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과, 1901년에 상업 재배 '깡촌'이던 곳이 부농지역으로

거창군 고제면 사과 재배 단지. 주렁주렁 달린 사과는 빨갛다 못해 검붉은 빛까지 내며 그 농익은 자태를 뽐낸다. 사과를 수확 중인 이가 한 마디 던진다. "맛 한번 보셔. 얼마나 달달한지 입술에 쩍쩍 달라붙어."

하나를 따서 옷으로 문지르니 새 구두처럼 반짝반짝 광이 난다. 먹기 아까울 정도다. 그래도 한입 베어 물었다. 단 육즙이 금세 퍼지며 입안을 마비시킨다.

거창 사과는 지난해 기준으로 재배 면적 1479㏊·생산량 2만 7658톤가량 된다. 생산량만 보면 전국의 7.3%다. 경북 영주·의성·안동·청송·문경, 충남 예산에 이어 일곱 번째로 많다. 도내 생산량에서는 66.5%를 차지한다. 거창군 전체 농업소득에서는 3분의 1이 사과 몫이다. 이 고장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자산이다.

'거창 사과'는 1930년 거창읍 대동리에서 처음 재배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 것은 1941년으로 보고 있다. 거창읍 정장리에 사는 최남식이라는 이가 국광·홍옥 400여 그루를 심으면서 대량생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1966년에 정부 농특사업에 지정되면서 한 단계 더 발돋움했다. 1987년에는 지역 내 제1 농·특산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머리 희끗희끗한 이들은 옛 기억을 꺼내놓는다.

"1960년대에도 이미 읍내 쪽에 사과나무가 많았죠. 그런데 지금처럼 작은 나무를 촘촘히 심은 게 아니었어요. 한 나무에서 한 트럭을 딸 정도의 큰 나무였습니다. 학교 마치고 오다 배고프면 서리해서 먹기도 하고 그랬죠."

   

사과 당도를 높이는 데는 일교차가 큰 역할을 한다.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질수록 낮에 축적된 당 성분이 덜 빠져나간다. 거창은 일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 지역이다. 연간 평균 일교차가 11.6도로 큰 편에 속한다. 전 지역이 해발 200~900m에 이르는 고지대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물·흙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는다.

"거창에는 다른 지역 물이 한방울도 흘러들어오지 않아요. 우리 지역 내 깨끗한 물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땅에는 사질양토가 많아 사과하기 더없이 좋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 재배지도 변하고 있다. 1960~1980년대에는 해발 200~300m인 거창읍·남상면·가조면 같은 곳이 알맞은 지형이었다. 하지만 평균기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사과도 좀 더 높은 곳을 찾아들었다. 평균 해발 500m 이상 되는 고제면 같은 곳이다.

거창군청 내에 있는 사과 조형물. /남석형 기자

고제면은 한때 '깡촌'이라 불릴 정도로 험하고 살기 힘든 곳이었다. 고랭지 채소를 하거나 약초를 캐며 생계를 이어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사과가 완전히 바꿔 놓았다. 1990년대 초부터 사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면서 여기저기 부농이 나왔다. 재미 좋을 때는 1년 농사로 집 한 채 사는 이들도 있었다. 고향 떠났던 젊은 사람들까지 하나둘 찾아들었다. 지금 이곳에는 고급 승용차에 농기계 실려 있는 모습이 흔하다. 사과 농사 마친 겨울에는 인근 무주에서 스키를 즐기며 시간 보내는 이도 많다고 한다.

한편으로 '사과 농사'는 고제면에서, '자식 농사'는 교육 여건 좋은 읍에서 하는 분위기다. 과거 고제면 사람들이 읍내 사과농가에 품 팔러 오던 모습과 완전히 대비된다.

오늘날 거창 사과는 여러 품종 가운데 부사라 불리는 후지가 55%, 홍로가 30%가량 차지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좀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봄에 서리 피해가 있었고, 여름날 밤에 고온현상이 이어지면서 많은 양분이 소모됐기 때문이다.

거점산지유통센터에서 선별 작업 중인 모습. /김구연 기자

어느 농사든 다 그렇듯, 사과도 일손 부족에 애를 태운다. 읍내에서, 혹은 다른 지역에서 사람을 데려다 쓴다. 행여나 그 일손이 일당 더 많은 곳으로 옮겨갈까 싶어, 밥도 사고 때로는 차비도 줘 가며 인력관리를 한다고 한다.

거창에는 사과 테마파크, 사과 이용연구소, 사과 거점산지유통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산·가공·유통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사과산업특구 지정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그 속에서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거창 사과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는 느낌을 줄 만하다.

   

'아담과 이브' '만유인력의 법칙' '빌헬름텔 화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사과는 인류의 굵직한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그 역사가 오래됐고, 또 친숙한 과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과 원산지는 유럽 남부인 발칸반도로 전해진다. 그 재배 역사는 4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17세기에는 유럽 전역에서 재배됐고, 19세기 초까지는 영국이 최대 생산국이었다. 19세기 말부터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프랑스·이탈리아·터키가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어휘를 풀이한 '계림유사(鷄林類事·1103)'에 오늘날 '능금'이 등장한다. 17~18세기 문헌에는 '능금 재배법'이 소개돼 있다. 이때까지는 재래종인 능금 위주였다. 서양 사과는 1884년 선교사들이 들여와 관상용으로 심은 것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에는 대구에 대규모 사과 과수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01년 윤병수라는 이가 황해도 원산에 국광·홍옥을 심었는데, 최초의 상업적인 재배로 받아들여진다. 1906년에는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이 들어서며 사과 재배 기틀이 마련됐다.

사과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사과나무 열매다. 그 품종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700종이 넘는다. 국내에서는 국광·홍옥·후지 등 10여 종이 재배되고 있다. 단순화해서 수확 시기만 놓고 분류하면 조생종·중생종·만생종으로 나뉜다. 8월에 수확하는 조생종에는 파란사과, 과즙이 많은 선홍·서광 등이 있다. 9월에 나는 중생종에는 홍로·홍옥이, 10월에 수확되는 만생종에는 후지·감홍이 해당한다.

사과는 촌수를 따지기도 한다. 같은 품종끼리는 수분(종자식물 화분이 암술머리에 옮겨붙는 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양반 사과'라 일컫기도 한다.

사과 재배하는 처지에서는 일손을 좀 더 보태면 그 가치를 올릴 수 있다. 사과는 꼭지에 가려 햇빛을 못 받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만 익지 않고 허옇게 남는 것이다. 작은 흠집에 불과하지만, A급이 못되고 B급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수확 철이 다가오면 '사과 돌리기'라는 것을 한다. 사과 방향을 조금만 틀어주면 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손이 달려 그리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좋은 사과를 고르는 방법에서는 외형상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색깔은 역시 녹색 아닌 맑은 빨간 색이 좋은데, 특히 아래쪽까지 물이 잘 들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꼭지는 가늘면서 푸른색 띤 것이 좋다. 겉을 가볍게 두들겼을 때 둔탁하지 않고 탱탱한 소리가 나면 육질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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