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살가워 사람 사는 곳 같더라

‘시장 입구 만남의 장소’?

창녕시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약국 앞 한쪽에 걸려있는 작은 간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 할머니들 10여명 줄줄이 앉아 있다. 나무데크는 시장을 오가는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쉼터였다. 약국에서 그리 해놓은 거라 했다. 누구일까? 누구기에 이런 마음을 쓸 수 있을까 싶다.

주인공은 창녕약국 노기찬 약사였다.

“노인들이 시장에 와도 어데서 만날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래 꽃밭이던 걸 없애면서 데크를 내었는데 이제 7년 정도 됐습니다. 노인들이 휴대전화도 없고 연락소가 없으니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잠시 앉아 쉬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버스를 놓치고 택시 타고 집에 갈 때도 있는데 혼자 타고 가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몇 명 모여 팀을 이뤄 같이 타고 가야 하는데 어디 가서 기다릴 데가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창녕약국은 대를 잇는 약국으로, 선친 때부터 지역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노 약사는 현재 창녕문화원 등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권영란

“지역에 사는 동안에는 주민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돈을 벌더라도 우리 지역이 아닌 먼 데서 성공하면 아무 것도 안 해도 칭송을 듣지만 지역에 살면서 돈을 벌고 성공한 사람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도리에 어긋난 거지요. 주민들 때문에 모은 거니까 일부는 주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하고 또 지역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창녕시장의 기분 좋은 첫인상이었다.

곡물에다 양파․마늘․고추는 최고라예

곡물전에는 둥근 대야들이 줄을 이어 있다. 일일이 포장 된 것이 아니라 달라는 만큼 무게를 달아서 봉지에 넣어준다. 정부 정책으로는 됫박 사용을 규제하고 있지만 장터 곡물전에서 만나는 나무 됫박은 추억과 함께 정겹기만 하다.

/사진 권영란

“곡물전이 아직 이리 잘 남아있는데는 다른 시장에 가도 별로 없을 끼라예. 옛날에는 리어카에 싣고 다녔지예. 낙동강을 끼고 있어 옛날부터 온갖 물자가 풍부했어예. 지만 부지런하모는 배곯지는 않는 댔으니께.”

한 여름인데 뻥튀기 장수도 보인다.

“장날 올라모는 며칠 전부터 농사 지은 거 다 내놓고 손질하고 단을 만들고… 일이 좀 많나예. 장날이 내 쉬는 날이제. 사람들 만나고 돈 만들어가꼬 가고.”

부추, 우엉을 팔기 쉬운 작은 단으로 만들고 있는 아지매의 손은 마디가 굵고 손톱이 닳아 있다.

창녕은 구한말 보부상들의 주요 활동지역으로 영남 지방의 상업활동에 있어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자료에 따르면 창녕장은 경상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읍내장’ 또는 ‘대평장’으로 불렸는데 현대화 사업 후에도 다행히 옛 장터의 모습이 비교적 잘 간직되어있다.

“예전보다 규모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장날이면 인근 지역 장꾼들이 몰려옵니다. 대구에서도 오고, 합천에서도 오고….”

/사진 권영란

창녕시장은 상설시장과 공설시장이 붙어있다. 상설시장은 평소에도 문을 열지만 이래저래 힘들기만 하다. 이곳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마트와의 경쟁’에서 속수무책이다.

“우짜것노예? 요즘 같이 더울 때는 다들 마트 가는데. 추울 때는 춥다꼬 가고… 방법이 없어예. 근데 우리 시장 물건이 진짜 좋아예. 물건 갖꼬 장난 치질 않으니께.”

이곳 장날은 3일과 8일이다. 장날이면 새벽부터 공설시장 안은 분주하다. 장옥마다 자기 자리에 물건을 진열하고 이른 아침부터 올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인근 시골에서 올라오는 농민들이 탄 첫차가 도착하는 시간이면 장터 안은 금세 활기가 넘친다.

양파 수확기를 한 달 쯤 지났는데도 시장 안이나 밖 어디서든 쌓아놓은 양파 무더기들이 눈에 띈다.

“아이고, 우리 밥상에서 양파만큼 좋은 기 오데 있습니꺼? 요새는 저장 기술이 좋아가꼬 1년 내내 먹을 수 있고예. 또 중탕을 해서 즙을 내어 보약처럼 먹는다아입니꺼. 요새 사람들이 기름진 음식을 마이 묵는데 양파를 같이 먹으모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데예.”

직접 농사를 지어 가져왔나보다. 양파 장수 아지매의 ‘양파 찬가’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창녕은 채소·특용작물이 많이 나는 지역이다. 예전에는 양파 생산량이 나라 안에서 가장 높아 ‘창녕’ 지명 뒤에 당연히 ‘양파’가 뒤따랐다. 지금은 양파에 이어 마늘, 고추 재배도 점점 늘어 영남권 일대 수확량과 질을 따라올 지역이 없다.

이른 점심시간.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창녕시장의 수구레국밥집은 7월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농산물을 팔러 나온 사람이든 사러 나온 동네 주민이든 일단 배를 채워야 장날 인심이 제대로 나오는 법. 국밥집 큰 곰솥은 금방이라도 넘칠 듯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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