재배 기술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큰 도움이 되겠지요. 개인적으로는 퇴임 후에도 농민들을 도울 수 있는 '사과 재배 컨설턴트'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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