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맑은 물로 피 뺀 머리고기, '맛'만 보려던 입 꽉 붙들고, 육즙·살·지방 조화이룬 오겹살

마침 장날이라 붐볐다. 함양 흑돼지를 가장 싸고 쉽게 맛볼 수 있는 곳이 시장이라 판단했다.

흑돼지 각 부위를 선 채로 연탄불에 구워 먹는 곳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시장 골목을 돌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떤 분 이야기론 연세 탓에 주인 할머니가 장사를 접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병곡식당'을 추천한다.

어렵지 않게 찾았다. '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란 커다란 펼침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닐곱 평 되는 가게는 수수했다. 순대와 머리고기가 주메뉴다. 국물을 내는 사골까지 모두 흑돼지가 재료다.

피순대 1만 원, 머리고기 1만 원 한 상이 꽤 푸짐하다. 특이한 점은 순대국수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흑돼지 사골로 육수를 낸 순대국수가 이가 성하지 않은 노년층에 적당하고, 여름철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순대국밥. /박일호 기자 iris15@

어느 시골 장에나 대표 국밥은 있는데, 함양장은 이 흑돼지 순대국밥이 대표다. 병곡식당 맞은 편과 시장입구 큰 길 건너편에도 꽤 붐비는 순대국밥집이 있으니 말이다.

이 집 요리의 으뜸 재료가 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물'이라 말한다. 지리산이 내린 '물' 말이다. 사온 머리고기는 흐르는 지하수에 1시간을 담가 피를 뺀다. 고기 군내가 없는 이유다. 피순대는 잘게 간 머리고기에 양파, 대파, 양배추, 배추, 깨순, 부추, 당근 등을 넣어 만든다. 상에 오른 것은 대창으로 만들었지만, 막창으로도 만드는데, 그 맛이 훨 차지다며 자랑하신다. 신선한 선지가 터져 나올 듯하지만 먹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 맛은 담백하고 야채와 고기 선지가 제 맛을 다 낸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랄까? 흑돼지 부산물을 '맛 만' 보고 자리를 뜨려했던 입은 어느새 순댓국을 주문하고 있었다. 한 그릇에 6000원. 함양 물과 사골로 낸 국물 맛은 없던 느끼함도 잡아줬다. 좋은 해장국을 먹으면 전날 술을 먹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파, 부추를 듬뿍 추가해 다 마셨다. 가볍게 먹고 삼겹살 시식을 하려 했던 계획과 틀어졌다.먼저 맛본 머리고기는 달았다. 연골과 껍질의 조화도 훌륭해서 어울리진 않지만 '싱싱하다'는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매일 장사할 만큼 고기를 사 온다는 주인 김정애(49) 씨는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흑돼지 갈비찜. /박일호 기자 iris15@

돼지고기는 삼겹살이다. 삼겹살 사랑이 유별난 우리네 입맛을 지적한 이도 있지만, 어쩌겠나? 돼지고기는 삼겹살이다. 억지 주장이 아니다. 돼지고기의 껍질, 지방, 뼈, 육질을 동시에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살과 고기가 겹겹이 오겹살을 이룬 함양 흑돼지는 이미 맛있는 조건을 타고났다.

오겹살. /박일호 기자 iris15@

흑돼지 오겹살을 맛보기 위해 찾은 곳은 함양군 마천면의 '월산식당'이다. 이 곳 주인 아주머니는 시어머니 뒤를 이어 17년째 흑돼지 요리를 팔고 있다. 식육식당이라 하여 고기도 따로 파는데, 생고기를 보관한 냉장고와 육절기가 따로 문을 낸 가게 한편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 집 맛의 비밀이 있다. 1인분 200g(9000원) 2인분과 갈비찜(2만 5000원)을 주문했다.

짧고 검은 털이 간간이 껍질에 박혀 있고, 고기는 선홍빛이라기보다, 옅은 붉은 빛에 가깝다. 피를 잘 빼고 숙성된 생고기에서 볼 수 있는 빛깔이다. 여기만의 숙성기술로 고기 맛이 뛰어나다는 주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익혔을 때 숙성한 생고기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껍질의 이물감이 거의 없다. 맑은 육즙과 지방의 조화가 훌륭했다. 군내가 없는 것은 흑돼지 특유의 장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기실, 함양 흑돼지가 유명해진 것도 마천에서 흑돼지 맛을 본 등산객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하니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쌈채소는 필요 없었다. 육즙의 풍미를 방해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금도 치지 않았다. 고기 원래의 단맛을 더 느끼고 싶었다. 들기름으로 무친 파절임과 함께 먹으면 천천히 오래 즐길 수 있다.

더 먹을 수 있을까 싶을 때 갈비찜이 나왔다. 피순대, 머리고기, 국밥에 이어 삼겹살까지 먹었다. 남겨 포장할 맘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채소, 양념과 함께 압력솥에 25분 정도 찐 갈비찜은 새콤달콤하고 담백했다. 단호박과 당근, 파프리카 등 채소가 풍부해 포만감도 잊고 금방 몇 점을 먹었다. 압력솥에 찐 덕인지 부드럽게 뼈와 살이 분리되면서 입에 감겼다. 다만, 짠맛이 강해 술안주 보다 한 끼 밥반찬으로 제격이지 싶다. 이 식당을 추천한 이도 갈비찜과 밥을 먹으면 최고라 했다. 남은 양념을 밥에 비벼 먹고 싶었지만, 진짜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갈비찜 작은 사이즈 한 접시를 다 비웠으니 말이다.

마천면에서 조금만 지리산 쪽으로 오르면 '백무동'이다. 계곡이 좋고, 천왕봉 등산에도 제격인 이 곳에서 여유를 즐기고 갈비찜으로 배를 채운다면 부족할 것이 없겠다.

머리고기. /박일호 기자 iris15@

흑돼지 맛을 잊을 수 없어 함양서 오는 길에 읍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일반 식육점에서도 팔지만, 진공포장 해주는 곳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돌아와 구워먹은 맛은 마천서 먹은 그것에 부족했다. 고기의 숙성도 외에 불판의 기름빠짐과 고기두께가 맛을 크게 좌우하는 듯 했다. 월산식당은 택배로도 고기주문을 받는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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