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능선처럼 순하디 순하고 우포늪처럼 편안함과 정겨움이 있더라

1. 장정순(84) 아지매

여든넷의 양궁띠기. 드나드는 사람도 적은 창녕 장터골목에 몇가지 전을 펼쳐놓고는 점심이라고 찬밥 한덩어리 물에 말아 달랑 새우젓 하나로 먹고 있었다.

“어머이, 그리 무가꼬 되나예? 고마 아들 며눌한테 펜케 있지.”

양궁띠기 그 선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어이다, 내는 아즉 혼자서도 잘 산다. 여태까지 농사 없시도 근성이 있어가꼬 살아왔는데. 아즉은 뭐든지 허고 산다. 산에서도 이고지고 일헌다. 이기 전부 내가 다 캐고 베고 헌 것들이라.”

“그래도 어머이, 며눌헌테 따신 밥 좀 얻어묵고 집에 있제?”

“어이다. 울 며눌, 아무것도 없는 우리 아들 데꼬 살아주는 기 좋아서 내사 얼매 고맙노.”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마 자리를 못 뜨고 있으니 양궁띠기 아지매, 어여 가라고 자꾸 밀어낸다. 사람을 그저 바라보는 일도 참 즐거운 거구나. 홀로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참 따뜻한 거구나.

장정순 아지매


2. 박재곤(72) 방금선(71) 부부

“함 입어보이소. 이거는 지금 입어보고 길이를 맞춰 봐야 되는 거제.”

시장 안에서 특이하게도 여자보다 남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몇몇 아재들이 줄줄이 서 있는 곳은 남성복 노점. 옷걸이에 바지들이 걸려있고 시원한 여름 셔츠가 당장 눈길을 끈다.

“아침 6시면 도착합니다. 옛날에는 인근 지역에 다 다녔는데 지금은 의성, 창녕장에만 다닙니다. 대구에서 20년 동안 공장했는데 IMF때 부도 맞고는 하던 일이 이거니 장사 시작한 거지요.”

금선 아지매는 흥정을 하고 재곤 아재는 손님의 다리 길이를 재는 등 불편사항을 그 자리에서 바로 직접 수선했다. 수선은 전부 공짜였다.

“그걸 받는가? 서비스로 해주제. 수선집 가모는 2000원, 4000원 받는데 할매할배들이 그라모는 몬 사입는다아이가. 바로바로 수선을 해주지 단골 많다예.”

박재곤아재

3. 정곡댁 유임연(80) 아지매

“이기 우엉이파리라니께. 이건 호박이파리고.”

합천군 초계면이 고향이랬던가, 사는 곳이 창녕읍 아파트 뒤랬던가? 시장 입구 곱게 차려입고 앉아있는 정곡띠기 아지매는 말을 걸자 횡설수설했다. 벌써 약주 한 잔 기운으로 앞에 쌓아놓은 부추를 일일이 다듬는다.

“어무이, 이거는 우찌 묵으면 되네예?”

“껍질을 벗겨가꼬 호박잎 찌듯이 쪄묵으면 된다. 니가 해묵것나? 안 사도 된다.”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이라는 듯 정곡띠기는 그저 웃기만 했다.

유임연 아지매


4. 김화자(56) 아지매

온갖 채소들이 다라이마다 담겨있다. 종이에 적은 직접 적은 가격표도 인정스럽다. 화자 아지매는 젊고 화장을 곱게 하고 있어 시장 상인들 중 젊은 축이었다. 사진기를 갖다대자 옆에 있던 아제가 좀 더 가까이 다가선다.

“좋아보이제요. 잘 찍어보이소.”

“아이고 장난칠라요. 우리 아제는 저기 있것만.”

화자 아지매 남편은 양배추를 진열하고 있다가 힐끗 쳐다보고 웃기만 할 뿐이다. “아이고, 이리 부부인줄 알았다아입니꺼”라며 같이 웃었다.

“20년 우산 공장일하다가 IMF때 공장 문을 닫았는 기라. 자식들 키우고 먹고는 살아야제 할 수 없이 시장으로 나섰어예. 처음에는 잘 됐는데 몇 년 전부터는 촌에도 마트가 시도때도 없이 마이 생기니 전같지 않아예. 마트 허가를 너무 남발하는 것 아입니꺼? 없어도 안되지만 시장 주변에는 좀 규제를 해야지예. 옛날에는 사고파는 사람이 많아 비좁아 다닐 수 없었다아입니꺼.”

김화자 아지매


5. 시장족발 박종준(63)·김점련(62) 부부

“이 집 족발은 맛있다꼬 소문났어예. 족발장사 해가지고 부자 된 사람들이라예.”

창녕장에서 잔뼈가 굵은 부부다. 족발 장사만 20년을 했다. 그 전에 10년 동안 부식 장사와 통닭을 팔았다. 이 집만의 족발 만드는 비법이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은 배달 같은 거는 안합니더. 손님들이 사러 오지예. 낱개로 나가는 것보다 보통 단체로 나가는 기 많아예. 모임이나 관광 갈 때 대량 주문합니더. 1상자가 10만원 정도 하지예.”

맛도 맛이지만 두 부부의 편안하고 심성 고운 웃음이 손님들에게 무한 신뢰를 줄 것 같았다.

시장족발 박종준 김점련 부부


6. 가업 이어가는 시장족발 박동순 씨

칼질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손님에게 족발을 썰어 담아주는 손길이 재다.

서른다섯 박동순 씨. 스물여덟 총각시절부터 부모님 가게인 시장족발에서 일하고 있다. 가게 일을 하면서 결혼하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8년째 전수받고 있는데 우리보다 더 잘 합니더. 인자 아들헌테 물려주고 우리는 쉬는 기지예.” 김점련 아지매는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아들이 미덥기만 하다.

박동순


7. 한일상회 김희근(71)·차금자(67) 부부

“창녕장은 예전에 창녕객사가 있던 자리입니더. 인자 객사 건물을 만옥정으로 옮겼지만. 옛날에는 창녕시장이 경남에서 1등이었어예. 지금도 곡물전이 다른 데보다 훨씬 크지만 예전에는 아주 컸습니더. 그러잖아도 시장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 저게 주차장 있는 데 마늘·고추시장이 따로 생기는 바람에 영 말이 아닙니더. 다같이 모여 있어야 시장이 북적거리고 좋지....”

희근 아재는 자신도 35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선친도 객사 있을 때부터 곡물전을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가 없었다면서 10년 전 주차장 접근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고추장이 터미널 근처에 서는 바람에 상인들이 불만이 많다고 했다. 옆에 있던 금자 아지매가 아재보다 더 목소리를 높인다.

“불법 시장인데 그걸 단속을 안 하고 그대로 두고 있으니 우리는 속이 탑니더. 저기 장옥도 잘못되었습니더. 지붕만 있어가꼬 됩니꺼. 칸칸이 제대로 되고 바닥도 좌판을 벌릴 수 있게 해야제. 더 조졌놨어예. 예전에 비허면 택도 아입니더.”

애는 타고 하소연 할 데가 없는 참에 털어놓는 마음이었다.

한일상회 김희근 차금자 부부.


8. 롯데건강원 윤병호 아재

“창녕에는 양파 아입니꺼?”

롯데건강원은 창녕시장 사랑방인가 싶었다. 상인회 사무실보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 좋아뵈는 윤병호 아재는 오는 사람들을 마다치 않고 반기며 탁자에 양파즙을 내놓았다. 가게 앞에는 여러 약재들도 있고 또 주문대로 즙을 내거나 달여주는 듯했다.

롯데건강원 윤병호


9. 대성상회 이판선(75) 아지매

“시어른이 하고 우리 집 양반은 차남이라 장을 돌며 장사했어예. 우리가 농사짓는 게 아니니깐 그때는 장마다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사오고, 또 정미소에 가서 리어카에 싣고 왔다. 요새는 전화만 하면 갖다준다. 새사 수월하제.”

시어른 때부터 시장에서 장사한 세월이 60년이랬다. 그동안 여러 품목을 다루기도 했다. 가게는 하나지만 여러 개를 동시에 취급하면 장사는 훨씬 잘 되었던 것이다. 쌀을 하면서 연탄을 팔고. “연탄배달을 30년 했고 쌀은 50년 이상 팔았제.”

야채도 같이 파는지 곡물 보따리보다 가게 앞에는 양배추며, 오이, 당근 등이 눈에 띄었다.

대성상회 이판선 아지매


10. 창성참기름 신소분(80) 아지매

“옛날에 마매탄 때어 참기름 짰다 아이가.”

가스불 앞에서 깨가 볶아지는 것을 쳐다보며 힘겹게 앉아 있다. 여름 한낮의 더위에도 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지쳐있는 표정이 역력하다. 창성 참기름 소분 아지매. 50년 동안 참기름 장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가스를 쓰지만 옛날에는 마메탄을 썼제. 그래도 그때는 참기름 파는 집이 별로 없어가꼬 장사는 참 잘 됐다아이가.”

“마메탄이 머라예?”

“하모, 너그는 모를끼다. 석탄(연탄)가루를 싹싹 모아가지고 물을 조금 넣어 이래저래 뭉쳐가지고 다시 말려서 불을 지피는 거라.”

마메탄. 나중에 찾아보니 조개탄, 석탄을 가리키는 일본어였다.

창성참기름 신소분 아지매(2).


“인자는 가스값도 마이 올라서 이것도 못허는 기라. 1되에 삯이 2000원인데 삯을 올릴 수도 없제. 뻥 튀기는 것도 4000원 아이가. 근데 참기름 한 번 짜는 기 일이 좀 많아야제. 볶고 짜고 병에 담고, 하이고. 이래가꼬 남는 기 없지싶구먼. 글타고 다른 수도 없고. 우리 집에서 짜는 거는 전부 진짜배기아이가. 넘들처럼 수 부리는 거도 아이고.”

이름을 다시 묻자 그제야 마구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까지 읊는다.

“우리 집에 딸이 셋인데 우리 언니가 큰분이라꼬 대분이, 내는 작다고 작은분이 소분이, 내 동생은 또 딸이라고 또분이아이가, 아이구 하하.”

소분 아지매가 볶은 깨를 다시 짜는 기계에 올려놓으니 아래서 기름이 졸졸 흘러나온다.

“여게도 뜯기야되는데 못 뜯고 있다아이가. 내는 인자는 보상받아가꼬 좀 펜허게 살다가 가모 좋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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