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방식으로 기르는 축사 백방 수소문했지만 헛걸음만

"흑돼지 하면 '똥돼지' 아닌가?"

"똥돼지를 보고, 먹고 와야 진짜 흑돼지 특집이지!"

함양 흑돼지 취재를 주변에 알렸을 때, 대부분 첫 반응은 이랬다. 여러 이유로 예전의 사육방식이 흔하지 않음을 아는 입장에선 난감했다.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몇 년 전 공중파TV 프로그램의 '지리산 흑돼지'편을 뒤져보며 화면 속 할머니 얼굴을 유심히 봤다.

어쩌면 저 할머니를 알아보고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들르는 곳 마다 '똥돼지'를 목격한 곳이 있는지 물었다. 군 관계자는 "어렸을 때 나도 거기다 똥 많이 쌌는데, 처음엔 이상해도 익숙해집디다. 근데 요새 잘 모르겠는데… 마천 가면 있을라나…."

그렇다. 마천이다. 마천이 어딘가? 지리산 흑돼지의 본고장 아닌가! 동행한 기자도 마천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읍에서 30여 분 달려 마천면에 도착해 수소문했다.

파출소에 들러 물었다. "글쎄요… 그게… 잘 모르겠는데, 저기 저 쪽으로 저 길 따라서 쭉 가면 '축동'이란 데가 나오는데 그쪽에 가면 어쩌면 있을지도…."

텅텅 빈 똥돼지우리. /박일호 기자

축동? 한 번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맛 집 취재를 위해 들른 마천면의 한 식당주인께 확인해 봤다.

"축동? 에이… 거기보다 저기서 왼쪽으로 꺾어 읍 쪽으로 좀 가면 '창원 마을'이라고 있는데, 거기 가면 '똥돼지'를 아직 키운다고 알고 있는데…."

창원마을! 옳다 싶었다. '창원에서 진짜 '똥돼지'를 찾아 왔더니, 창원 마을에 있더라!' 기막힌 신문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

사진기자를 재촉해 창원마을로 향했다. 초입부터 심상찮았다. '생태마을'조성 입간판이 진짜 뭔가 있을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좁은 마을 입구를 약간 돌아서 산 쪽으로 향하니, 경사 높은 골목이 빼곡히 들어선 집들 사이로 길게 이어졌다. 꽤 큰 마을이었다. 역시 똥돼지는 경사진 산골마을에 산다더니 마을 생김새부터가 남달랐다.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노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TV속 그 할머니가 여기에?

똥돼지를 찾지 못해, 그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권범철 기자. /박일호 기자

몇 가지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날이 진짜 더웠다. 그 때문이라 생각했다. 등산을 하듯 마을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좀체 사람이 없었다. 돼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무턱대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 사람을 찾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마당을 둘러보다 뭔가를 발견했다. 마당 뒤쪽에 얼기설기 나무를 세워 아래위로 칸을 나누고 대충 지붕을 씌운 구조물을 발견했다. '똥돼지우리'였다! 마을을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조금 흥분하여 몇 집을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주택에 똥돼지우리가 있었다. 어떤 곳은 제법 현대화해서 콘크리트 슬래브로 지어 돼지의 활동 공간이 넓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돼지를 만날 수 없었다.

한때 흑돼지를 키웠다는 칠순의 아주머니는 "우리도 안 키운 지 한 10년 됐어. 저 건너편에 흑돼지 축사 생기고 나서는 안 했던 것 같네. 축사하고 가격경쟁이 안 돼서 팔기도 힘들고, 개량한 주택에선 키울 수도 없고… 그래도 글쎄… 저 위쪽으로 올라가면 키우는 데가 있을지도…."

조금 더 골목을 오르다 만난 아저씨는 "똥돼지? 나도 요새 본 적은 없는데… 마을 제일 위 절 밑에 가면 한 군데 키운다고 하긴 하던데…." 마을을 오르며 흥건하게 땀에 젖은 사진기자의 얼굴도 밝아졌다. 설명대로 골목을 올랐고, 상상대로 골목이 깊었다. 드디어 찾은 곳. 창원마을 93번지!

"에헤~ 우짜노! 지난달에 팔았는데… 여름엔 키우기 힘들어서 팔았지. 10월쯤에 다시 해볼까 싶어. 그 때 오든가…." 아쉬운 듯 빈 돼지우리를 찍는 셔터 소리만 여름 마당을 채웠고, 그 소리에 놀란 개는 짖어댔다. "개야, 넌 봤겠지? 똥돼지. 응? 왜 말을 못해! 응?!" /권범철 기자 kwonb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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